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2018년 05월 11일 18시 05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5월 11일 18시 08분 KST

김성태, 이정현, 최병렬...자유한국당 지도부 단식은 왜 늘 조롱을 받을까

자유한국당 '단식 잔혹사'는 끝나지 않는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5월11일 결국 단식을 중단했다. 전날 단식에 따른 건강악화로 병원에 이송됐다가 다시 국회 농성장으로 복귀해 단식을 이어가겠다고 한 지 하루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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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9일 만에 단식을 마쳤지만, 사실 그가 보여준 투혼은 대단했다. 단식 8일째인 10일 호흡곤란과 가슴통증을 호소하며 응급실로 실려갔지만, 몇시간 만에 ”제가 있어야 할 곳은 국회”라며 다시 굶기를 선택했을 정도다.

그러나 왠 일인지 놀라움과 안타까움보다는 조롱과 비아냥을 실은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이 페이스북을 통해 김 원내대표를 향한 조롱을 “자제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는 “심장통증과 호흡곤란 증세로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는 사람을 두고 ‘단식한 티를 내려 상의를 들어 올렸다’고 조롱하는 댓글과 기사를 보니 참 잔인들 하다”고 개탄했다.

자유한국당 계열 정당 지도부의 ‘단식 잔혹사’가 되풀이되고 있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정치인들이 정치 투쟁 차원에서 단식을 선택하는 일은 종종 있어왔다. 특히 민주당 계열 정당과 진보정당 소속 정치인들이 더 자주 단식투쟁을 벌였다. 민정당과 민자당, 신한국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으로 이어져온 보수정당에서 단식이 정치 투쟁 수단으로 활용된 사례는 훨씬 드물다. 그러나 유독 보수정당 지도부가 단식을 벌일 때 핵심 지지층을 뺀 다수의 시선은 늘 싸늘했다. 냉랭한 민심의 비웃음 앞에서 이들의 단식은 늘 기대했던 결과를 낳는 데 실패했다.

2016년엔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대표의 단식이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이 대표는 9월26일 정세균 국회의장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정 의장 사퇴를 요구하는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여당 대표로서는 사상 첫 단식투쟁에 나선 것이었다. 새누리당도 이날부터 시작된 국정감사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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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대표

그러나 이 대표의 단식 투쟁을 바라보는 국민 눈길은 차가웠다. 당시는 한겨레 등의 보도로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의 서막이 열린 직후였다. 더불어민주당 등 당시 야당은 국정감사를 통해 최순실 게이트를 더 깊이 파헤치려고 전의를 불태웠다. 이 대표 단식을 두고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과정에 대한 불만 표출이라기보다 최순실 게이트 방어를 위한 고육지책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건 이 때문이었다. ‘방탄 단식’이라는 비난이 속출하면서 결국 이 대표는 7일 만인 10월2일 단식 중단을 선언한다. 그는 ”민생과 국가 위해 무조건(으로) 단식을 중단한다”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으로 후송됐다.

당시 이 대표의 단식을 다룬 뉴스들을 구글로 검색해보면, `수확없이 단식 종료′   ‘왜 감동보다 조롱이 쏟아졌을까’ 등 당시 민심의 한 자락을 보여주는 제목들이 상위에 배치됨을 볼 수 있다. 댓글들은 뭐 더 얘기할 필요 없겠다.

2003년 자유한국당 계열 정당 지도부로는 사상 처음으로 단식을 벌인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도 단식 과정에서 상당한 비난과 조롱을 감내해야 했다. 이정현 대표가 여당 대표로 단식을 한 것과 달리, 최병렬 대표는 당시 야당 대표로서 노무현 정부에 맞서 단식에 들어갔다. 최 대표는 노 대통령 측근 비리에 대한 특검 도입을 촉구하며 17일간 단식을 이어갔다. 그러나 위염 증세가 있어 곡기가 전혀 안 들어가면 위험하다는 주치의 권유로 단식 초기 3일 동안 쌀뜨물로 적응기를 가진 것을 두고 초반부터 단식 진정성 논란이 이는 등 반발 여론이 거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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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당시 한겨레 보도를 보면, KBS 방송문화연구소가  실시한 모바일 조사 결과  당시 한나라당의 원외투쟁에 71%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 대표의 ‘구국의 단식’을 보다 못한 민주노동당이 서민의 대표 음식인 자장면을 배달하려다 전경에 의해 철가방을 빼앗기는 일도 벌어졌다. 무엇보다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단식중인 최 대표를 찾아 ”굶으면 확실히 죽는다”며 중단을 권유한 일화는 지금껏 회자된다.

알고보면, ”굶으면 죽는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말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실이다. 김 전 대통령은 나중에 자유한국당 전신인 민자당 대표를 거쳐 대통령에 오르지만, 1983년에는 민주당 계열 야권 지도자로서 자신의 정치활동을 금지시키고 가택 연금을 해 외부 접촉을 차단한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서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며 단식을 벌였다. 23일간 단식 투쟁 끝에 가택연금 해제를 이끌어냈고, 이후 야당 세력을 정비해 1987년 직선제 개헌 투쟁의 기반을 쌓았다.

자유한국당 계열 보수정당 지도부의 단식은 민주화 이후 이들의 투쟁 수단으로 새롭게 등장했다. 그러나 번번이 민심의 호응을 끌어내지 못한 채 역풍에 부닥쳤다. 민심의 흐름을 읽지 못한 채 기득권을 지키려 ‘그들만의 투정‘을 부리는 것으로 비쳤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설득력이 있다. 위에서 살펴본 15년 전 최병렬 대표 단식 당시 한겨레 기사의 다음과 같은 평가는 여전히 유효할 듯 하다. 이런 시선을 돌려놓지 못하는 한 자유한국당의 ‘단식 잔혹사’는 김성태 이후로도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민주인사들의 전유물이었던 단식투쟁이 기득권세력의 ‘투정수단’으로 변질되었다는 지적도 눈에 띈다. <인터넷한겨레> 게시판에서 ‘ricky’는 “단식투쟁은 우리 정치사에서 거대권력에 맞서 민주화의 진전을 이뤄낼 수 있었던 소중한 문화적 가치”라며 “기득권의 상징인 거대야당의 대표가 단식투쟁을 한다니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