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벌금 대신 노역' 택한 박경석 이사장은 비장애인 중심 구치소에서 화장실조차 제대로 가지 못 했다

박경석 이사장은 구치소 내 장애인 편의시설 보장을 위해 또 다른 투쟁을 준비할 계획이다.

18일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이 “벌금으로 입 막지 마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있다.
18일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이 “벌금으로 입 막지 마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전장연 제공/한겨레

“도로 30분 막았다고 벌금 500만원을 내라는데, 수십년 동안 장애인들의 정당한 이동권을 막은 국가가 받아야 할 벌금은 얼마나 되는 겁니까.”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21일 한겨레와 통화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전날 저녁 ‘구치소’에서 나왔다. 박 이사장과 이형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 권달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등은 지난 18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들어갔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에 부과된 벌금의 부당함을 알린다는 취지로 ‘노역투쟁’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장애인 이동권’ 외친 이들에게 부과된 벌금 4440만원

4440만원. 이들이 노역투쟁을 택한 이유이자, 2016년부터 부과된 벌금이다. 이동권 보장과 장애인 예산 확대를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도로를 점거하고 교통을 방해했다며 박 이사장에게만 1천만원 넘는 벌금이 부과됐다. 이 대표에겐 2016년 경기도에서 이동권 투쟁을 위해 2층 버스를 점거했다는 등의 이유로 총 400만원의 벌금이 떨어졌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도 장애인들의 고통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이 대표는 “우린 정당한 권리를 위해 싸웠다. 국가가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했다면 하지 않았을 투쟁이다”라며 “벌금을 낼 수도 없고, 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 노역형을 택했다. 센터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리프트 차량에 압류가 들어오는 등 경제적 압박도 너무 심했다”고 말했다.

자료사진. 휠체어.
자료사진. 휠체어. ⓒPramote Polyamate via Getty Images

장애인은 화장실도 못 가는 ‘비장애인 중심’ 구치소 환경

장애인의 권리를 요구하며 구치소에 들어갔지만, 이들은 ‘비장애인 중심’의 구치소 환경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을 마주했다. 방마다 있는 화장실 입구는 지나치게 좁고 턱이 높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었다. 중증장애가 있어 휠체어를 타는 박 이사장은 “2박3일 동안 (장애인 편의시설이 없어) 씻지도 못했다”며 “화장실 사용이 힘들어 일부러 물도 음식도 적게 먹었다”고 말했다. 계속 앉아 있어야 했던 박 이사장에게 사흘 만에 몸에 욕창이 생기기도 했다. 휠체어를 사용해야 하는 이 대표도 “화장실 사용이 어렵다고 항의하니 안전바만 하나 갖다줬다. 안전바 하나만 잡고 화장실을 사용하다 보니 어깨 통증이 심한 상태다”라며 “구치소 내 장애인 편의시설 보장을 위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준비하려 한다”고 말했다.

투쟁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응원이 이들을 구치소에서 사흘 만에 ‘구출’했다. 18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노역의 무게를 나눠주세요”라며 모금을 시작한 지 24시간도 되지 않아 4천여명의 시민이 십시일반으로 벌금 액수를 뛰어넘는 돈을 보냈다. 김필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기획실장은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 우리만 싸우는 게 아니구나 싶어 힘이 났다”고 시민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박 이사장도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고 말했다.

18일 전장연이 ‘돌아가지 않겠다. 투쟁 없는 삶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제목으로 연 기자회견.
18일 전장연이 ‘돌아가지 않겠다. 투쟁 없는 삶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제목으로 연 기자회견. ⓒ전장연 제공/한겨레

시민 도움으로 구치소 벗어난 활동가 ”장애인 위한 투쟁 계속한다”

물론 장애인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이들을 비롯해 장애인 활동가들은 지난 2월과 3월 “서울시가 2022년까지 서울시 전 역사에 승강기 100% 설치를 약속했지만 예산 확보를 하지 않고 있다”며 ‘지하철 이동권 보장’ 시위를 진행했고, 이에 서울교통공사는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그 밖의 크고 작은 소송까지 합치면 앞으로 또 다른 벌금이 줄줄이 부과될 전망이다. 박 이사장은 “이동권 보장만 20년 넘게 외치고 있다. 도대체 정부가 장애인이란 시민의 권리를 어떻게 보는지 의문이다”라며 씁쓸해했다. 그는 “승강기 100% 설치는 물론이고,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 보장을 약속한 장애인권리보장법 등의 제정이 하루빨리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장애인 #휠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