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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네덜란드 남자는 디자인으로 인류를 구하고 있다

단 로세하르데가 말하는 ‘쇼온하이트’한 디자인

  • 전종현
  • 입력 2018.08.24 14:25
  • 수정 2018.08.24 14:51

얼마 전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저에서 열린 프라이빗 파티에서 짧은 인터뷰를 했다. 네덜란드에 소재한 스튜디오 로세하르데의 대표, 단 로세하르데Daan Roosegaarde가 그 주인공이다.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대한상의 제주포럼>에 국제 연사로 초대되어 서울을 방문한 김에 주한 네덜란드 대사인 로디 엠브레흐츠Lody Embrechts가 자국민인 로세하르데의 방한을 축하하며 작은 파티를 마련한 것이었다. 파티 시작 전 30분 동안 진행하는 미니 인터뷰를 위해 사전 리서치를 하다 보니 이게 웬걸. 전 세계 미디어와 국가, 도시로부터 커다란 관심을 받는 ‘스모그 프리 프로젝트Smog Free Project’의 창시자라는 이 남자, 뭔가 사람을 흥미 돋게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매우 짧은 시간 동안 대화하면서 대략 파악한 그의 정체는 다음과 같다. ‘예술가의 상상력, 엔지니어의 논리력, 건축가의 구축력, 디자이너의 계획력, 그리고 혁신가의 추진력을 갖춘 다학제적 인재’. 로스하르데는 세계 곳곳에 초대형 친환경 공기 정화 장치인 ‘스모그 프리 타워Smog Free Tower’를 설치해 미세 먼지를 정화하고, 그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인 탄소를 다이아몬드 생성 기술로 압축해 육면체 모양의 ‘스모그 프리 링Smog Free Ring’으로 변모시켜 그 판매 기금으로 다시 스모그 프리 타워를 설치한다. 이런 일련의 선순환은 프로젝트를 지속할 수 있는 디자인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요즈음 생활 속 미세 먼지로 고통받는 현대인의 관심을 모으기에 모자람이 없다. 지금 이 시각에도 미세 먼지와의 전투를 영리하게 지휘하며 세계 곳곳을 돌아다닐 인물, 단 로세하르데와 나눴던 대화를 유머러스하면서도 단호했던 그의 말솜씨를 상기하며 공유해본다.

스모그 프리 프로젝트의 주인공, 단 로세하르데.
스모그 프리 프로젝트의 주인공, 단 로세하르데. ⓒStudio Roosegaarde

단 로세하르데 Daan Roosegaarde

단 로세하르데는 아르테즈 예술대학교ArtEZ University of the Arts에서 순수 미술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베를라헤 건축대학원The Berlage Institute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2007년 스튜디오 로세하르데를 설립해 다양한 인터랙티브 기반의 공공 예술을 선보이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는데, 특히 2015년부터 꾸준히 진행 중인 스모그 프리 프로젝트는 ‘2016년 올해의 네덜란드 예술가 상’, ‘2017 D&AD 어워드’를 포함해 무수한 상을 로세하르데에게 안겨 주었다. 런던 디자인 박물관, 암스테르담 국립 박물관, 런던 테이트 모던, 파리 장식미술관, 런던 V&A 박물관 등 유수 기관의 기획전에 참여했으며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의 ‘영 글로벌 리더’로 선정됐다. 현재 싱가포르 정부 산하의 디자인 진흥 기관인 ‘디자인 싱가포르Design Singapore’의 자문 위원이며 상하이 통지 대학교의 초빙 교수로 활동 중이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위치한 스튜디오 로세하르데 전경.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위치한 스튜디오 로세하르데 전경. ⓒStudio Roosegaarde

< INTERVIEW >

홍수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지상에 푸른 빛이 넘실대는 모습을 구현한 ‘워터라이트Waterlicht’.
홍수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지상에 푸른 빛이 넘실대는 모습을 구현한 ‘워터라이트Waterlicht’. ⓒStudio Roosegaarde
‘반 고흐 패스Van Gogh Path’는 낮에 축광시킨 형광 물질을 자전거 도로 바닥에 삽입해 라이더의 가시 거리를 확보하며, 동시에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명작 ‘별이 빛나는 밤’의 패턴을 지상에 구현함으로써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반 고흐 패스Van Gogh Path’는 낮에 축광시킨 형광 물질을 자전거 도로 바닥에 삽입해 라이더의 가시 거리를 확보하며, 동시에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명작 ‘별이 빛나는 밤’의 패턴을 지상에 구현함으로써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Studio Roosegaarde

 

Harry Jun(이하 HJ): 당신 이름 앞에는 예술가, 혁신가, 건축가 등 여러 수식어가 다양하게 붙어요. 스스로 어느 쪽에 가깝다고 느끼나요?

