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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의 무게

ⓒhuffpost

친구의 손바닥에 보이지 않던 굳은살이 깊게 박여 있다. 승강기 안전점검을 하는 하청업체의 하청의 보조 인력으로 일한 지 3개월째라고 한다. 200㎏ 쇳덩이 여섯 묶음을 승강기에 옮긴 후 꼭대기 층에서 맨 아래층까지 운행하는 일이다. 쇳덩이는 분동이라고 부른다. 승강기가 감당할 수 있는 양의 분동으로 1차 점검 후, 2차로 125% 초과된 분동을 승강기에 싣고 점검을 한다. 

친구는 얼마 전 일을 하다가 공황증상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승강기에 초과된 무게를 싣고 불시에 멈추는 2차 점검 중이었다고 한다. 승강기 문에 문제가 생겨서 승강기 안에서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었고, 친구는 떠밀리듯 승강기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승강기가 멈췄고 친구는 놀라서 주저앉았다. 다리가 떨릴 정도로 충격이었다. 승강기에서 나와 안전공사 직원에게 “그러게 초과용량 실을 때 위험하니까 타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내가 얘기한 적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Casarsa via Getty Images

이후에도 친구는 싫다고 했지만 얼떨결에 초과된 쇳덩이와 함께 승강기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의제기를 해도 직원들은 책임을 회피했다고 같은 하청의 동료에게 부당함을 호소했더니, “위험해도 점검을 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죠. 안에서 버튼 누를 사람이 필요한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친구는 “사람이 안전하게 타라고 하는 일인데, 안전점검을 하는 내 몸은 사람이 아닌가”라며 쓸쓸하게 웃었다. 

친구에게 물었다. “산재보험은 들어 있고?” 없다고 한다. 근로계약서는 썼냐고 물었다. 안 썼다고 한다. “그건 불법이야. 알바노조나 민주노총에 전화해서 상담받는 거 어때?” 친구는 알겠다면서 말했다. “그래도 이번 정권 공약이 하청업체 문제들 해결하는 거래.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그랬어.” 승강기 안전공단의 직원들도 공무원이고 승강기 안전작업은 공무수행이라고 한다. 그들의 하청의 하청인 친구는 최소한의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다. 답답해서 말했다. “사람들이랑 노동조합 만들고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친구가 대답했다. “나는 그러고 싶은데, 혼자서 되는 게 아니잖아. 사람들에게 말했는데 다들 어쩔 수 없다고 해. 원래 그런 거라고.” 친구는 이런 무기력에 익숙해지기 싫다며 한숨을 쉬었다. 무기력, 어쩔 수 없는 세상, 원래 그런 세상이라는 말이 뻐근한 쇳덩이처럼 친구를 짓누른다. 

“이런 일상을 꼭 글로 쓰고 공유해줘. 다시는 초과용량일 때 승강기에 들어가지 마. 몸 조심히 일해, 다치지 말고.” 친구에게 내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말이 고작, 알아서 몸 조심히 일하라는 것인 게 서글프다. 친구는 주말에는 그림 그리고 타투를 하고, 일이 끝난 평일 저녁에는 불교대학의 야간수업을 들으며 명상을 한다. 공황이 오는 순간을 대비해 더 열심히 명상하고 있다고 한다. 섬세한 바늘 끝을 한땀 한땀 피부에 새기고 200㎏의 쇳덩이를 끌고 들어 올리는 친구. 그와 나를 짓누르는 건 단지 분동 200㎏과 적은 최저임금, 근로계약서조차 쓰지 않는 일터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원래 현실이 그런걸.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어”에서 멈추는 말들이다. 일상에서, 일터에서 4년 전 오늘도 사람들을 짓누르던 잔인한 말들. 그 말들에 찌그러지지 말자고. 휘둘리지 않는 쇳덩이, 휘지 않는 바늘처럼 쓰고 그리고 말하자고 말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쓴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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