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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의사] 오픈 액세스 대신 '개방형 정보 열람'

글 읽는 속도를 높여주는 한글 의사 시리즈 9편

<허프포스트>가 사단법인 국어문화원연합회의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의 지원을 받아 ‘한글 의사’ 시리즈를 진행합니다. 한글 의사는 영어로 써진 어려운 용어 등을 쉬운 우리말로 바꿔주는 이로서 ‘글 읽는 속도를 높여주겠다’라는 포부를 가진 인물입니다. 어려운 용어 때문에 정보에 소외되는 국민 없이 모두가 함께 소통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암흑물질의 비밀을 풀었다는 소식을 죽기 전에 들었으면 좋겠어요.” 몇 해 전 ‘지하실험연구단’ 단장님을 인터뷰했을 때 들었던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두 번째는 ‘양자 역학 알아요?’였고.

Space stars and nebula as purple abstract background
Space stars and nebula as purple abstract background ⓒsololos via Getty Images

인간이 도달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 우주. 광활한 공간의 1/4 정도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것이 ‘암흑 물질‘이다. 3/4은 암흑에너지가 채우고 있고 지구 같은 행성이나 별, 은하 등은 우주의 약 5%에 불과하다. 그러나 암흑물질은 존재하지만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어서 관측된 적이 없는 미스터리한 물질이다. 암흑이란 이름도 정체가 밝혀지지 않아서 붙여졌다. 영어로는 ‘다크 매터(Dark matter)’다.

이 암흑 물질이 우주의 기원인 ‘빅뱅’을 풀 수 있는 열쇠로 부각되면서 약 30년 전부터 스위스, 일본, 미국 등 전 세계 물리학자들이 집중적으로 연구해왔다. 어떤 해에는 이탈리아 연구진이 새로운 정보를 알려오기도 하고, 스위스에 있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물질 규명을 위해 새로운 입자가속기를 설치하기도 했다.

영국 런던 - 11월 12일: 한 관람객이 2013년 11월 12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과학박물관 '콜라이더' 전시회에서 대형강입자충돌기(LHC)의 대형 등불 이미지 사진을 찍고 있다. 제네바에 있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는 입자충돌기를 이용해 '빅뱅' 실험을 한 후 신의 입자라 불린 '힉스 입자'를 입증해낸다.
영국 런던 - 11월 12일: 한 관람객이 2013년 11월 12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과학박물관 '콜라이더' 전시회에서 대형강입자충돌기(LHC)의 대형 등불 이미지 사진을 찍고 있다. 제네바에 있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는 입자충돌기를 이용해 '빅뱅' 실험을 한 후 신의 입자라 불린 '힉스 입자'를 입증해낸다. ⓒPeter Macdiarmid via Getty Images

인터뷰를 했던 ‘지하실험연구단’은 기초과학연구원(IBS) 소속으로 미스터리한 암흑 물질을 탐색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과학자들이다. 그 어떤 물질의 방해도 없는 양양의 깊은 지하에 검출기를 설치하고 암흑 물질이 발견되는지를 매일 같이 확인한다.

 

코사인-100 실험이 이뤄진 양양 지하실험실 모습(IBS 제공)
코사인-100 실험이 이뤄진 양양 지하실험실 모습(IBS 제공) ⓒ© 뉴스1

이들의 연구는 길게는 수십년에 걸쳐 작은 성과들이 모여서 쌓아지는 과정이다. 힉스 입자도 1964년에 물질 가능성을 제기하고나서 48년만에야 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서 가속기 실험을 통해 증명해냈다. 기초과학이란 단기간에 성패를 보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이 정도는 예삿일이다.

그렇기에 지하실험연구단은 다양한 국내·외 연구자들과 함께 공동연구를 진행하기도 하고, 유의미한 결과들을 논문을 게재하고 알리면서 ‘암흑 물질의 발견’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이것은 다른 나라 연구진들도 마찬가지다.

미국 우주 비행사 조셉 태너가 2006년 9월 국제우주정거장으로 가는 STS-115 임무의 일환으로 우주 유영 도중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미국 우주 비행사 조셉 태너가 2006년 9월 국제우주정거장으로 가는 STS-115 임무의 일환으로 우주 유영 도중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NASA via Getty Images
카리나 성운의 항성 제트기, 2009년 9월 9일, NASA가 허블 우주 망원경을 수리하고 난 뒤 찍은 첫 사진
카리나 성운의 항성 제트기, 2009년 9월 9일, NASA가 허블 우주 망원경을 수리하고 난 뒤 찍은 첫 사진 ⓒPhoto by NASA, ESA, and the Hubble SM4 ERO Team via Getty Images

″단장님이 찾지 않으셔도 괜찮다는 말씀이세요?”라고 물었을 때 그는 ”당연히 제가 찾으면 가장 좋죠”라고 웃으며 말했다. 자신이 발견한다면 가장 좋겠지만, 어떠한 발견도 혼자서 해낼 수 없으며 다년간 여러 사람의 노력과 연구 결과를 통해서 나아가는 것이란 것이 대화 속에 담겨있었다. 덧붙여 그는 ”‘암흑 물질’의 발견을 통해 바뀔 과학의 세계가 궁금하고, 우주의 원리가 알고 싶다”고 말했고 ‘역시 과학자다!’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학술지의 ‘오픈 액세스(Open access)’ 전환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2020년 제1회 KESLI 오픈지식세미나‘를 열었다. 오픈 엑세스란 우리말로 ‘개방형 정보 열람(서비스)’를 뜻한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국가 오픈액세스 플랫폼(KOAR) 서비스, 연구자들의 학술정보 접근성 증대를 위해 만들어졌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국가 오픈액세스 플랫폼(KOAR) 서비스, 연구자들의 학술정보 접근성 증대를 위해 만들어졌다. ⓒ국가 오픈액세스 플랫폼(KOAR) 화면 캡처

개방형 정보 열람이라고 하니 더욱 쉽고 빠르게 이해가 갈 테다. 기본적으로 이용자가 온라인을 통해 학술 정보를 복제하고 보급하고, 인쇄, 검색할 수 있도록 공유하는 것, 또는 그러한 서비스를 뜻한다. 물론 재정적, 법률적, 기술적인 장벽 없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 모든 정보를 말 그대로 개방한다는 의미다.

 

최근 코로나19와 관련 논문이 전 세계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국가 개방형 정보 열람(KOAR)’에 등록된 한국인 저자 포함 논문은 182건(5월 26일 기준)으로 전체의 0.5%로 나타났다.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서는 모범적이라고 칭찬 받으나 연구분야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다. 이는 우리나라의 성과주의와도 관련돼 있다. 우리 사회는 ‘공동 저자’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가 팽배하다. 성과 평가에 불리하니 혼자 가진 정보를 공유하지 않으려는 현상도 발생한다. 연구자들이 받는 정량적 평가와 압박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연구비, 나아가 연구 지속성이 좌지우지되니 발생하는 문제다.

힘을 하나로 합치지 않으면 절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는 시기다. 만약 먼 훗날에 ‘암흑 물질’을 발견했다는 기쁜 소식이 나온다면 그때 지하실험연구단과 단장님, 그리고 원조를 아끼지 않았던 한국수력원자력 양양 양수발전소와 지역 주민들을 꼭 생각할 거다. 더 나은 것은 절대 혼자의 힘으로 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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