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는 비만과 당뇨 막는 '이것'이 있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는 오랫동안 벼농사를 해왔다.
동아시아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쌀밥을 먹어 왔고 그 과정에서 영양학적 부작용을 줄이는 진화적 적응을 했다.
동아시아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쌀밥을 먹어 왔고 그 과정에서 영양학적 부작용을 줄이는 진화적 적응을 했다.

한국인을 비롯한 동아시아인은 오랜 벼농사 덕분에 고탄수화물 식사로 인한 비만과 당뇨병 등의 부작용을 막는 유전적 적응을 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오랜 목축 역사가 있는 유럽 등 일부 지역 사람들은 유당 분해 효소를 어른이 되고 나서도 분비해 우유를 불편 없이 마실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진화가 동아시아에서도 일어났다는 주장이다.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 등 국제 연구진은 아시아의 벼 재배 전파에 관한 고고학적 발견과 124개 인구집단에 포함된 2000명 이상의 유전체(게놈)를 분석해 이런 사실을 알아냈다고 과학저널 ‘진화 응용’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연구에 참여한 마르코 사치니 볼로냐대 교수는 “일부 동아시아인들의 조상은 적어도 1만년 전부터 매일 쌀을 먹기 시작했고, 그 결과 고혈당 식사가 몸의 대사에 끼치는 해로운 영향을 줄이는 유전체의 적응이 일어났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쌀은 인류가 재배하는 곡물 가운데 탄수화물 함량과 혈당지수가 가장 높다. 혈당지수는 섭취 후 얼마나 빨리 혈당을 높이는지를 가리키는데 동아시아인 조상이 먹었던 쌀과 비슷한 현미의 혈당지수 88은 밀의 30보다 3배 가까이 높다.


동아시아인 비만·당뇨 적었던 이유

야생 벼. 중국 양츠강 유역에서는 1만2000년 전부터 야생 벼를 먹었다.
야생 벼. 중국 양츠강 유역에서는 1만2000년 전부터 야생 벼를 먹었다.


연구자들은 최근 고고학적 연구결과 중국 양츠강 유역에서 1만2000년 전부터 야생 벼를 섭취했고 이어 현재의 단미 종 품종을 작물화했다는 데 주목했다. 야생 벼의 작물화와 재배기술은 7000∼6000년 전 한국과 일본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인도 북부에서 독립적으로 벼 재배가 시작된 것은 4000년 전이었고 이때 재배한 장미 종의 벼는 동아시아의 벼에 견줘 혈당지수가 훨씬 낮다.

제1 저자인 아드리아나 란디니 볼로냐대 박사과정생은 “(혈당지수가 높은) 다른 품종의 벼를 수천 년 먼저 재배하기 시작한 중국, 한국, 일본 사람들은 인도 등 서아시아인들이 겪은 것보다 심한 대사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며 “이 때문에 고혈당 식사가 초래할 대사질환에 걸리는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유전체 적응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이런 유전적 적응을 확인하기 위해 중국의 오랜 소수민족인 후난 성 투져 족, 한국인, 일본인 등 동아시아인의 유전체를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미얀마, 베트남 사람 등의 유전체와 비교 분석했다.

쌀 재배 기원지와 조사 대상 인구집단 위치.
쌀 재배 기원지와 조사 대상 인구집단 위치.

연구에 참여한 클라우디아 오예다-그라나도스 볼로냐대 연구원은 “동아시아 사람과 달리 서아시아와 동남아인은 특정 식사로 인한 대사 스트레스와 관련된 유전적 적응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대조적으로 중국 툰쟈 족, 한국, 일본인 조상은 유사한 대사 유전체의 적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이 찾은 동아시아인들의 유전적 변화 일부는 탄수화물이 콜레스테롤과 지방산으로 전환되는 것을 억제해 체질량지수(BMI)를 줄이고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낮추는 것과 관련돼 있었다. 일부 변화는 인슐린 저항성을 줄이는 쪽으로 적응했다. 인슐린은 간에서 포도당 생성을 억제하는 등의 방식으로 혈중 포도당 농도를 낮추는데, 인슐린 저항성이란 인슐린 작용이 떨어진 상태를 가리키며 당뇨병의 주요 요소이다.

이 밖에 일부 유전적 변화는 비타민 에이(A)의 대사산물인 레티노산의 생산을 촉진하는 기능을 하는데, 이 영양물질이 부족하면 쌀을 주식으로 하는 사람에게 종종 건강문제를 일으킨다.


유전적 진화 덕분에 비만, 당뇨 적어

야생종을 포함한 다양한 품종의 단미 종(인디카) 쌀.
야생종을 포함한 다양한 품종의 단미 종(인디카) 쌀.

한국 등 동아시아인들에게 전통적으로 비만과 당뇨가 적은 것은 이런 유전적 진화 덕분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당뇨병 유병률은 1960년대만 해도 0.5% 미만에 그쳤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식생활의 서구화, 도시화로 인한 활동량 감소, 고칼로리 식품 소비 증가 등으로 동아시아인의 당뇨 유병률은 급증해 세계 환자의 60%를 차지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일찍부터 고탄수화물 쌀을 소비하면서 획득한 유전적 이점은 모두 상실된 것일까.

사치니 교수는 “이런 적응은 아직도 생활방식의 세계화와 서구화가 초래한 식생활 변화로 인한 부정적 효과를 억누르는 데 핵심 구실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같이 쌀을 주식으로 하는 서아시아인들의 당뇨와 비만율이 동아시아인보다 높은 것을 그 근거로 들었다.

국제 당뇨 연맹(IDF)의 2019년 20∼79살 당뇨병 유병률 통계를 보면 파키스탄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19.9%였고 인도가 10.4%로 두 번째였다. 중국은 9.2%로 19위, 한국은 6.9%로 26위, 일본은 5.6%로 42위였다.

연구에 참여한 진한준 단국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유럽과 아프리카, 지중해 등에서 가축을 기르던 사람들 사이에서 우유를 잘 소화할 수 있도록 유전적 적응을 한 것처럼 동아시아인은 탄수화물의 부작용을 줄이면서 잘 섭취하도록 진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용 저널: Evolutionary Applications, DOI: 10.1111/eva.13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