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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워렌이 민주당 경선에서 하차했다

불평등과 부패에 맞선 '구조적 변화'를 내세웠던 '투쟁가' 워렌의 도전이 일단 막을 내렸다.

  • 허완
  • 입력 2020.03.06 12:43
  • 수정 2020.03.06 12:44
엘리자베스 워렌이 2020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중단을 선언했다. 미국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과 부패에 대한 '투쟁(fight)'을 강조한 그의 선거운동은 초반 경선의 의제를 주도했다. 
엘리자베스 워렌이 2020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중단을 선언했다. 미국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과 부패에 대한 '투쟁(fight)'을 강조한 그의 선거운동은 초반 경선의 의제를 주도했다.  ⓒASSOCIATED PRESS

2020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한 때 선두를 달렸던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의원(매사추세츠)이 5일(현지시각) 경선에서 하차했다.

그는 불평등 해소와 대기업·금융 규제 등을 통한 ”크고 구조적인 변화”를 내세우며 진보층을 열광시켰지만 민주당 내 다양한 유권자층을 아우르는 견고한 지지세를 구축하는 데에는 실패하면서 끝내 대선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젠더와 인종, 성적지향 등 그 어느 때보다 다양성 넘치는 후보들이 참여했던 민주당 경선은 이제 사실상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이라는 백인 남성 두 명만 남게 됐다.

엘리자베스 워렌이 자택 앞에서 기자들에게 경선 하차 소식을 발표하고 있다. 케임브리지, 매사추세츠주. 2020년 3월5일.
엘리자베스 워렌이 자택 앞에서 기자들에게 경선 하차 소식을 발표하고 있다. 케임브리지, 매사추세츠주. 2020년 3월5일. ⓒBoston Globe via Getty Images

 

워렌은 이날 오전 자택 앞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경선 하차 소식을 발표했다.

”저는 선거운동을 중단합니다.” 남편 부르스 만이 지켜보는 가운데 워렌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는 매번 부당한 대접을 받아왔던 전국의 성실히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약속드립니다. 그게 바로 제 인생의 싸움이었고요,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법학을 전공한 워렌은 연구 과정에서 불합리한 파산법 제도가 중산층에 미치는 영향에 눈을 뜬 이후 줄곧 이 분야에 매달렸다. 하버드대 로스쿨 등에서 강의하면서 파산법과 상법 분야에서 권위있는 연구자로 이름을 날렸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오바마 정부 당시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이 설립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정작 그는 규제 강화를 우려한 공화당과 금융계의 반대로 CFPB 국장을 맡지는 못했다.)

 

″저에게는 일생일대의 영광스러운 시간들이었습니다.” 워렌이 2019년 1월 출마를 선언한 이후 1년 넘도록 이어졌던 선거운동을 돌아보며 말했다. 회상은 그가 미국의 ‘고장난 시스템’에 대한 연구에 매달렸던 그 시절들로도 이어졌다. 

“10년 전에 저는 여기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미국에서 고장난 게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고칠 것인지에 대한 구상들을 말하고는 했습니다. (그 때는) 거의 아무도 그런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죠.”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계기로) 저는 밖에 나가서 수백만명의 사람들과 (그 아이디어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얘기하지 않았던 구상들을 우리가 지금 얘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2% 부유세, 우리가 실현할 수 있는 유니버셜 차일드케어, 미국인 4300만명이 혜택을 보는 학자금대출 탕감, 사회보장연금 인상 것들 말입니다.” 

워렌의 유세를 듣고 있는 지지자들의 모습. 맨체스터, 뉴햄프셔주. 2020년 2월11일.
워렌의 유세를 듣고 있는 지지자들의 모습. 맨체스터, 뉴햄프셔주. 2020년 2월11일. ⓒASSOCIATED PRESS

 

워렌은 2012년 선거에서 매사추세츠 상원의원에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미국 재계를 대표하는 상공회의소로부터 ”기업활동의 자유에 있어서 워렌 교수만큼 중대한 위협을 초래하는 후보는 없다”는, 악담에 가까운 말을 들었음에도 그는 대기업이나 금융계의 후원 없이도 그 해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그 어느 후보보다 많은 선거자금을 모금했다.

‘중산층의 수호자’를 자임하며 ”부당하게 조작된 체계”를 바꾸는 일을 의정활동의 목표로 삼았던 워렌은 꼼꼼한 정책을 바탕으로 하는 입법활동은 물론, 대기업 CEO와 규제당국을 매섭게 추궁하는 모습으로도 주목 받았다. 정치인이 된 지 4년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임에도 2016년 대선 출마설이 나올 정도였다.

압도적인 표차로 2018년 상원의원 재선에 성공한 그는 2019년 1월, 마침내 2020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하게 된다. 그는 분명 민주당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후보였다. 그러나 민주당의 진보층과 중도층을 아우르며 ‘변화’를 이끌겠다는 그의 구상은 어떤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 모든 게 시작될 때, 저는 (경선에서) 두 개의 노선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나는 버니 샌더스가 차지하고 있는 진보 노선이고, 또 하나는 조 바이든이 점유하고 있는 중도 노선이다. 그밖의 다른 사람의 자리는 없다’고 말이죠.” 워렌이 기자들에게 말했다.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제 생각이 틀렸던 거죠.”

