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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27일 08시 20분 KST

이마트 노브랜드가 한복판에 들어선 전통시장을 찾아갔다 (사진)

전통시장에서 먼저 요청한 것이다.

한겨레
이마트 상생스토어 10호점이 입점한 강원도 삼척중앙시장에서 지난달 16일 손님들이 장을 보고 있다. 

지난달 말 찾은 강원도 삼척중앙시장. 떡집과 족발집, 채소가게와 과일가게가 늘어선 중앙통로를 20m쯤 걸어 들어가자, 상가 2층에 붙어 있는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312㎡(약 95평) 규모 점포의 한쪽 벽면은 볶음밥, 피자, 만두, 양념 닭발 같은 간편식이 메우고 있었다. 다른 진열대를 살펴보니 수입 주류와 반려동물용품, 운동기구와 엘이디(LED) 모니터도 판매 중이었다. 채소나 과일 코너는 없었다. “시장의 주력 상품인 채소와 과일, 생선류는 판매 품목에서 제외했습니다. 국산 맥주와 소주도 팔지 않고, 삼겹살 같은 고기와 계란도 하루 10개씩만 팔고 있어요. 대신 가정간편식(HMR) 품목 비중을 전체 70%로 높였습니다.” 함께 매장을 둘러보던 김원기 이마트 상생티에프(TF) 과장이 설명했다.


시장의 ‘앵커 시설’ 역할 기대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삼척중앙시장점은 대기업 유통사인 이마트가 전통시장과의 공존을 외치며 설립한 준 대규모 점포(SSM, 500㎡ 미만)다. 이마트의 자체 브랜드(PB)인 노브랜드 상품을 주력으로 파는 전문점이 전통시장 안에 들어간 형태다. 2016년 충남 당진 어시장에 1호점을 낸 뒤 경북 구미 선산봉화시장, 서울 경동시장 등 현재까지 점포 수를 15개로 늘렸다. 유통산업발전법 및 지자체 조례에 따라 전통상업보존구역 1㎞ 이내엔 이러한 준 대규모 점포 출점이 제한되지만,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는 시장 상인회의 동의를 받아 시장 안에 입점하는 경우가 많다. 노브랜드 삼척중앙시장점도 강원도와 삼척시가 시장 활성화 차원에서 노브랜드 점포 유치를 희망했고, 상인회의 동의가 이루어지면서 시장 한복판에 들어서게 됐다. 이마트 관계자는 “15개의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대부분이 전통시장이나 지자체에서 먼저 요청해 문을 열었다. 현재 전국 20여개 전통시장에서도 입점을 요청한 상태”라고 했다.

이마트 제공
강원도 삼척중앙시장 상가 2층에 입점한 노브랜드 상생스토어에서 손님들이 장을 보고 나오고 있다. 

전통시장이 ‘골목상권 침해’의 주범으로 지목받는 대기업 계열의 점포 유치를 원한 이유는 무엇일까. 삼척중앙시장에서 만난 이들은 “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기업을 활용했다”고 입을 모았다. 같은 오프라인 유통점으로서 대형마트와 시장의 경쟁구도가 완전히 무너졌다곤 볼 수 없으나, 판매 품목과 편의 시설 부족 등 시장 침체의 원인을 대기업 점포를 활용해 없앴다는 얘기다.

시장 쪽에서는 노브랜드가 시장의 ‘앵커 시설’(손님을 유인하는 핵심 시설)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삼척중앙시장은 탄광업이 호황을 누렸던 1970년대 삼척의 중심지로 주목받았던 곳이다. 이후 탄광업이 쇠락에 접어들면서 이곳도 함께 침체의 길을 걸었다. “전통시장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활성화하는 곳도 있는데, 소도시는 사실상 그러기가 어렵다. 주차장, 화장실 등 전통시장의 편의시설도 개선하고 있지만 (판매 품목 등) 시장의 내용물이 바뀌지 않으면 손님을 모으기가 힘들다. 상인들도 노브랜드 입점을 반대하지 않았다. 만약 노브랜드만 잘 되는 입점이었다면 그러지 않았겠지.” 상인회 쪽은 이렇게 말했다.

뉴스1
전북 소상공인 대표자 협의회(가칭) 회원들이 전북 도내 노브랜드 3개 지점이 동시에 문을 여는 2019년 5월 23일 오전 전북 전주시 노브랜드 삼천점 앞에서 개점 저지 규탄 집회를 하고 있다. 이날 노브랜드는 전주 삼천, 송천, 군산 수송점이 동시에 개점을 했다.