Daan Roosegaarde(이하 DR): 저는 특정한 것에 목적을 두고 찾아내는 사람이기보다는, 주변을 둘러보고 탐색하는 사람에 가까워요. 실제 프로필을 살펴보면 예술, 건축과 관련된 일이 물론 많지만, 수학을 가르친 적도 있답니다. 개인적으로 과학적인 사고는 제게 꽤 의미 있는 영역이에요. ‘단 로세하르데’라는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가 오든지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미래를 향한 호기심이 모여 우리가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미래에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실질적으로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에 자본과 기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족한 건 오히려 상상력이죠. 상상력은 예술과 기술, 과학과 건축 사이 어딘가에 존재합니다. 새로운 연결점을 찾아내는 능력이 중요해요.

HJ: <제주 포럼>의 연사 프로필을 확인해보니 ‘건축가’라는 타이틀로 정확히 설명하던데요. (웃음)

DR: 오! 좋은 사실을 또 이렇게 알고 갑니다. 뭐 사실이죠. 대부분의 시간을 건축가로 보냈으니까. 특히 공공 공간에 관한 프로젝트에 주목했는데, 보통 대중이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종류의 프로젝트였죠. 네덜란드에는 굉장히 유명한 단어가 있어요. 바로 ‘쇼온하이트schoonheid’입니다. (참조: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네덜란드어 schoonheid는 ‘스혼헤이트’로 표기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실제 인터뷰어가 들은 그의 발음은 ‘쇼온하이트’라는 독일어 음가에 가까웠기 때문에 현장성을 높이기 위해 위 글에서는 독일어 표기법인 ‘쇼온하이트’로 통일한다) 쇼온하이트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는데, 첫 번째로는 외적인 아름다움을, 두 번째로는 깨끗함, 청결함을 뜻합니다. 아름다운 여인을 표현할 때 쓰이는 단어이면서 깨끗한 공기와 물 같은 환경적 의미까지 두루 갖추었어요. 네덜란드에서는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이 ‘쇼온하이트’의 개념을 가장 중심에 둡니다. 우리가 ‘쇼온하이트’한 기술과 건축, 디자인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미래의 삶은 더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는 거죠. 아주 중요합니다.

HJ: 스튜디오 로세하르데는 2007년 설립 이후 다양한 창의적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지만, 역시 대표작이라면 2015년부터 지속해서 역량을 쏟고 있는 ‘스모그 프리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예전에 진행한 디자인, 건축, 예술 프로젝트보다 기술 중심의 엔지니어링 프로젝트의 정체성이 더 강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DR: 모든 건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더러운 공기를 정화하는 행위는 분명 기술에 기반을 두고있죠. 하지만 맑은 공기를 불러오겠다는 아이디어는 지극히 디자인적인 사고입니다. 기술과 디자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요. 네덜란드인에게는 특히나 그렇죠. 중국 상하이 정도의 인구를 가진 작은 나라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보다 창의적으로 행동해야만 했습니다. 네덜란드 국토의 대부분이 해수면보다 높이가 낮습니다. 우리는 굉장히 오래전부터 풍차와 댐 같은 인공물을 만들어 왔어요. 창의적으로 우리의 삶터를 디자인해온 셈이죠. 디자인과 창의성, 기술이 한데 어우러지는 것은 네덜란드 특유의 DNA로, 제가 나고 자라온 그 전경에 녹아 있었습니다. 스모그 프리 프로젝트 역시 디자인, 창의성, 기술을 한데 모아 문제점을 개선하는 네덜란드의 ‘풍광 개발 전통’의 일부라고 볼 수 있어요. 예술과 기술은 분리하기보다 통합하는 것입니다. 그나저나 이런 질문을 한 의도가 궁금해지네요. 저도 질문해도 되나요?

HJ: 솔직히 말하자면, 스모그 프리 타워의 조형미가 아쉬웠어요. 마치 우리 생활 속 공기 청정기를 거대한 구조물로 확대한 느낌이랄까. 기술적인 기능성을 극대화했지만, 공공 공간를 점유한 건축 설치물에 기대하는 미적인 측면이 약해 보였어요. 예를 들어 외형이나 스킨에 건축가의 개성을 담을 기회가 충분히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들었달까요.

