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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시장경제와 한반도의 봄

ⓒhuffpost

전쟁 위기를 넘어 정상회담을 앞둔 한반도의 변화를 일본에서 바라보는 마음은 감회가 크다. 2002년 고이즈미 전 총리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일 수교를 가장 반대했던 관료가 지금의 아베 총리였다. 상전벽해와도 같은 한반도 정세 변화에 그는 심기가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북한은 앞으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중단하고 경제발전에 집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물론 북이 ‘정의의 보검’이라는 기존 핵무기를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비핵화를 천명한 후 핵개발을 중단하겠다는 발표는 정상회담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미국의 변화, 그리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동시에 대화를 추진한 한국 정부의 꾸준한 노력 등 여러 요인 덕분일 것이다. 이와 함께 북한 내부적으로는 시장경제의 발전을 김정은이 대화에 나선 중요한 배경으로 들 수 있다. 북한 경제는 1990년대 이후 장마당으로 대표되는 아래로부터의 시장화가 진전되었고, 당국도 2003년부터 이를 인정하여 인가받은 종합시장만 482개에 달한다.

<시사인> 이종태 기자가 쓴 <햇볕 장마당 법치>라는 책은 현실에서 북한의 시장경제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는 당국의 묵인하에 이른바 ‘돈주’들의 이윤을 목표로 한 생산활동이 활발하며, 물류와 금융 그리고 부동산 거래도 발전하고 있다고 보고한다. 특히 개성공단과 나선특구는 북한이 시장제도와 법치를 배우는 학습의 장이 되었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 따르면 북한 가구소득의 70~90%가 시장과 관련된 활동에서 나온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북한경제 베일 벗기기>라는 책에서 탈북자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 북한 가구소득의 1.3%만이 공식적인 수입이고 비공식적 수입이 약 63%에 달한다고 보고한다. 또한 북한의 가구는 식량의 약 60%와 소비재의 약 67%를 시장을 통해 얻는다.

그는 특히 북한의 대외무역이 2000년대 이후 급속히 늘어나 무역의존도가 2013년 약 46%에 이르렀다고 강조한다. 이와 함께 북한 경제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점차 회복되었고, 한국은행의 추정에 따르면 2016년에는 3.9%나 성장했다.

시장경제와 대외무역의 발전은 역설적이게도 무연탄 수출 제한 등 핵실험 이후 강화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효과적으로 만들었다. 김 교수는 경제제재로 2017년 북한의 성장률이 약 2%포인트 낮아져 거의 마이너스 성장을 했으며, 시간이 갈수록 외화공급이 부족해져 상황이 악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제 시장을 통해 먹고사는 북한 주민들은 시장경제의 발전을 바랄 것이며, 이를 위한 개혁, 개방의 성공은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필요로 한다. 시장경제가 발전하면 김정은의 권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지만, 핵무기를 손에 쥔 채 경제가 악화되면 정권이 더욱 위험할 수도 있다. 결국 김정은은 시장경제라는 달리는 호랑이 등 위에 올라타 협상의 장으로 나서고 있는 셈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난관들도 있겠지만, 성공적인 협상으로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를 멀리서 기대해본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북한의 시장경제 발전을 촉진하고 이행을 돕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북한은 장기적으로 국가와 시장을 적절히 결합한 박정희의 발전모델에서 배울 점이 많으며, 가까이는 개성공단과 같은 경제협력이 시장경제의 기초인 법·제도의 발전에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다. 북한에 시장경제가 꽃필수록 한반도에 봄은 더욱 가까이 올 것이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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