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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huffpost

배우자를 찾는 일이 엄청난 것으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물론 엄청난 일인 건 맞지만, 당시의 나로서는 그게 엄두도 못 낼 일처럼만 보였다. 다들 어쩜 저렇게도 아무렇지 않게 반려자를 찾아 결혼하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누군가를 평생 사랑할 수 있을 거라는, 그리고 상대가 변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은 어디서 얻는 걸까. 나는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도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느 주말, 이모의 차를 얻어 타고 가다가 그 이야기를 줄줄 털어놓았다.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이 평생 같은 모습을 유지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누군가를 결혼 상대로 결정하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하고도 대단해 보이며, 이렇게 의심이 많은 나는 아무래도 결혼하고 싶어도 못할 것 같다고.

ⓒMotortion via Getty Images

이모는 핸들을 경쾌하게 꺾으며 간단히 대답했다.

“이혼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삶을 보는 기준이 달라져.”

그러고는 ‘어차피 완벽한 선택인지 아닌지는 끝까지 가봐야 알지.’라고 덧붙였다. 인생의 다른 선택들이 모두 그러하듯, 다들 자신이 완벽한 사람을 골랐다고 생각하고 결혼을 결심하지만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 봐야 알게 된다고. 혹시 결혼이 좋지 않게 끝나더라도, 그건 실수도 무엇도 아니고 그저 예상과 결론이 달랐던 것뿐이라고.

맞는 말이었다. 내 망설임의 많은 부분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공포’에 맞춰져 있었다. 그 자체를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많은 것들이 달라질 터였다.“같이 살아가다 보면 예상치 못하게 환경도 바뀌고 가끔은 사고도 생겨.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 다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사는 거지. 그런 건 어차피 결혼 전에 걸러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물건 사듯이 세상의 기준에 완벽히 들어맞고 유통기한이 긴 사람을 찾기보다 네 기준과 감정을 먼저 생각해. 네가 상대를 얼마나 진심으로 좋아하는지, 그리고 상대는 너를 얼마만큼 진심으로 대하는지.

네가 판단할 때 이 사람하고 결혼하고 싶다, 살아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싶으면 일단 그걸 믿고 가는 거야. 그래서 결혼했는데 아니면? 헤어지면 돼. 상처는 좀 받겠지만, 그런다고 인생 안 끝나. 살다 보면 미끄러지는 날이 얼마나 많은데 결혼이라고 그런 일이 없겠니?”

결혼하는 게 얼마나 어렵고 귀찮은지 아니. 그 결혼들도 하는데 겨우 이혼을 못할 건 뭐야, 하면서 이모는 크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를 들으니 왠지 마음이 놓였다.그 이후로는 결혼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조금 편안하고 차분해졌다는 걸 느낀다. 아직 결혼을 결심한 건 아니지만, 혹시 하게 된다 하더라도 예전처럼 두렵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완벽한 사람을 선택할 거라는 확신이 생겨서는 아니고, 틀리더라도 괜찮다는 위로를 받은 덕이다.

유정아의 에세이집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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