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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동 휘발유] '펜트하우스', '김순옥'과 '19금'은 만능 방패가 아니다

시종일관 쏟아붓는 강력한 ‘마라맛’에 정신이 마비될 지경이다.

SBS '펜트하우스'
SBS '펜트하우스' ⓒSBS

콜럼버스가 달걀 밑을 깨기 전까지 아무도 달걀을 세울 수 없었듯, 선은 처음 넘는 것이 어렵다. 누군가 넘기만 하면 모두가 선이 무너질 때까지 우르르 밟고 넘어선다.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말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안방극장에 불어닥친 ’19금 열풍’이 그렇다. 특히 상류층 및 기득권의 위선과 추악한 이면들을 폭로하겠다며 나선 드라마들이 방영 도중 ’19금′ 딱지를 제몸에 붙이곤 했다.

이 같은 시청 등급 조정은 대부분 자발적인 것이 아니었다. 드라마의 과도한 선정성과 폭력성을 견디다 못한 시청자와 평단이 항의하자 슬그머니 ’19금‘을 내걸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변호하며 ‘날것 그대로의 현실 풍자‘라는 방패를 세우곤 한다. ‘현실은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막장’이라는 논리다.

기실 언제까지나 공고할 것만 같던 ‘신데렐라 스토리‘의 아성이 깨지고 ‘영웅 신화’ 류의 청춘 이야기가 더 이상 시청자들을 사로잡지 못하게 된 건 이런 소재들이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이처럼 ‘현실’을 표방한 더 맵고 짠 이야기들이 시청자들을 마취했고, 드라마가 보여주는 자극의 역치는 끝을 모르고 올라갔다. 이제 출생의 비밀이나 겹사돈 같은 건 막장 축에도 들지 못한다.

’19금 드라마’가 절대악은 아니다. 이들의 말마따나 세상에는 19세 미만 관람불가 사건들이 너무도 많이 일어난다. 그런 현실의 단면들을 극으로 풀어내 보는 이들에게 쾌감을 선사하는 건 드라마의 존재 의의일지도 모른다. 일례로 단순 치정 관계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묘사한 JTBC ‘부부의 세계’를 보면 이야기 자체가 가진 힘을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묘사’에 있다. ‘부부의 세계’는 주인공 지선우(김희애)가 폭행당하는 장면을 폭행범의 시선으로 촬영하며 15세 관람가를 달았다. 불특정 다수가 관람하는 대중매체에서 폭행을 장시간 노출하다 못해 포르노처럼 눈요깃거리로 연출하며 비판의 중심에 섰다. 심지어 이 대목은 내용 전개상 그렇게까지 집중적으로 다룰 필요도 없었다. ’19금’의 짭짤한 맛을 보지 않고는 나오기 힘든 연출이었다.

SBS '펜트하우스'
SBS '펜트하우스' ⓒSBS

첫 방송부터 이 같이 과도한 묘사로 시청자들의 정신을 폭행한 드라마가 나왔다. 작가 임성한과 함께 한국 드라마계의 ‘막장 대모’로 꼽히는 작가 김순옥과 ‘선 넘는 막장‘의 신흥 강자이자 스태프 처우 문제로 끊임 없는 논란을 일으킨 주동민 PD의 재회작, SBS ‘펜트하우스’다.

이들은 이미 SBS ‘황후의 품격‘에서 납치된 주인공에게 시멘트를 붓거나 임산부를 성폭행하는 장면 등으로 법정제재 3건을 받은 콤비였다. 그 명성 답게 ‘펜트하우스’는 단 2화 만에 시청률 10%를 돌파했다. 한 회당 한 명씩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그 모습을 자세히도 묘사하다 보니 15세 관람가던 드라마가 4회부터는 19세 미만 관람불가가 됐다.

’19금′ 딱지를 붙였다고 해서 이 드라마가 청소년에게만 유해하다는 건 착각이다. 시작부터 시청자와 100층 펜트하우스에서 추락하는 민설아(조수민)의 눈을 마주치게 하더니 기관총 난사에 시체 훼손 및 은닉까지 가지가지다. 수 틀리면 고성을 지르고 손부터 올라가는 등장인물들은 반드시 피를 보고야 만다. TV 뉴스에선 국회의원의 사망 소식을 다루며 시신을 모자이크해서 보여줄 정도니 중학생들이 동급생 한 명을 두고 조직 폭력배 급 괴롭힘을 가하는 장면은 ‘순한 맛’에 불과하다.

때문에 이야기의 개연성 결여가 거의 ‘드라마적 허용‘으로 느껴진다. 보안이 청와대 급으로 철저해야 할 펜트하우스인데 외부인인 오윤희(유진)이 자유자재로 드나들고, 아파트 반상회에서 입주민들이 유럽 귀족을 방불케 하는 의상을 입고 춤판을 벌이는데 싸이키 조명이 번쩍거리는 건 심각하지도 않다. SBS ‘리턴‘, JTBC ‘부부의 세계‘, ‘스카이캐슬‘, OCN ‘미스터 기간제‘,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하이라이즈’에서 본 듯한 설정들이 난무해도 이야기 자체는 재미있다.

언급했듯 문제는 ‘묘사‘다. 더욱 더 큰 문제는 이 같이 불필요한 막장 묘사를 하면서 ‘김순옥 월드’와 ’19금‘이라는 단어 뒤에 숨는 제작진이다. ‘김순옥이니까’, ’19금이니까‘라는 말이 ‘슈퍼패스’는 아니다.

‘김순옥 월드’의 흥행 포인트는 지상파에서 ’19금’ 논란을 부를 만큼의 선정성과 폭력성이 아니다. 그가 써 내려간 세계관의 중심에는 ‘권선징악’,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가 있다. 가난하고 억척스러운 주인공이 부자들에게 당하다가 시원하게 복수하는 스토리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속도감 있는 전개가 김순옥 극본의 매력이다. 매번 주인공만 바뀌는 자기복제성 이야기일지언정 시청자들을 강력하게 흡입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이는 없을 것이다.

‘펜트하우스‘의 초반 흥행은 이런 ‘김순옥 월드‘의 장점이 단순 막장 묘사였다는 착시를 준다. 사실 이 드라마의 주요 스토리는 김순옥의 다른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난한 자를 바닥까지 떨어뜨리고, 부자들은 끊임 없이 ‘내가 이렇게 나쁘다‘를 과장스럽게 강조한다. 그러나 전작들은 시청자들을 웃게는 해 줬다. ‘펜트하우스‘에는 그럴 틈이 없다. 시종일관 쏟아붓는 강력한 ‘마라맛’에 정신이 마비될 지경이다.

결국 ‘펜트하우스’가 표방하는 ’19금‘이란 ‘똥이 더럽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시청자 눈에 똥칠을 하는 형국이며, 일부 기득권의 천민 자본주의를 비판하겠다며 천민 자본주의 그 자체가 된 꼴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연일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는 ‘펜트하우스‘의 독주가 계속될 전망이라는 사실은 씁쓸하다. 자극을 위한 자극, ‘선 넘은’ 막장의 시대가 ‘김순옥’과 ’19금‘을 등에 업은 ‘펜트하우스’에서 다시 열릴까 우려된다.

 

라효진 에디터 hyojin.ra@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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