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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사람들에 대한 인식을 바꿀 때가 왔다

ⓒASSOCIATED PRESS

“만남에 늦으셨네요. 이번 한 번은 용서하겠지만 또 한 번 이런 일이 있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 보장할 수 없습니다.”

나는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얼었다. 이 나라에서 나에게 생길 수 있는 일이란 어떤 걸까? 무슨 일이든 생길 수 있었다. 나는 남은 하루 동안 입을 다물고 북한에서는 절대로 다시는 늦지 않겠다고 나 자신과 다짐했다.

매우 길고 어색한 몇 분이 흘렀다. 그런데 갑자기 내 담당자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는 모습이 보였다.

“하하하! 내가 지나쳤나요?” 다른 사람들도 따라 폭소를 터뜨렸다. 장난이었다. 내가 새로 사귄 친구들은 사람들이 가진 북한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과는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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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미디어가 북한 사람들을 다룰 때, 이들은 대체로 북한이라는 국가적 맥락 안에서 표현된다. 김정일의 장례식에 참석한 미친 듯한 지지자, 또는 정권의 끔찍한 탄압에 희생된 수감자 등으로 북한 정권과 연관돼 묘사한다. 마치 개인의 의지도, 성격도 없는 듯이 말이다. 북한 사람들이 자기 삶의 의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느낌은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김정은과 그의 미사일만이 관심사다.

전혀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평양 시내를 걷는 사람들이 ‘지나가던 시민’으로 마음대로 언론과 인터뷰를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나가던 평양 시민을 인터뷰하는 것보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를 추측하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다. (50/50의 확률인 데다 추측이 틀렸다고 해도 그걸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 존재를 알 길 없는 김정은의 치즈 중독에 관한 기사를 써내는 것도 마찬가지로 훨씬 쉬운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북한 사람들 자체에 제대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말 그곳에 희망이 있다면, 그 희망은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지만 나라 안 곳곳에서 아주 작은 변화들이 거대한 규모로 일어나고 있다. 북한 사람들이 완전히 로봇이었던 적은 없지만, 주민들과 북한 정권의 심리적 거리는 요즘 특히 더 멀어지고 있다. 지금 북한 사람들은 정치적 억압, 그리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제 체제 속에서도 생계를 이어나가면서 동시에 자기만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주민들과 북한 정권의 심리적 거리는 요즘 특히 더 멀어지고 있다

적게는 수십만, 많게는 2백만여 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북한 정권과 주민들의 사회적 계약은 붕괴했다. 사람들은 더는 국가를 의지할 수 없었고, 직접 자신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장마당 거래 같은 서민들의 자본주의적 활동이었다. 당도 이제는 시장(장마당)을 인정할 처지에 놓였다. (심지어 세금도 부과하고 있다.)

이제 북한에는 여러 종류의 민간 직종이 존재한다. 두 번, 세 번 다른 주인을 거쳐 온 중고 자전거를 수레에 싣고 구멍 난 도로를 다니는 상인들이 있다. 자전거를 고칠 줄 아는 사람들은 그걸로 먹고살 수 있다는 뜻이다. 또 TV나 라디오를 만질 줄 아는 사람은 외국 방송을 불법으로 연결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 어떤 사람들은 집에 남는 빈방을 미혼 커플들에게 시간당으로 빌려주며 수입을 얻는다.

어느 마을을 들르든 적어도 한두 명의 손재주 좋은 주부들이 돈벌이로 몰래 술 양조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옥수수를 주재료로 하는 농태기는 숙취가 매우 고약한 술이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도 남한의 동지들처럼 술을 좋아한다. 평양 같은 대도시에는 술집이 종종 있지만 전체적으로 바(Bar) 문화, 클럽 문화는 북한에 없다. 젊은이들은 집이나 아니면 버려진 건물을 찾아 시끌벅적하게 소주나 농태기를 곁들인 파티를 벌인다.

북한 사람들은 정치적 억압, 그리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제 체제 속에서도 생계를 이어나가면서 동시에 자기만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그런 파티에 가보면 대부분 한국의 케이팝이 흘러나온다. 중국을 통해 MP3 파일이 가득 담긴 USB 메모리가 흘러들어와 파일을 끊임없이 복사하고 재생한다. 재력이 되는 집에서는 아이들 교육 차원에서 MP3플레이어를 갖고 있는데, 아이들은 거기다 케이팝을 저장한다.

한국 드라마도 인기가 높다. 한국 드라마는 북한 젊은이들의 말투까지 바꾸고 있다. 북한에서는 생소하던 “당연하지”라는 말을 이제는 북한 거리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스키니진 같은 패션 트렌드도 모방한다. 탈북자들의 인터뷰에 의하면 스키니진은 도시에 사는 젊은 세대 여성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고 한다. 드라마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영향으로 한국의 성형수술 열풍도 북한으로 퍼지고 있다. 몇 달러에 쌍꺼풀 수술을 해주는 무허가 의사들이 넘쳐난다.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 외국의 미디어를 접하는 일은 제법 흔한 일이 됐다. 이를 막는 당국에 대한 존경심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기아 이후 특히 만연해진 부정부패 때문에 혹시 이런 행위가 발각된다고 해도 물건 압수와 뇌물 몇 푼이면 큰 문제 없이 사건이 해결된다. 안전보위부원들만큼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는 부류는 없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다. 다른 북한 사람들처럼 즐겨보는 데 더해 한국 방송 자료에 대한 접근이 훨씬 자유롭기 때문이다.

북한 사람들이 당국의 모든 규제를 수용하는 시대는 정말로 끝났다

북·중 접경지역에서 일하는 당원들도 부를 축적할 기회가 많다. 중국에서 넘어오는 휴대전화를 압수하는 것이 그들의 주된 수입원이다. 북한 인권단체 링크(Liberty in North Korea)의 박석길 정보전략부장이 한때 국경을 넘나들며 돈을 벌던 탈북자 친구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는 보위부원에게 휴대전화를 압수당했는데, (물론 뇌물도 건넸다) 휴대전화 없이는 장사를 이어갈 수 없어 다시 자기 휴대전화를 되샀다. 이후 휴대전화가 하나 더 필요하게 됐고, 그 친구는 다시 같은 보위부원에게 연락해 휴대전화를 하나 더 샀다고 한다.

‘단 한 개의 심장’으로 형성된 북한의 이미지는 잘못됐다. 북한 사회에는 다른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은 현실이 있다. 자기의 이익, 더 풍요로운 삶, 또 개인의 기쁨을 위해 그들은 노력한다. 불행하게도 당의 지배는 아직 건재하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이 당국의 모든 규제를 수용하는 시대는 정말로 끝났다. 우리도 북한 사람들에 대한 인식을 바꿀 때가 왔다.

*튜더는 ‘North Korea Confidential: Private Markets, Fashion Trends, Prison Camps, Dissenters and Defectors’의 저자다.

*허핑턴포스트 블로그의 It's Time For Us To Update Our Image of North Koreans를 번역, 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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