“사람이 들락날락하면서 시장이 살아났다”

노브랜드 입점으로 시장 방문객 수와 매출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0월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입점한 직후 3개월(2019년 11월~2020년 2월) 동안 이 시장 공영주차장 주차요금 징수액은 약 3124만원으로, 전년 동기(2018년 11월~2019년 2월) 징수액(2232만원)보다 28.6%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노브랜드 및 노브랜드와 같은 상가에 입점한 청년몰 매출도 늘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노브랜드 삼척중앙시장점의 최근 3개월 매출은 지난해 10월 개점 직후 3개월 매출 대비 20%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노브랜드 점포 옆에서 칼국수 가게를 운영하는 변준호(35) 씨는 지난해 11월 가게 문을 열었을 땐 한 달 매출이 100만원도 채 안 됐지만, 지금은 2000만원 이상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변 씨는 “손님의 대부분이 노브랜드와 시장을 방문하기 위해 온 고객들”이라며 “처음엔 (시장 안이라)반신반의하며 입점했고 ‘손님이 찾아올까’ 의구심도 들었지만, 가족 단위 손님과 삼척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꾸준히 찾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1층 시장 상인들도 ‘시장에 활기가 돌고 있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 시장에서 40년째 생선장사를 하는 최선월(66) 씨는 “노브랜드를 찾아온 손님들이 시장도 구경하러 오면서 시장 손님이 늘었다”며 “사람이 들락날락하면서 시장이 좀 살아났다”고 말했다. 20년 동안 떡집을 운영해온 심재열(61) 씨도 “유모차를 끈 젊은 손님들도 늘었다”고 했다. 소비자의 반응도 대체로 긍정적이다. 노브랜드 점포에서 간편식 판매대를 둘러보던 40대 여성은 “장을 볼 때 근처 홈플러스로 자주 갔지만, 노브랜드가 생기고 나선 이곳도 종종 온다. 여기서 (가공식품 등) 장을 보거나 편의시설을 이용하고, 아래 시장에서는 채소를 사는 편”이라고 말했다.

전통시장과 대형 유통기업의 상생 방식은 국외에서도 진행 중이다. 이마트가 참고한 스페인 남부 산타마리아 시장은 2006년 스페인 대형마트 체인인 ‘메르카토나’를 입점시켜 동반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시장과 마트의 판매 품목에 구분을 둬 ‘전통시장 대 대형마트’의 경쟁구도를 없앴고, 대형마트가 시장의 노후시설 개선도 지원하면서 시장 활성화를 이끈 사례다. 정연승 단국대 교수(경영학)는 “전통시장에 대한 물리적 접근성을 높여 상권의 경쟁력을 키우거나, 전통시장과 대형마트가 판매 품목을 달리해 시너지를 내는 방안을 정부가 지원하거나 성과평가를 통해 인센티브를 부여한다면 더 많은 사례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같은 유통 대기업과 전통시장 협업 모델은 안착할 수 있을까. 전통시장 전문가들은 전통시장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점에서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만 바람직한 상생 사례로 자리 잡으려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26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 등 전통시장 쪽은 노브랜드 상생스토어에 대해 “집객 효과 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그동안 전통시장은 공산품 품목이 부족한 데다 소비자를 유인할 편의시설이 마땅히 없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돼왔는데, 상생스토어가 이를 일부 해소했다는 것이다. 소진공 관계자는 “상생스토어가 들어오면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전통시장에서 원스톱 쇼핑이 가능해졌고, (전통시장 살리기라는) 상징적인 측면에서도 괜찮다고 본다”며 “시장 주력 업종과 노브랜드 업종이 겹치지 않는다는 점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상생스토어 같은 사례가 안착하기엔 걸림돌도 적지 않다고 본다. 소진공 쪽은 “시장 바깥의 소상공인도 있기 때문에, 한계가 전혀 없는 상생 모델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상생스토어가 입점한 시장은 살아날지 몰라도, 시장과 인접했지만 상생스토어와 네트워크는 떨어지는 골목상권은 타격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마트 쪽도 “삼척중앙시장은 삼척시 단일시장인데, 수도권은 반경 1㎞ 안에 여러 개의 시장이 얽혀있는 경우가 많다”며 무작정 상생스토어를 늘리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오프라인 점포와 시장이 결합한 형태의 상생 모델이 지속가능할지에 대한 우려도 있다. 정은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디지털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가 주요 소비층이 됐는데 오프라인만 고수하는 방식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며 “시장이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채널을 다변화하되, 시장에서 재료를 사서 바로 요리해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등 소비자가 원하는 전통시장만의 서비스 개발도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