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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국면의 한 컷, 김정은의 시진핑 초대

ⓒhuffpost

꽁꽁 얼어붙었던 북-중 관계를 급속해동시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솜씨를 보면 확실히 그는 ‘선의’보다 ‘객관적 역학관계’를 더 믿는 냉철한 현실주의자로 보인다. 그는 남·북·미 3자 간에 진행되는 한반도 비핵화 논의로는 북한이 원하는 바를 제대로 관철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남한 정부가 미국과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체제의 안전보장’을 성공적으로 교환하도록 최선을 다해 중재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김정은은 국제정치 현실에서 ‘가재는 게 편’이라고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자신에게도 분명한 우군이 필요하다고 보고 중국을 끌어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한때 서로를 ‘친척’으로 부를 만큼 공고했던 북-중 관계는 북한의 핵 개발과 중국의 대북제재 참여를 계기로 삐걱거리기 시작해서 작년 말에는 ‘남보다도 못한 관계’로까지 악화되었다. 그런 상태에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되었으니 누구나 이번에는 북한의 지도자가 첫 방문 국가로 중국을 택하는 관성이 깨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김정은은 북-중 간 앙금을 접어두고 전략적 실리를 택했다. 그는 남북정상회담 전인 3월 하순에 중국을 전격 방문하였으며, 5월 초 다시 중국 다롄에서 시진핑 주석을 만났다. 지난 두 달간 양국은 세 차례의 고위급 교류도 진행하였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 교류는 양적으로만 보면 한-미 교류에 버금간다.

ⓒKCNA KCNA / Reuters

김정은은 두 차례 방중에서 비핵화와 관련하여 중국과 “전술적 협동을 보다 치밀하게 강화해나가기 위한 방도적인 문제들”을 협의했으며 시진핑에게 “중대한 사업과 관련한 진정 어린 고견을 들려준 데 대해” 감사를 표시하기도 했다. 그 결과 한반도 비핵화 논의의 장에 중국의 자리가 자연스럽게 생겼다. 어떤 이들은 중국이 별다른 노력 없이 ‘슬쩍 숟가락을 얹으려고 한다’고 마뜩잖아하지만, 기실 김정은이 비핵화 논의에 시진핑을 초대한 것이다.

북한은 비핵화 논의에 왜 중국을 적극 끌어들인 걸까? 먼저 많은 이들이 분석하는 것처럼 중국이 대미협상에서 자신의 버팀목이 되어주기를 희망해서일 것이다. 중국은 그동안 일관되게 비핵화 해법으로 단계적 동시적 조치를 주장해왔다. 이런 주장은 선 핵폐기에 매력을 갖고 있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북한에 이미 큰 응원군이 되고 있다.

그런데 김정은의 북-중 관계 강화 전략은 비핵화 이후까지 내다본 책략으로 느껴진다. 비핵화 이후 한반도는 평화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지만, 그때도 한-미 동맹은 공고하게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마 북-미 적대관계가 해소되었더라도 북한은 이 상황을 정치안보적으로 자신에게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느낄 것이다. 이를 대비해서 김정은은 한-미 관계의 거울 이미지(mirror image)를 연상시키는 북-중 관계를 구축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한국이 미국과 동맹이면서도 중국과 친선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북한도 중국과 동맹에 준하는 유대관계를 복원하고 미국과 친선관계를 맺으려는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의도에 중국도 화답하고 있다. 지난 두 차례의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북-중 관계를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것”(3월), “운명공동체, 변함없는 순치의 관계”(5월)로 표현하였다.

이제 중국의 한반도 비핵화 논의 참여는 북한의 전략상 불가피하다. 이는 한국 정부가 중국이 동의하지 않는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을 추진한다면 별 소득 없이 한-중 관계만 불편해지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사실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서 한·미와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중국의 참여를 오히려 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혹자는 중국이 북한의 단계적 동시 조치 주장을 지지하는 데 부담을 느낄 수 있으나, 오히려 이것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고무하고 미국의 대북협상 목표를 현실화시켜서 북한이 미국의 강한 압박으로 협상장을 뛰쳐나갈 가능성을 억제할 수 있다. 중국이 비핵화 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 문제와 사드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을 우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면 비핵화 국면 자체가 흔들릴 것이기에 그 가능성은 높지 않다. 사드 문제도 한·중이 긴밀히 조율하면 적어도 비핵화 과정에서 제기되는 것은 막을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은 당면한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과 한반도 비핵화의 성공적 실현을 위해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중국과 협력을 모색해야 할 때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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