DR: 흥미롭네요. 스모그 프리 타워의 외관은 사실 일본과 중국의 사원에 있는 탑의 형상에서 따온 거예요. 현재 네덜란드를 비롯해 중국의 여러 도시, 폴란드, 멕시코, 콜롬비아, 인도 등으로 확장 중인 이 시설을 접한 현지인은 ‘공기 정화 사당’으로 부르곤 하더라고요. 스모그 프리 타워를 통해 제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아름다움’과 ‘맑고 깨끗함’을 동시에 갖춘 쇼온하이트적 공기였습니다. 핵심이 공기라면 타워는 매개체죠. 스모그 프리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결과물을 꼽아 본다면 그것은 타워가 아니라 맑은 공기, 그 자체일 것입니다.

HJ: 설명을 듣다 보니 단순한 외형을 추구한 까닭이 이해되네요. 사원의 탑이라는 조형적 모티브도 흥미롭고요.

DR: 사실 스모그 프리 타워가 추구하던 초기 디자인 콘셉트는 지하에 시설물을 만들어 지상을 돌아다니는 시민이 그 존재를 모르게 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프로젝트를 실질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시민이 놀러 오고 찾아오는 쉼터가 되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형태를 취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죠. 공기 정화 시스템도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필터식이 아니에요. 필터식은 여러모로 단점이 많아요. 유지하기 위해서 상당한 전력도 필요하고, 원활한 기능을 위해서는 청소도 해야 합니다. 또 초미세먼지는 걸러내기가 쉽지 않아요. 사람 머리카락의 1/40 굵기라서 후각을 통한 인지가 불가능하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채택한 방식은 이온을 이용한 공기 정화 시스템이에요. 보통 병원 내부의 병실에서 쓰이는데 지금까지 실외기에 이온 방식의 정화 시스템을 쓴 건 스모그 프리 타워가 처음이에요. 이유가 궁금하시죠? 간단해요. 엄청 어려운 기술이거든요. 스모그 프리 타워 하나로 축구장 넓이의 면적을 하루 동안 정화하는 게 가능해요. 그것도 아주 적은 전력을 소비하면서 말이죠. 사실 기술적으로는 지금보다 훨씬 크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아담한 크기로 결정한 까닭은 작업이 추구하는 의의 때문이에요. 스모그 프리 프로젝트는 우리의 잘못된 현실을 실질적으로 ‘바로 잡는’ 행위죠. 더러운 공기를 깨끗하게 만드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이 프로젝트는 인류가 그린 에너지를 활용해 어떻게 청정한 환경-물, 공기 등-을 창조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에 대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그 의의가 남다른 것입니다.

스모그 프리 타워의 원리를 설명하는 로세하르데.
스모그 프리 타워의 원리를 설명하는 로세하르데. ⓒStudio Roosegaarde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처음 설치한 스모그 프리 타워.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처음 설치한 스모그 프리 타워. ⓒStudio Roosegaarde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설치한 스모그 프리 타워의 내부 모습.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설치한 스모그 프리 타워의 내부 모습. ⓒStudio Roosegaarde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설치한 스모그 프리 타워의 내부 모습.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설치한 스모그 프리 타워의 내부 모습. ⓒStudio Roosegaarde
중국 텐진에 설치한 스모그 프리 타워. 마치 사원의 탑을 연상시킨다.
중국 텐진에 설치한 스모그 프리 타워. 마치 사원의 탑을 연상시킨다. ⓒStudio Roosegaarde
중국 텐진에 설치한 스모그 프리 타워.
중국 텐진에 설치한 스모그 프리 타워. ⓒStudio Roosegaarde
중국 다롄에 설치한 스모그 프리 타워.
중국 다롄에 설치한 스모그 프리 타워. ⓒStudio Roosegaarde
폴란드 크라쿠프에 설치한 스모그 프리 타워.
폴란드 크라쿠프에 설치한 스모그 프리 타워. ⓒStudio Roosegaarde

HJ: 스모그 프리 프로젝트는 도시와 연관지어 장기적으로 진행된다고 들었어요.

