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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9월 02일 16시 06분 KST

[허프 뇌피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서른 즈음에 만나는 클래식 멜로

소재의 전형성을 작은 설정들로 탈피한 매력이 돋보인다.

SBS
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허프 뇌피셜] 이 드라마 흥할까, 망할까?

‘드라마는 4회 승부다!’ 시청자들 사이에 도는 말입니다. 초반 4회까지 반응으로 짧게는 10회, 길게는 20회 분량의 드라마가 흥할 지 망할 지 점칠 수 있다는 뜻이죠. 과연 그럴까요? 늘 그렇진 않습니다. 시작할 때 1% 시청률이었던 작품이 끝날 무렵엔 ‘국민 드라마’가 돼 있기도 하니까요.

화제작들의 첫 주 방송을 보고 그 흥망성쇠를 ‘허프 뇌피셜 지수’로 예측하는 코너를 만들었습니다. 지수가 높을 수록 흥할 가능성이 높고, 낮을 수록 반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예측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최종회가 끝난 후 독자들과 함께 되짚어 보겠습니다.

네번째 드라마는 서른 즈음에 만나는 클래식 멜로, 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입니다.

 

사전정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며칠 차이를 두고 SBS ‘앨리스‘와 OCN ‘미씽: 그들이 있었다‘가 시작했습니다. 두 드라마는 배우 김희선, 주원, 고수 등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할 뿐 아니라 SF와 미스터리 등 최신 유행 장르로 시청자들의 구미를 당겼죠. 때문에 새롭게 방영되는 작품 가운데 굳이 고르라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거는 드라마 팬들의 기대치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습니다.

클래식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떠올려 보더라도 MBC ‘베토벤 바이러스‘나 KBS 2TV ‘내일도 칸타빌레‘처럼 만화적인 터치가 진한 작품이 많았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감성 로맨스를 표방하고 있다 보니 요즘처럼 ‘마라맛’ 일색인 드라마 판에서는 다소 약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측은 드라마를 스물아홉 경계에 선 클래식 음악 학도들의 흔들리는 꿈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고 소개했습니다. 몇 년 전에나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감성이 통했지 요즘엔 그런 소리 했다간 혼구멍이 나는 세태 속에서, 과연 드라마가 얼마나 등장인물들을 입체적으로 흔들어줄지 걱정 반 기대 반이었죠.

드라마의 제목은 프랑스 유명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과 같습니다. 사강 소설을 원작으로 한 줄 알았지만 그건 아니었습니다. 드라마와 소설의 브람스 활용 방식이 어떻게 다를지도 궁금해지는 대목이었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동료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오래도록 짝사랑한 브람스의 이야기로 삼각관계를 그리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삼각관계를 다루는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남녀 주인공의 최종적 사랑을 더욱 빛내기 위해 악역을 배치합니다. 대부분 주인공 둘 중 한 명의 오랜 짝사랑 상대로, 커플 성사를 방해하는 캐릭터입니다. 이 악역이 더 악질일수록 주인공들의 사랑이 위대해지기 마련이죠.

이 공식에 입각해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본다면 ‘과연 삼각관계 이외의 재미가 있을까?’라는 우려가 생깁니다. 안 그래도 슴슴해 보이는 드라마인데 남녀 주인공은 사랑에 다소 소극적일 게 뻔합니다. 둘 사이에 서로 호감이 왔다갔다 하더라도 악역의 힘이 비정상적으로 셀 것이 자명합니다. 때문에 이 드라마는 그런 상황에서 오는 답답함을 희석해 줄 장치가 필요해 보입니다.

 

SBS
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첫 주 방송 보고 난 후. 불륜에 사이코패스에 SF까지, 근 몇년을 독한 소재와 자극적 묘사에 지친 드라마 팬들에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단비 같은 작품이라고 단언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마라탕만 먹고 살겠습니까. 가끔은 평양냉면이나 사골국물(깍두기 금지) 같은 날들도 필요하죠.

사실 드라마를 보기 전 품은 우려는 전부 현실이 되었습니다.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갑자기 바이올린을 켜겠다며 4수를 한 스물아홉의 늦깎이 음악학도 채송아(박은빈)은 서른을 앞두고 이도저도 아닌 자신에 흔들립니다. 한국인 최초로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에 입상한 유명 피아니스트 박준영(김민재)은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써 본 적 없는 재능의 퇴색 앞에서 흔들립니다. 익숙한 흔들림은 책장에서 너무 묵어 쿰쿰한 냄새가 풍기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꺼내온 것 같은 착각도 듭니다.

‘꿈과 현실의 괴리에 갈등하는 청춘‘이란 뻔한 소재를 살리는 건 아주 작은 설정들입니다. 채송아는 이름의 발음 탓에 자신을 소개할 때마다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한다는 오해를 받습니다. 가족들에 죄송하고, 친구들에 죄송하고, 동료들에 죄송한 채송아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 준 건 박준영입니다. 반면 박준영이 늘 자신의 연주 이후 다른 사람에게만 감상을 물었다는 걸 알아챈 건 채송아가 유일합니다. 이 특별하지 않은 흔들림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남녀 주인공이 서로에게 갖는 ‘유일성’입니다.

삼각관계 역시 예상한 대로 흘러갑니다. 채송아와 박준영은 아직 각자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심지어 소극적입니다. 박준영의 짝사랑 이정경(박지현)은 벌써부터 채송아를 경계하며 도끼눈을 뜹니다. 다만 여기서는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설정까지 등장하며 이야기가 한결 복잡하면서도 흥미로워집니다. 앞으로가 걱정인 건 이정경 말곤 나빠 보이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어차피 채송아와 박준영은 커플이 되겠지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다소 험난해질 것 같습니다.

 

[허프 뇌피셜 지수 : 85] 이제 겨우 2회임에도 채송아와 박준영의 관계는 거의 못을 박고 시작했다고 해도 좋은 수준입니다. 만난 지 며칠 만에 자꾸만 가까워지는 우연 속에서 박준영의 커피 바꿔치기 장면 같은 밤잠 설치게 하는 대목들이 이 둘은 커플이라고 망치질을 합니다.

 

 

자칫 지루하고 답답하게만 흘러갈 뻔했던 삼각관계의 전형성은 캐릭터 사이의 관계성으로 극복합니다. 채송아와 박준영 관련 인물을 다수 배치해 만든 6각관계는 이들의 입체적 흔들림을 담보합니다.

연출도 빛납니다. 설명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드라마를 잠시 쉬고 볼 만합니다. 제작진이 이곳저곳 뚫어 놓은 상상의 여백은 채송아와 박준영을 더욱 궁금하게 만듭니다. 특히 2화 마지막 장면은 드라마 팬들이 잠시 잊고 있던 순수 멜로의 정석적 문법을 보여 줍니다. 박준영과 채송아가 작은 음악회를 끝내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 채송아는 건네려다 깜빡한 박준영의 앨범을 가방 속에서 발견합니다. 박준영에게 줄 물건은 아니었지만, 채송아는 그 길로 박준영에게 달려갑니다. 채송아가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던 박준영에게 ”여기 앉아도 돼요?”라고 물은 다음부터 제작진은 두 사람의 뒷모습, 음악과 이들을 비추는 조명 말고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로맨스는 상상 아니겠습니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그 로맨스를 상상하고 싶어지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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