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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가 과감한 재정정책을 펼쳤다면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ASSOCIATED PRESS
ⓒhuffpost

19세기 대영제국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한 것은 재무성이었다. 재무성을 영국 정부의 핵심 부서로 만든 사람은 보수당에 맞서 서민의 이익을 옹호하며 자유당을 이끌었던 윌리엄 글래드스턴이다. 그는 “돈은 인민과 시장의 수중에 있을 때 최선의 결실을 맺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정부의 재정지출은 조세 수입의 범위 내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균형예산’ 원칙을 세워, 모든 부서의 예산 절감을 독려했다.

이 원칙은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재무성 관료들은 불황에서 탈출하려면 재정적자를 줄여서 금융시장과 재계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믿었다. 정부가 차입을 통해 지출을 늘리는 것에 대해서는 금리 상승과 민간 활동의 위축을 가져온다며 비판적이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재무성 견해’가 적어도 불황의 상황에서는 옳지 않으며, 사태를 악화시킨다고 생각했다. 불황의 핵심은 가계와 기업이 돈을 쓰지 않는 데 있다. 물건이 팔리지 않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저축이 개인적으로는 미덕이지만 국민경제 전체로는 해악인 ‘구성의 모순’이 발생한다. 모두가 지출을 줄임으로써 서로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 역설적 상황을 해결할 유일한 존재는 민간으로부터 돈을 빌려 부족한 수요를 채워주는 정부이다. 이 과정에서 쌓인 재정적자 문제는 경기가 좋아지면 세수를 늘리고 정부지출을 줄임으로써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그런데 ‘재무성 견해’는 힘이 셌다.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대공황의 불을 끄는 데 성공했던 루스벨트 대통령마저도 “균형예산은 좋은 것이고 재정적자는 나쁜 것”이라는 믿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경기가 회복 기조로 돌아서자 서둘러서 균형재정을 위해 긴축으로 돌아섰고 미국 경제는 다시 악화되었다.

이러한 믿음은 오늘날 ‘건전재정’의 이름으로 그 힘이 더 커졌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확장적 재정정책이 펼쳐졌지만, 불황의 골에 비교했을 때 그 규모는 크지 않았고 오래 지속되지도 못했다. ‘건전재정’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집권당에 흠집을 내려 했던 공화당은 특정 분야의 지출을 늘릴 경우 다른 분야의 예산을 줄이도록 압박했다. 게다가 오바마 대통령 자신도 재정정책의 효과에 대한 확신이 크지 않았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지난 10년 동안 재정정책이 대규모로 장기간 지속되었다면, 트럼프의 집권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대규모 재정투입이 민간의 소비 및 투자를 크게 늘려줄 마중물 구실을 했다면 어땠을까? 통화정책 당국에 부족한 수요를 채울 부담이 전가되지도, 저금리 기조로 경제 전반의 거품이 커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람에 대한 투자와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확충이 본격화되었다면, 빈부격차가 이처럼 극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국 경제가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장기침체’에 빠졌다며, 이를 재정정책의 실패로 인한 만성적인 수요 부진과 연결시키는 분석이 제출되기도 했다.

현대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정부의 경제적 관리를 필요로 하며, 그 토대는 재정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재정정책의 핵심은 경기후퇴에 대한 신속하고도 적절한 개입을 통해 불황이 장기화되고 고착화되는 것을 예방하는 데 있다. 재정정책은 예산을 매개로 국민들의 가치관과 열망, 그리고 사회적 합의를 담아낸다. 따라서 그 배합을 어떻게 하느냐의 측면에서는 사회정책의 성격을 지니기도 한다. ‘건전재정’은 재정정책이 본연의 목적을 제대로 달성할 수 있도록 할 여러 조건 중의 하나이다. 세상사도 그렇지만 경제정책에 있어서도 본말이 전도되지 않아야 한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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