DR: 맞습니다. 그래서 스모그 프리 타워뿐 아니라 ‘스모그 프리 바이시클Smog Free Bicycle’이라 이름 붙인 자전거도 있습니다. 중국의 오포OfO와 함께 만든 자전거에요. (참조: 스튜디오 로세하르데 웹사이트에서 스모그 프리 바이시클의 프로토타입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접할 수 있다.) 도시 환경 개선은 한 단계, 한 단계씩 밟아가야 하는 장기 캠페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인프라에 투자하는 정부가 필요합니다. 그린 에너지, 전기 자동차, 자전거 이용률의 상승 등을 기대하며 자금을 투자하고 운영하는 거죠. 흔히 말하는 ‘탑-다운 방식’입니다. 하지만 ‘바텀-업 방식’과 공존하지 않는다면 프로젝트는 불완전합니다. 스모그 프리 프로젝트의 기획과 그 결과물로 나오는 타워나 반지 등이 정부가 추구하는 거대한 의제를 지지하는 디자인적 방식으로 제시되고 젊은 세대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죠. 정책을 펼치는 정부와 아이디어를 내는 디자이너 사이에서 우리는 두 집단을 엮으며 영향력을 균질하게 유지하고, 프로젝트가 매끄럽게 퍼질 수 있도록 북돋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제 내년까지 타워 이외의 새로운 프로토타입이 순차적으로 공개될 예정입니다. 타워의 개수도 더 많아질 테고, 그 형태 또한 다양해질 전망입니다.

중국의 오포와 협업한 스모그 프리 바이시클의 개념도.
중국의 오포와 협업한 스모그 프리 바이시클의 개념도. ⓒStudio Roosegaarde

HJ: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요. 예전 인터뷰를 보면 중국 베이징에서 심각한 미세 먼지를 겪으면서 스모그 프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는 구절이 나오는데요. 실제 타워를 처음으로 배치한 곳은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이었어요. 영감(?)의 장소인 베이징과 로테르담 사이의 환경적 간극은 너무 크지 않나요?

DR: 유럽도 미세 먼지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고속도로 옆에 산다면 하루에 담배 17개비를 피는 것과 비슷할 정도로 위험성이 심각하죠. 하지만 무엇보다 네덜란드는 ‘창의적 사고’를 펼치기에 아주 좋은 곳입니다. 특히 우리가 지향하는 공공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어요. 게다가 현 시장이 저희 프로젝트를 엄청나게 좋아한답니다. 근데 이번엔 제가 궁금한 게 생겼어요. 서울에서 저희는 얼마나 알려졌나요? 사실 서울시로부터 타워 설치에 대한 요청을 계속 받고 있거든요. 근데 한국의 엄청난 매력이자 경쟁력은 뛰어난 테크놀로지 아니던가요? 근데 왜 저희에게 연락할까요?

HJ: 제 생각에는 국제적으로 이미 성공한 전례를 가지고 있으니 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미세 먼지는 지금 서울에서 하나의 강력한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거든요.

DR: 제 생각은 조금 달라요. 보통 환경 프로젝트는 스크린에 기반을 두고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저희는 그 스크린 밖을 뛰쳐나가 현실에서 일을 도모하죠. 그래서 더 직접적이고, 상호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효율적이에요. 아마 우리가 세계 곳곳에서 관심을 받는 이유도 이러한 사고방식과 디자인 결과물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HJ: 서울이라는 장소가 언급되니까 궁금증이 생겼어요. 스모그 프리 타워를 설치하는 도시 내 지역의 선별 기준이 특별히 있나요? 주로 도시의 중심부에 설치하는 경향을 보이던데요. 사실 미세 먼지 수치의 심각성을 생각하면, 서울의 경우 시청이 위치한 서울광장보다 교통량이 많은 강남 지역에 스모그 프리 타워가 더 필요할 것 같아요.

DR: 음.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네요. 저희는 일단 공공장소에 주안점을 둡니다. 도시를 대표하는 광장이나 공원이 주로 그런 곳이죠. 애초부터 깨끗한 공기를 경험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지점이니까요. 근데 실질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렇게 고민할 문제는 아닐 것 같아요. 저희는 이미 서울시와 프로젝트를 상의하고 있는데요. 스모그 프리 타워의 경우 하나의 제품처럼 제작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도시에 꼭 하나만 설치하라는 법은 없죠. 고객이 원하는 장소와 기간을 말한다면 저희는 모든 준비가 다 되어있답니다. 아시다시피 전 네덜란드인이고, 저희는 매우 실용적인 사람들이죠. 하하.

HJ: 마치 사업 확장에 대한 준비는 모두 끝마쳤으니 공급에 대해서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으로 들리네요.

