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20년 09월 08일 16시 12분 KST

디지털교도소에서 '성착취범'으로 몰린 교수 : 허위 사실임이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채정호 교수를 사칭한 이가 디지털교도소에 메시지를 보냈거나, 누군가 메시지를 합성해 조작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채정호 교수 

성범죄 혐의가 있는 이들의 정보를 임의로 공개해온 누리집 ‘디지털교도소’가 ‘성착취물 구매를 시도했다’며 한 대학교수의 휴대전화 등 개인정보를 올렸지만, 경찰 수사 결과 이같은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이 누리집에 신상정보가 공개된 한 대학생이 결백을 호소하며 숨진 가운데 이런 사실이 확인되면서 위법성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죽을 준비해. 죽어 제발.” 채정호(59) 가톨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런 저주와 욕설이 담긴 문자를 하루에도 수십 통씩 받는다. 그나마 최근엔 꽤 줄어든 것이다. 지난 6월 하순 디지털교도소는 ‘위장 판매자에게 접근해 엔(n)번방 자료 등을 구매하려 했다’며 채 교수의 휴대전화 번호, 사진, 직장 등 신상정보를 누리집에 올렸다. 언론 보도가 나오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그를 처벌해 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욕설 문자에 강의 중단 요구도 

채 교수가 “사실무근”이라고 항의했지만 교도소 쪽은 캡처된 대화내용 등을 공개하며 반박했다. 그 뒤 10분에 한번 꼴로 채 교수는 모르는 이들의 전화를 받았고, 하루에도 수백 통의 욕설 문자를 받았다. 그가 입길에 오르자 학회에선 ‘비윤리적인 의사’라며 윤리위원회에 회부하고 강의 중단까지 요구했다. 채 교수는 7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치료했던 환자가 ‘믿을 사람 하나 없다’며 연락을 해오기도 했다. 울분장애와 우울증에 시달렸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https://nbunbang.ru/
디지털교도소 

채 교수가 이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뒤 진실은 일부나마 밝혀졌다.

대구지방경찰청이 지난달 31일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윤리위원회에 보낸 공문을 보면, 경찰은 채 교수의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분석)한 결과 “삭제된 데이터를 포함해 채 교수의 휴대전화에서는 디지털교도소에 게재된 것과 같은 대화 내용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디지털교도소가 게시한 대화 내용이 적어도 채 교수가 사용중인 휴대전화에서 작성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경찰은 또 “휴대전화에서 고의로 삭제한 것으로 보이거나 성착취물을 구매하려는 것으로 의심할만한 대화, 사진, 영상 등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채정호 교수 제공
채정호 교수가 받은 욕설 문자 중 일부

조작 가능성 

경찰의 설명을 보면 채 교수를 사칭한 이가 디지털교도소에 메시지를 보냈거나, 누군가 메시지를 합성해 조작했을 가능성도 있다. 채 교수의 휴대전화 속 10만건의 메시지에서 드러난 그의 평소 언어 습관이 디지털교도소가 게시한 메시지 속 말투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경찰은 “디지털교도소에 게재된 내용과 채 교수의 휴대전화에서 추출한 메시지 9만9962건의 문자 작성 습관을 비교한 결과, 서로 일관되게 달라 디지털교도소의 텔레그램 채팅을 한 자는 채 교수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채정호 교수 측 제공
대구지방경찰청이 보낸 의견서
채정호 교수 측 제공
대구지방경찰청이 보낸 의견서

대구지방경찰청은 현재 디지털교도소 관련 고소·고발 사건들을 취합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서버는 해외에 있으며 운영자는 여러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운영진 일부를 특정해 수사 중에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이와 관련해 디지털교도소 운영자에게 전자우편과 인스타그램 디엠(DM) 등을 통해 입장 표명을 요청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디지털교도소 누리집은 현재 접속불가 상태다.

 

아래는 채정호 가톨릭대 교수 일문일답. 

-처음 이런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언제인가.

=6월 마지막주 금요일 오후에 올라간 것 같다. 일요일 밤에 모르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왔다. ‘나도 디지털교도소 올라가있는 피해자’라며 ‘채 교수 당신이 거기 올라가서 피해를 보게 된 것 같으니 확인해보라’고 하더라. 월요일에 출근하니까 난리가 났다. 그 사이트에도 올라오면서 SNS에 퍼지고, 기자 분들이 전화를 해왔다. 방송국 카메라가 쫓아오고…. 정말 지옥 같았다.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

=제가 하지 않은 일을 했다며 올려놓은 거다. 디지털 자료라서 전파력이 엄청나다. 네이버 인물검색에 제가 나오는데, 금세 저의 소셜네트워크에도 퍼져나갔다. 병원이나 학회에서 의심하는 분들이 생겼고, 일주일 동안 말도 안되는 댓글들이 달렸다. 전공의나 지인을 사칭한 댓글들도 잇따랐다. 누가 한 짓인지 모르니까 누굴 고소할지도 모르고, 가상의 인물을 고소하는 거라 그 과정 자체도 어려웠다. 법치국가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직장에선 저를 믿어줬지만, 학회 등에는 ‘비윤리적인 의사’라고 제보가 들어가기도 했다. 모든 곳에서 매장되는 것 같았다.

 

 

-악성 댓글이나 문자도 많이 받았겠다.

=이번에 대학생이 숨지는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디지털교도소가 다시 화제가 되니 또 연락이 온다. 24시간, 특히 밤에 전화가 온다. ‘죽어라, 제발’, ‘죽을 준비해라’ 그런 내용들이다. 정말 가슴아팠던 건 저한테 치료받은 환자가 잘 회복했는데 인터넷에서 이런 내용을 보고 ‘믿을 사람 없다’고 연락이 온 거다. 나만 죽이는 게 아니라, 가족, 지인 그리고 내가 치료하는 환자들까지 죽이는 행위였다. 분명한 폭력이다.

-보통 하루에 얼마나 연락이 왔나.

=한참 많이 올 땐 밤에 10분 간격으로 전화가 왔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번호를 바꾸고 싶었는데 그러면 ‘피한다’고 할 테니…. 사실을 규명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다.

-많이 힘든 시간을 보냈겠다.

=두 달 동안 견뎌보려 해도 가슴이 뛰고 그런 것들을 정신과 전문의라고 해도 견딜 수 없었다. 울분장애라고 지칭할수 있는 병이 생겼다. 불안하고 전화올까봐 두렵고…. 불안장애, 우울증도 왔다. 정신과 의사이니 마음 다잡는데 심장이 뛰는 걸 잡을 수 없다. 디지털교도소 거론되면 또 심장이 1분에 100회 이상 뛴다.

-경찰이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줬다.

=죽음에서 벗어난 것 같다. 국가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해줘서 다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나와 관련한 글이 그대로 올라와 있다. 내가 ‘합의해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합의를 시도했다는 등의 내용도 있고. 전공이 트라우마기 때문에 여성들의 성폭력 트라우마가 얼마나 큰지 안다. 그래서 가해자를 엄정히 처벌해야 한다고 보지만 아무 상관없는 사람한테 이렇게 하는 건 정말 감당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