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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9월 01일 17시 05분 KST

[허프 뇌피셜] '앨리스', 77년생 김희선이 87년생 주원 엄마 되는 SF

너무나도 게으른 방식의 '모성애' 묘사가 트렌디함을 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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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앨리스'

[허프 뇌피셜] 이 드라마 흥할까, 망할까? 

 

‘드라마는 4회 승부다!’ 시청자들 사이에 도는 말입니다. 초반 4회까지 반응으로 짧게는 10회, 길게는 20회 분량의 드라마가 흥할 지 망할 지 점칠 수 있다는 뜻이죠. 과연 그럴까요? 늘 그렇진 않습니다. 시작할 때 1% 시청률이었던 작품이 끝날 무렵엔 ‘국민 드라마’가 돼 있기도 하니까요.

화제작들의 첫 주 방송을 보고 그 흥망성쇠를 ‘허프 뇌피셜 지수’로 예측하는 코너를 만들었습니다. 지수가 높을 수록 흥할 가능성이 높고, 낮을 수록 반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예측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최종회가 끝난 후 독자들과 함께 되짚어 보겠습니다.

세번째 드라마는 시간여행 SF, SBS ‘앨리스’입니다.

 

사전정보. 시간여행, 형사, 무감정증, 복수... 배우 김희선의 1인2역 설정과 주원의 전역 후 복귀작이 아니었다면 사실 기대조차 되지 않는 닳고 닳은 키워드입니다. 얼마나 서사와 세계관을 촘촘하고 특별하게 짰는지가 작품성을 판가름하겠죠. 똑같아 보이는 좀비 영화에서 좀비의 주 활동 시간이 낮인지 밤인지만 바꿔도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드라마는 미래에서 현재로 온 시간여행자들로 혼란에 빠진 세상을 그립니다. 현재를 사는 인물들은 시간여행을 막아야 하고, 필연적으로 미래에서 온 캐릭터와 싸워야 하겠죠. 뚜껑 열기 전부터 지루해지지만 도대체 어떤 설정으로 차별화를 꾀할지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특히나 4월 ‘앨리스‘와 동시간대에 방송된 SBS ‘더 킹: 영원의 군주’가 섣불리 시간여행 소재를 끌어왔다가 대다수 시청자를 이해시키지 못한 채 처참한 성적으로 막을 내렸던 걸 타산지석으로 삼았을 지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주인공의 면면을 봅시다. 김희선은 6살에 미적분을 풀고 15살에 한국대 물리학과에 수석 입학한 천재 물리학과 교수 윤태이, 그리고 진겸(주원)의 엄마이자 시간여행 시스템 앨리스의 기본원리를 구축한 과학자 박선영을 연기합니다.

주원은 태아 시절 시간여행의 과정인 방사능 웜홀을 통과하는 바람에 선천적 무감정증으로 태어난 서울남부지방경찰서 형사 2팀 경위 박진겸 역을 맡았죠.

즉 김희선이 주원의 엄마로 등장한다는 소립니다. 두 사람의 나이는 실제로 10살 차이입니다. 심지어 김희선은 자타가 공인하는 동안이죠. 이에 대해 김희선은 지난달 25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사실 내가 이렇게 큰 아들 엄마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했는데 모성애는 자식의 나이와 상관없이 다 같더라”며 ”모성애에 집중해 연기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연기하는 데 문제가 없었던 것 같지만, 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판단할 지는 별개의 사안이라 다소 걱정이 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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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앨리스'

첫 주 방송 보고 난 후. 제작진은 방영 전부터 “SF라고 해서 복잡하거나 어려운 드라마가 아니다. ‘앨리스‘의 핵심은 ‘휴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 말대로 ‘앨리스‘는 최근 많은 시간여행 콘텐츠가 다룬 연인 간 사랑보다는 ‘가족‘, 특히 ‘모성애’를 이야기의 중심에 둡니다.

모성애는 그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족을 그린 모든 문화콘텐츠의 저변을 지배하다시피 한 무적의 소재였습니다. 너무도 전형적이고 익숙하기까지 한 탓에 엄마 캐릭터만 등장해도 대강 앞일을 예상할 수 있을 정도였죠. 그럼에도 문화콘텐츠에서 모성애는 대중에게 무조건반사를 일으킵니다. 양파를 썰면 눈물이 나오는 것처럼, 아무리 뻔한 이야기여도 엄마가 등장하면 속절없이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러나 ‘앨리스‘가 간과한 점이 있습니다. 모성애를 두고 꽤 오래 전부터 제기된 의혹이 오늘날 폭발적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성애’라는 개념이 사실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학습된 것일지 모른다는 의혹이죠. 여러 우려와 기대 속에 만난 ‘앨리스’ 1, 2회에선 흔해 빠진 시간여행 설정에 나름대로 독자성을 갖추려 노력한 흔적이 엿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서사가 다소 낡았습니다.

특히나 임신 상태에서 방사능 범벅의 웜홀을 통과해야 하고, 살아 본 적 없는 1992년에 살아야 하는데도 자신 안에서 두근거리는 또 하나의 심장을 저버릴 수 없다며 끝내 아이를 낳고 마는 윤태이의 모성애는 딱 ‘옛날 드라마‘의 정서입니다. 2050년에서 왔다는 사람이 1992년 식으로 생각을 하니 첫 방송은 ‘올드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습니다. 아, 올드한 만큼 익숙하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다는 것은 장점이겠네요.

2화부터는 전개가 빨라집니다. 미래의 앨리스란 조직이 이 드라마의 악당일 줄 알았는데, 아직까진 그렇지 않다는 점이 신선하네요.

 

[허프 뇌피셜 지수: 75] 최근 시간여행과 평행세계를 동시에 소재로 삼았다가 제대로 쓴맛을 본 ‘더 킹: 영원의 군주’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노력이 가장 시급합니다. 다른 SF보다 쉽게쉽게 간다고는 하지만 1, 2회에서 나온 떡밥 중엔 회수가 불안해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현재와 미래의 동일인물 나이가 맞지 않는 등 평행세계 설정까지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도 나오는데, 이 두 설정이 한 작품에 등장할 때 벌여 놓은 세계관이 감당이 안 돼 ‘될 대로 되라’ 식으로 버티다가 끝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좀 낡고 게으른 모성애 묘사는 드라마의 특징으로 넘기더라도 ‘앨리스’는 시간여행과 평행세계를 함께 작품에 녹이려 했을 때의 문제점들을 허투루 넘겨선 안 될 것 같습니다.

여러 리스크에도 ‘앨리스’는 왠지 궁금해지는 드라마입니다. 김희선과 주원의 액션도 꽤 화려하고, 컴퓨터 그래픽도 그럴 듯합니다. 특히 러브라인이 있을 것도 같으면서 아직 잘 보이지 않는데, 이게 궁금해서라도 계속 시청하는 분들이 계실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