DR: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맑은 공기가 선사하는 아름다움으로 영감을 주고 싶어요. 디자인은 기능적인 구조물 그 이상이 될 수 있습니다. 환경을 설계하는 영역까지 나아가야죠. 근데 아까부터 생각했던 건데, 기자님도 저희 네덜란드인만큼 아주 실용적인 분이시네요. (웃음)

HJ: 하하. 칭찬으로 들을게요. 지금까지 스모그 프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정부나 시민의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DR: 질문이 아주 흥미롭군요. 기술의 중요성은 언제나 간과할 수 없지만, 때로는 아름다움, 사랑 같은 것을 타인과 공유하는 행위가 더 중요할 때가 많죠. 스모그 프리 타워는 거대한 공기 정화 시설을 짓는 기술적인 영역에 속하면서, 동시에 많은 시민을 보살피는 무언가를 강구하는 프로젝트입니다. 그래서 깨끗한 공기뿐 아니라 그 부산물인 먼지를 다이아몬드 생성 기술을 통해 장신구로 만들었을 때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어요. 스모그 프리 타워가 지역의 명소가 되면서 프러포즈 장소로 인기를 끌게 되었는데요. 프러포즈하려면 반지가 필요한 건 잘 아시죠? 요즘 웨딩 반지로 스모그 프리 링이 인기랍니다. 저희는 남성을 위한 커프링크스cuff links를 만들기도 했고, 얼마 전에는 다양한 장신구로 장식한 한 벌의 드레스를 주문받기도 했어요. 장신구는 지금까지 저희가 겪어보지 못한 또 다른 창작의 세계였죠. 그래서 엄청난 공부와 시간 투자를 요했는데요.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아마추어 입장에서 맞딱뜨리면서 시장에 실제 도전하는 건 흔치 않은 기회 같아요. 재미있는 경험이었죠. 무엇보다 반지 등의 장신구는 스모그 프리 프로젝트에서 소셜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중요한 촉매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공기 정화 과정에서 수집한 탄소 먼지에 고압의 다이아몬드 생성 기술을 적용해 만든 스모그 프리 링.
공기 정화 과정에서 수집한 탄소 먼지에 고압의 다이아몬드 생성 기술을 적용해 만든 스모그 프리 링. ⓒStudio Roosegaarde
스모그 프리 링은 남성을 위한 커프링크스 등으로 제품 군을 확장할 수 있다.
스모그 프리 링은 남성을 위한 커프링크스 등으로 제품 군을 확장할 수 있다. ⓒStudio Roosegaarde

HJ: 지금 시간이 촉박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많지만 두 개 정도 더 질문할게요. (대사관 직원의 몸짓을 보더니) 아, 질문이 단 한 개만 가능한 상황이군요. 자, 마지막 질문입니다. 제가 파악하기에 스모그 프리 프로젝트의 핵심은 제품화 같아요. 건축이나 예술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스모그 프리 타워를 마치 제품처럼 생산하고, 부수적으로 장신구를 만들어서 상업적인 영역으로 끌어들인 거죠. 보통 환경을 생각하는 착한 프로젝트가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프로젝트의 지속 가능성을 가능케 하는 상업적인 생태계를 구축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DR: 순환circular을 말씀하시는군요. 프로젝트가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서려면 순환적인 사고가 필수입니다. 이 원형의 순환 고리를 인지하고 디자인을 기획해야 하죠.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은 동시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의 양분이 되는 것처럼 결국 서로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된 시스템 아래에서 각자 역동적으로 길을 찾게 됩니다. 하지만 많은 경제 정책이나 사회적 디자인 영역에서는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가면서 매우 손쉽게 획득하는 1차적 성공 여부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는 것 같아요. 저는 공공 디자인 프로젝트에서 앞서 말한 선순환 시스템을 마련한다는 것은 하나의 경제를 만드는 일과 별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우주가 탄생하는 거죠.

‘쇼온하이트’한 디자인을 통해 인류가 누릴 삶의 미래 양식을 바꾸고 있는 단 로세하르데.
‘쇼온하이트’한 디자인을 통해 인류가 누릴 삶의 미래 양식을 바꾸고 있는 단 로세하르데. ⓒStudio Roosegaarde

현장에서 동시 통역을 진행한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 김희정 상무관, 평소 영어 인터뷰를 진행할 때마다 굉장한 퀄리티의 한국어로 맥락을 집어주는 이민식 번역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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