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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적 차별이 소수자의 삶을 모욕할 때

  • 장서연
  • 입력 2018.05.18 10:47
  • 수정 2018.05.18 11:02
ⓒhuffpost

5월 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이다. 영문 이니셜 약칭을 따서 아이다호데이(IDAHOTB, 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Transphobia and Biphobia)라고 하기도 한다. 1990년 5월 17일, 동성애에 대한 오랜 편견을 깨고, 세계 보건 기구(WHO)가 동성애를 정신질병 목록에서 삭제한 날을 기념으로 만들어졌다.

역사적으로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양성애자, 인터섹스 등 성소수자들은 소수자라는 이유로 여러 측면에서 제도적 차별과 사회적 낙인, 박해를 당해왔다. 형벌을 당하기도 했으며, 정신질환자나 비정상이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 이에 저항하기 위해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태동했고, 그 성과로 많은 나라에서 역사적 과오들을 바로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21세기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성소수자 활동가로서 나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심각하다고 뼈저리게 느낀다. 한국 사회와 법제도는 여전히 성소수자들을 동등한 시민으로 존중하고 있지 않다. 

먼저, 기본적인 권리에서의 차별이다. 동성커플은 제도적으로 결혼할 자유가 없으며,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사망했을 때, 법적 상속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같이 살던 집에서 쫓겨나거나 장례절차에서 거부를 당하기도 한다. 트랜스젠더들은 법적 성별정정을 하려면 생식능력 제거라는 강제불임 수술을 해야 하고,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해도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효과적인 정책이 없으며, 동성애자 군인들은 군복무 중에 군형법 추행죄로 조사받거나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런 제도적인 차별과 보호의 부재는 성소수자들을 하루아침에 벌거벗은 존재로 만든다. 유령으로 취급하고 범죄자로 취급한다.

정권이 교체되고, 한반도에 평화의 봄이 찾아왔다고 하지만, 성소수자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제도적인 차별에 더해,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세력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올해 그 첫 신호탄은 충남인권조례 폐지조례안의 통과였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유한국당과 보수개신교 집단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적대적인 언어들을 지역사회에서 여과 없이 유통시키고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이런 혐오와 차별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며 침묵하고 있다. 문명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는 차별금지법도 성소수자혐오세력의 눈치를 보며 주저하고 있고, 5년 마다 수립하도록 되어 있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에서 박근혜, 이명박 정부 때도 있었던 성소수자 인권항목을 지워버리는가 하면, 개헌안에서 성평등 조항을 배제하였다.

소수자 집단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사회를 우리는 민주사회라고 부를 수 없다. 인권의 역사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제도적 부정의에 대한 불관용과 저항으로 발전해 왔다. 차별과 박해를 당하는 당사자들의 투쟁뿐만 아니라 양심 있는 동료시민들의 부정의에 대한 불관용, 연대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일본에서 재일동포에 대한 혐한시위가 있을 때 양심 있는 일본시민들은 이에 반대하며 평화적인 맞불시위를 하였다. 미국의 인종차별제도에 저항하는 흑인 민권운동에서 양심 있는 백인시민들은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에 맞서 흑인시민들과 같은 편에 서 있었다.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깨는 것은 동료시민들의 목소리이다.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계기로 소수자의 존재와 삶을 모욕하는 제도적 차별, 혐오의 정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 크게 나오길 바란다. 나는 한국 사회가 그런 역량은 된다고 믿는다.

글 : 장서연(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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