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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의 뻘짓 - 장어덮밥 먹으려 2시간이나 줄 선 사연

  • 이준구
  • 입력 2018.04.11 11:55
  • 수정 2018.04.12 14:56
ⓒhuffpost
ⓒ이준구
ⓒ이준구

경제학자는 늘 돈 얘기만 하지만 큰돈을 번 경제학자는 아주 드뭅니다. 또한 경제학자가 제일 강조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지만 막상 자신의 선택에서는 합리성을 무시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바로 그 좋은 예가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최근 오사카와 교토를 잠깐 다녀왔습니다. 사람들 말을 들으니 교토 교외의 아라시야마라는 곳이 좋다길래 하루 짬을 내어 그곳에 갔습니다. 그런데 거길 가면 장어덮밥 요리를 꼭 먹어봐야 한다더군요.

듣자하니 그 집은 요즈음 꽤 이름이 나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다네요. 예약을 할 수 있기는 한데, 1000엔을 내야 한다고 합니다. 줄 서 보았자 몇 분 기다리면 되는 건데 굳이 그 돈을 내고 예약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더군요. 뿐만 아니라 일본말을 못하는지라 영어로 예약이 될지도 잘 몰랐구요.

그래서 예약하지 않고 줄을 서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나의 최대의 실책이었습니다. 전혀 경제학자 답지 않은 선택을 한 셈입니다. 그 돈과 2시간을 바꿀 수 있다면 난 언제든 기꺼이 그 거래에 응할 테니까요.

아라시야마역에 도착해 구경을 하는 도중 그 음식점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10시였는데 벌써 꽤 많은 사람들이 그 집 앞에 줄을 서 있더군요. 11시 반에 문을 연다니 최소한 한 시간 반을 기다려야 하는데 말입니다. 나는 그들을 비웃으며 그 앞을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친구들은 나보다 30분이나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구경을 마치고 그 집에 간 시간이 바로 11시 15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여기 사진에서 보는 정도로 줄이 길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줄 끝에 섰습니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30분, 음식점 아주머니가 나오더니 앞으로 1시간 반 후에 식사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해 주더군요. 바로 그때가 내가 결단을 내렸어야 할 때였습니다. 나는 그 결단의 시기를 놓치고 빗속에서 1시간 반을 더 기다리는 바보 같은 짓을 했던 것입니다.

이왕 기다린 30분은 매몰비용(sunk cost)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매몰비용이란 것은 일단 지출하면 어떻게 하더라도 다시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뜻합니다. 내가 경제학원론을 가르칠 때 늘 강조하는 것이 매몰비용은 아예 고려대상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수할 수도 없는데 이미 들어간 비용에 연연하다가는 잘못된 선택에 이르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찬스에서 난 매몰비용을 무시하지 못하는 뻘짓을 했습니다. 30분 기다린 게 아까워 차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으니까요. 내 경제학원론을 수강하는 제자들이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날 비웃었겠지요? 

내가 계속 줄 서서 기다리기로 결심한 데는 과연 음식맛이 얼마나 좋은지 알아보고 싶은 오기도 작용을 했습니다. 과연 2시간이나 줄을 서서 먹을 가치가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인터넷의 방문 후기를 보면 화려한 미사여구로 음식맛을 칭찬하고 있었는데 그게 사실인지 알아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난 그 아주머니가 1시간 반을 더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을 때 넉넉하게 잡은 예측을 말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예측이 정확히 맞아 난 꼬박 2시간을 기다린 끝에 장어덮밥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사진에 보이는 게 바로 그 음식입니다. 

그런데 구운 장어를 한 입 먹어본 순간 급 후회가 밀려들었습니다. 우리 집 부근의 장어덮밥보다 더 맛있을 게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고작 이걸 먹으려고 2시간이나 기다렸나하는 자책이 밀려오더군요.

그 장어덮밥의 가격은 우리 돈 4만 8천원 정도였습니다. 거기다가 2시간의 시간비용까지 합치면 나는 어마어마한 기회비용(opportunity cost)를 치르고 그걸 먹은 셈입니다. 합리성을 강조하는 경제학자가 할 일은 결코 아니었던 겁니다. 누가 나를 비웃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문제는 나의 뻘짓이 이것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는 데 있습니다. 오사카에 왔는데 지인이 도톤부리의 오코노미야키 집을 소개해 주더군요.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이 집도 그 장어집과 마찬가지로 미슐렝 가이드에 소개되었다고 하더군요.

거기서 또 다시 추위에 떨며 1시간을 기다리는 뻘짓을 했습니다. 야키소바와 오코노미야키를 시켰는데 그게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겠습니까? 기껏 국수와 빈대떡인데 말입니다. 그걸 먹으려고 1시간을 추위에 떤 내가 경제학자 맞나 싶은 생각까지 들더군요.

오사카에서 돌아오는 날 또 한 번 뻘짓을 할 뻔 했습니다. 유명한 햄버그 집이라 하는데 1시 45분에 도착했기 때문에 기다리지 않고 입장할 줄 알았습니다. 가보니 이 집에도 그 시간에 긴 줄이 만들어져 있더군요.

처음엔 줄을 서서 몇 분 기다렸지만 곧 이성을 되찾았습니다. 그까짓 햄버그가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다고 또 그 아까운 시간을 소비한답니까? 바로 옆 중국집으로 옮겼지요. 거기서 먹은 만두가 얼마나 맛나던지요.

나는 평소부터 줄 서서 기다리는 걸 아주 싫어합니다. 지난 번 군산에서 짬뽕 먹으려고 폭우 속에서 45분 기다렸다가 크게 후회한 경험도 있구요. 그런데도 이번 일본 여행에서는 평소의 소신을 버렸다가 망신을 당한 거지요. 이제 다시는 맛집이라 해서 줄 서는 일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인터넷의 방문 후기에는 과장이 많이 섞여 있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 장어집 후기 쓴 거 보니까 하도 맛있어서 밥을 깨끗이 비웠다고 하더군요. 내 생각으로는 밥의 양이 적어서 깨끗이 청소했을 겁니다. 뭐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테지만, 하여튼 세상없는 맛집이라 하더라도 몇 시간씩 줄 서서 기다리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 필자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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