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을 방문 중인 체코 상원의장이 1일 대만 의회 연설에서 ‘나는 대만 시민입니다‘라고 선언했다. 냉전이 한창이던 1963년 독일 베를린을 방문한 고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공산주의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강조하며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라고 선언했던 유명한 연설을 차용한 것이다.
대만을 자국 영토로 규정하고 있는 중국 정부는 앞서 체코 대표단의 대만 방문을 정치적 도발로 규정하며 강하게 규탄한 바 있다. 체코 유력 정치인의 이 연설은 두 나라 관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정치인과 기업인, 학자, 언론인 등 90명 규모의 대표단을 이끌고 4박5일 간의 대만 방문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밀로스 비스트르칠 체코 상원의장은 이날 대만 의회 격인 입법원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비스트르칠 의장은 케네티의 1963년 베를린 연설을 언급했다. 케네디는 당시 베를린장벽 건설 이후 동베를린을 비롯해 공산주의에 ‘포위‘되어 있던 서독 주민들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라고 선언했다. 이 연설은 케네디 최고의 연설 중 하나로 꼽힌다.
″저는 대만과 자유라는 최고의 가치에 대한 저의 지지를 직접 표명하고자 합니다.” 비스트르칠 의장이 연설을 마무리하며 말했다. ”(케네디의 연설에 비하면) 변변치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똑같이 강력한 입장을 밝히고자 합니다. 저는 대만 시민입니다.” 의원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보수 야당 소속인 비스트르칠 의장은 중국 정부의 항의에도 이번 대만 방문 일정을 예정대로 진행했다. 그는 고 바츨라프 하벨 전 대통령의 ”가치 중심” 외교정책 노선을 따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벨 전 대통령은 1948년 수립된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독재정부애 대한 반대 투쟁을 이끈 뒤 훗날 체코 대통령이 됐던 인물이다.
대다수 국가들처럼 체코는 대만과 정식으로 수교를 맺지 않고 있다. 이번 대표단 방문도 체코 정부 차원의 방문은 아니었다. 다만 두 나라는 최근 교류 협력을 늘려왔다.
비스트르칠 의장의 전임자였던 야로슬라프 쿠베라 의장은 올해 2월 대만을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대표단에는 즈데네크 흐리프 프라하 시장도 포함됐다. 그는 중국 정부의 ‘하나의 중국’ 정책에 반대하며 지난해 10월 베이징과의 자매결연 협약을 파기한 이후 대만 타이베이와 협약을 맺은 바 있다.
중국 정부는 중국주재 체코 대사를 불러 강하게 항의했다. 왕이 외교부장은 체코 대표단이 대만에 도착한 다음날인 8월31일, ”근시안적인 행동과 정치적 기회주의에 대한 막대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체코 정부는 왕이 외교부장의 발언이 ”선을 넘었다”며 체코주재 중국대사를 초치하는 것으로 맞섰다.
한편 비스트르칠 의장은 이날 의회 연설에 이어 대만 차이잉원 총통을 만나 회담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