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20년 08월 12일 16시 33분 KST

나는 50대에 아버지에게 게이라는 이유로 절연당했다

1998년 35살, 마침내 커밍아웃했지만 내 아버지는 뒤늦게 알았다.

Courtesy of Jake McPherson
2019년 찍은 사진 속 저자

나는 게이였고 부모님은 ‘근본주의’ 교회에 매주 출석했다

누구나 기억 속에 영원히 잊지 못할 만큼 깊이 새겨지는 순간이 있다.

지금은 1970년대고 나는 10대야. 거실에 TV가 켜져 있고, 부모님은 리클라이너에 기대어 있고, 나는 갈색 격자무늬 소파에 앉아 있어. 우리는 바바라 월터스가 저명한 동성애 반대 운동가인 애니타 브라이언트를 인터뷰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어.

월터스는 브라이언트에게 만약 그의 자녀가 게이로 커밍아웃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는다. 브라이언트는 즉각적이고 가혹한 반응을 보였다. ‘그 순간 자신에게 아이는 없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월터스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지가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나 봐”라고 한 게 기억나는 걸 보니 월터스가 뭔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을 거로 추측한다.

그러나 나는 다음과 같이 이해했다. 우리 부모님은 아들이 동성애자라면 아들을 버릴 것이다. 내가 게이라는 걸 알면 부모님은 나를 버릴 것이다. 그때부터 최대한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숨겼고, 누구에게도 비밀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 가족은 ‘근본주의’ 교회에 다녔다. 교회에서는 신이 동성애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고 설교했다. 게이와 레즈비언은 구제 불능이었다. 나에게는 구원이 없었다. 나는 사랑받지 못했다.

내가 게이라는 비밀을 숨기고 근본주의 교회와 연결된 대학에 진학했다. 그곳에도 비밀을 숨기는 게이 학생들이 많았다. 돌이켜보면 많은 ‘동료‘들이 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난 당시 게이라는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고, 무서웠고, 순진했기에 그들의 신호를 모른 척했다. 내가 얼마나 순진했는지 생각하면 지금은 웃음만 나온다.

Courtesy of Jake McPherson
1979년, 저자가 15살(현지 나이) 당시 학교에서 열린 댄스파티에 참석하며 여성 파트너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 바바라 월터스가 애니타 브라이언트를 인터뷰하는 것을 본 지 몇 년이 지난 뒤였다.

종교적인 대학을 다니면서도 내 유일한 즐거움은 음주였다. 술잔을 손에 든 내 모습이 세련돼 보인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술을 마시는 동안에는 나의 성 정체성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정말 그 시간만큼은 천국 같았고 마음의 평온을 느꼈다. 현실에서 도망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나는 여자와 결혼했을 때 억압의 정점에 도달했다. 진심으로 내 아내를 사랑하긴 했다. 그는 과거에도 지금도 멋진 여자다. 우리는 여러 해를 함께 살았다. 우리는 세 아이를 키웠지만, 난 그때도 내내 술을 마시고 또 마셨다. 그 상황이 너무 비참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티니를 마시는 일조차 지겨워졌다.

몇 년 동안 마신 엄청난 술은 날 죽이고 있었다. 자살 수준으로 술을 마셔댔다. 진짜 비극은 내가 정말 우울했고 차라리 죽고 싶었다는 사실이다. 여태까지 살았던 ‘가짜’ 삶을 끝내고 싶었다. 1998년 35살이 되었을 때 나는 커밍아웃을 결심했다.

아내는 날 사랑으로 감싸주며 진짜 나 자신을 찾으라고 했다. 아이들은 당시에는 너무 어려서 즉시 말해주진 않았다.

1999년부터 익명 알콜 중독 치료 모임에 참여했다. 망가진 삶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그 모임에서 정말 큰 응원과 힘을 받았고, 마침내 진정한 나를 마주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난 항상 게이였는 데, 어떻게 그동안 그 사실을 부정하며 살아왔지?‘ 때로는 나 자신을 비웃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살아왔지만, 더이상 그런 거짓말에 에너지와 시간을 쏟기 싫어졌다. 알콜 중독 치료 모임에 참여하면서 ‘드래그’ 문화에도 눈을 떴다. 나의 드래그 퀸 분신, 콘스탄스 하보크 양이 태어났다. 2000년에 마침내 아내와 결별했다. 피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느껴야 했다. 

Nastco via Getty Images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커밍아웃하다

2001년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 난 게이’라고 커밍아웃했다. 어머니는 큰 충격에 빠졌다. 당시 어머니는 아버지가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당연히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말했을 거라고 추측했지만, 직접 물어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이후 무려 19년 동안 아버지도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 거라고 생각했다. 매주 아버지와 통화를 했지만 내가 만나던 남자친구에 대해 말한 적은 없었다. 내 나름대로 아버지와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아버지 역시  ‘게이’와 관련된 주제를 일부러 언급하지 않는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큰 착각이었다.  

한때 동거하던 남자와 어머니가 만난 적도 있다. 어머니는 그에게 친절하긴 했지만, 거리를 두었다. 어머니는 당시 내 남자친구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을 매우 어색해했다. 그런데도 나는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56살에 90살 아버지에게 절연 당하다

2년 전쯤 조카가 내 아버지에게 아이폰을 선물했는데, 아버지는 증손자 사진을 받고 싶어 하며 아이폰 사용법을 열심히 배웠다. 아버지가 페이스북에 가입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였다. 아버지는 내 페이스북 프로필을 발견했다. 나는 프로필에 자랑스러운 게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었다.