초기 경선 지역에서 부진했던 워렌은 '슈퍼 화요일'에서 반전을 노렸지만, 극적인 반전을 이뤄낸 바이든과 샌더스의 '2파전'으로 경선 구도가 굳어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초기 경선 지역에서 부진했던 워렌은 '슈퍼 화요일'에서 반전을 노렸지만, 극적인 반전을 이뤄낸 바이든과 샌더스의 '2파전'으로 경선 구도가 굳어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ASSOCIATED PRESS

 

경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부터 워렌은 그 누구보다도 야심차고도 방대한 구상들을 쏟아내며 정책 경쟁을 주도했다. ‘나에게 다 계획이 있다(I have plan for that)!’가 바로 워렌을 상징하는 말이자 구호였다. 유세에서 대규모 청중을 운집시켰고, 개인들의 선거 기부금이 쏟아져들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곧 경쟁자들의 공격에 직면해야 했다. 일례로 다른 후보들은 ″메디케어 포 올(전국민 건강보험)에 막대한 재원이 필요할 텐데 중산층 세금을 올릴 거냐‘고 따져물었고, 워렌은 답변을 주저했다. 곧 그의 건강보험 공약은 ‘단계적 시행’ 쪽으로 한 걸음 후퇴했고, 중산층 증세를 피하기 위해 다소 복잡한 재원조달 방안이 동원되어야만 했다.

그밖에도 그는 다른 여러 층위의 도전에도 맞서야만 했다. ‘너무 날카로워 보인다‘거나 ‘여성 후보로 트럼프를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식의 편견도 그 중 하나였다. 자신의 동지이자 경쟁자였던 샌더스와 이 문제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워렌은 자신이 ‘여성후보‘라는 점을 강조하는 대신, 부패한 시스템과 불평등에 맞서는 ‘전사’로서 어필하고자 했다. 그렇다고 그가 유독 여성 후보에게만 적용되는 이중잣대를 외면하거나 무시한 건 아니었다. 그는 그저 싸울 뿐이었다.

다양한 정책을 들고 나온 워렌은 어떤 이슈에서든 '나에게 다 계획이 있다(I have plan for that)!'는 말로 말을 시작하고는 했다. 이 말은 그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구호가 됐다.
다양한 정책을 들고 나온 워렌은 어떤 이슈에서든 '나에게 다 계획이 있다(I have plan for that)!'는 말로 말을 시작하고는 했다. 이 말은 그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구호가 됐다. ⓒScott Olson via Getty Images

 

″여성들은 항상 이런 문제들을 겪습니다. ‘너무 이렇다(여성이 너무 공격적이다)‘거나 ‘너무 저렇다(‘여성이어서 충분히 공격적이지 않다)거나 하는 말들을 항상 듣죠.” 지난 2월 NBC뉴스 인터뷰에서 워렌이 말했다. ”그러나 묵묵히 하던 일을 하면서 계속 나아가는 거죠. ’우리는 끈질기게 계속한다(We persist)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경선 하차 소식을 발표하는 그에게 한 기자는 ”이제 선택지가 백인 남성 두 명만 남게됐다고 느낄 여성과 소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알고 있습니다.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겠다는) 그 모든 약속들과, (다음 선거 때까지 최소한) 4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어린 소녀들이 경선 포기 중단 결정에서 제일 힘든 부분 중 하나였습니다.” 워렌이 말했다.

‘이번 경선에서 젠더가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는 ”모든 여성들을 함정에 빠뜨리는 질문”이라는 말로 답을 시작했다.

″‘그럼요. 성차별이 있죠‘라고 말하면 모두가 ‘투덜이(whiner)!‘이라고 하죠. 만약 ‘아뇨, 성차별은 없었어요‘라고 말하면 수많은 여성들은 ‘대체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거야?’라고 생각하죠.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많은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약속드립니다.”

워렌의 하차로 이제 민주당 경선에는 진보 후보인 버니 샌더스와 중도 후보인 조 바이든 밖에 남지 않게 됐다.
워렌의 하차로 이제 민주당 경선에는 진보 후보인 버니 샌더스와 중도 후보인 조 바이든 밖에 남지 않게 됐다. ⓒWin McNamee via Getty Images

 

워렌의 하차로 이제 민주당 경선이 바이든과 샌더스의 2파전으로 굳어지게 됐다. 워렌은 진보적 이념의 많은 부분에서 뜻을 함께해왔던 샌더스에 대해 곧바로 지지를 선언하지는 않았다. 세 번이나 비슷한 질문을 받았음에도, 그는 즉답을 피했다.

대신 워렌은 ”이 싸움”을 위해 생업을 중단해가면서까지 시간과 마음을 쏟아 선거운동에 동참해 줬던 수많은 운동원과 자원봉사자들을 언급했고, 그 모든 ”약속들”을 위해 어떻게 ”이 싸움을 계속”하는 게 가장 효과적일지 생각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숨을 깊이 한 번 쉬고 시간을 들여서 생각을 해봅시다. 지금 바로 결정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워렌이 말했다. ”시간을 조금 더 갖고 생각을 더 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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