2020년 1월 4일 오전 9시 56분, 전화벨이 울렸다. 아버지가 걸어 온 전화에 내가 대답하자 그는 ”동성애에 관해 할 말 있다. 나와 네 엄마는 그걸 용납할 수 없어. 다시는 우리에게 연락하지 마라”라고 말했다.

상상 이상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시야가 흐려졌다. 마치 누가 내 몸을 공격하는 아픔이 느껴졌다. 통화가 끝나기도 전에 아버지는 ”내 말 확실히 알아들었어?”라고 덧붙였다. 나는 그에게 ‘그렇다’고 말하고 전화는 끊어졌다.

그렇게 나는 56세에 아버지에게 절연 당했다. 내가 게이라는 이유로.

마침 나를 만나러 온 딸 중 한 명에게 그 전화에 대해 말하자 그는 울어버렸다. 딸은 즉시 이 사실이 조부모와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아이들과 테라피스트, 정신과 의사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들은 나를 지지해 주었다. 내 아들은 이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딸은 화를 내면서도 나를 사랑한다고 안심시켰다. 내가 손 내밀었던 모든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지만, 또한 나를 지지한다는 의사표시를 분명히 했다. 그들은 모두 내가 부모님에게 버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했다.

나는 성인이 되어 커밍아웃했기 때문에 다른 성소수자들이 일찍부터 겪는 어려움을 많이 겪지 않았었다. 부모님과의 인연을 끊은 것은 너무나 견디기 힘든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복싱 글로브로 일방적으로 맞고 쓰러져 추운 노지에 버려진 기분이었다.

그 후 몇 주 동안, 나는 아버지와 관련된 악몽을 꾸었다. 나는 며칠 동안 일을 쉬었다. 매주 상담을 받았고 한 달에 한 번 만나던 정신과도 더 자주 다녔다. 나는 다시 익명 알콜 중독 치료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고, 내게 일어난 일을 말하자, 모든 그룹 멤버들이 나를 지지해주었다.

4월 말에 이르러서야 악몽은 멈췄다. 나는 새로운 남자와 데이트도 몇 번 했고, 코로나19로 락다운 기간에는 주로 문자로 소통했다. 현재 자택 근무 중이며 이 락다운 기간은 오히려 내게 숨 쉴 틈을 주었다. 내 인생은 당분간은 평탄할 것 같다.

물론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느 날 스물네 살 딸이 전화를 걸어 울먹이며 ‘혹시 아빠도 나를 버리는 상황이 올 수 있을까?‘라고 내게 물었다. 딸은 진심으로 어떤 상황에 부모가 자식을 버릴 수 있는지 고민했다. 나도 울음을 참지 못하고 ‘어떠한 상황이 발생해도 무조건 널 사랑한다’라고 딸에게 말했다. 나는 솔직히 내 아이들에게 트라우마를 준 내 부모님이 용서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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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들은 치유의 열쇠이다. 나는 내 부모님에게 절연 당했지만 나와 내 아이들은 누구보다 가까운 관계이고 무너지지 않는 가족이다. 내 아이들은 나를 완전히 받아들였고, 나는 내가 내 삶, 그리고 내가 정말 누구인지를 그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사귀는 남자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들은 내가 드래그 쇼에 분장하고 출연한 모습을 봤다. 그리고, 기쁘게도, 내게 그들의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준다. 우리는 서로를 판단하지 않고, 서로를 가장 높이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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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친구에게 56세의 나이에 90세의 아버지로부터 절연 당한 일을 이야기했다. ”말도 안 돼”라고 우리 둘 다 동시에 말했다. 계속 이 일의 충격에서 회복하는 동안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나는 독립된 어른이고 충만한 삶을 살고 있다. 나는 마침내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런데 몇 주 전, 정말 아름다운 일이 일어났다.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가 내 57번째 생일에 카드를 보내주셨다. 아버지는 이 일을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카드 안에는 ‘사랑해’라고 적힌 쪽지가 들어 있었다. 설교는 없었다. 그리고 더욱더 놀랍게도, 그녀가 아무 대가 없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 보는 일이었다. 아마도 치매 때문에, 비판적인 어머니의 자아는 사라지고, 89세의 나이에, 그는 내가 그동안 몰랐던 사랑스러운 어머니로 변해버린 게 아닐까.

슬프게도, 나는 어머니와 연락할 수 없다. 아버지는 내가 보낸 모든 것을 가로채곤 하셨고, 내가 어머니에게 전화할 수 없도록 항상 먼저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이 아름다운 카드를 간직하며 어머니는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나를 아마도 있는 그대로 사랑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려고 한다.

 

이 글의 저자 제이크 맥퍼슨은 정신 건강 분야에서 공인된 동료 전문가들에게 트레이닝을 제공한다. 그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업무에 복귀할 수 있는 기술을 알려주고 ‘증명된 방식’으로 희망을 주고 있다.

 

*허프포스트 미국판에 실린 독자 기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