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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살 동생이 20살 오빠에게 “이번이 마지막으로 오는거야”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제70주년 제주4·3 추념식에 참석해 행방불명인 표석에 있는 상징물들을 둘러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제70주년 제주4·3 추념식에 참석해 행방불명인 표석에 있는 상징물들을 둘러보고 있다. 

70년의 세월이 지나, 10살이었던 소녀는 80살이 됐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들에 대한 그리움은 변치 않았다. 3일 제주시내의 벚꽃은 이제 지기 시작했지만,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 가는 길가의 벚꽃들은 절정을 이뤘다. 제주4·3평화공원 안 ’행방불명희생자 표석’에는 곳곳에서 흐느낌과 통곡의 소리가 이어졌다. 텃새가 된 듯한 까마귀들이 표석을 맴돌았다. 행방불명희생자 표석에는 제주에서 행방불명된 2015위의 표석을 비롯해 다른 지방 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다 행방불명된 이들을 포함해 모두 3896위의 표석이 세워져 거대한 공동묘지를 방불케 했다.

제주4·3 추념식이 이처럼 맑은 날씨에 열린 적은 드물었지만, 살아남은 유족들의 고통은 곳곳에 배어 있었다.

“설운 오라방아. 성들도 몬 죽어불고….나 안오민 누가 뵈리지도 안헐로구나.”(불쌍한 오빠야. 형님들도 모두 죽어버리고…. 내가 오지 않으면 누가 돌아보지도 않겠구나) 현양자(82·제주시 노형동)씨는 대전형무소에서 행방불명된 오빠 현상훈(당시 20)씨의 표석 앞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대표적인 피해마을인 당시 노형리 다랑굿 출신인 현씨는 큰 언니 여섯식구, 둘째 언니 다섯식구도 4·3 때 희생됐다. “갑갑해서 울었다”는 현씨는 “이번 왔으니까 다음에는 오지 못할 것 같다. 몸도 아프고 걷는게 불편해 올해가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옥자(77·제주시 애월읍 어도리)씨의 통곡도 길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작은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형제 다섯명이 4·3 때 희생됐다. 8개의 잔에 술을 올리던 김씨는 “중산간 지역의 한 굴에 아버지와 함께 피신했다가 잡혀서 당시 수용소인 제주주정공장에서 한달여를 살다가 나왔고, 아버지는 서대문형무소로 간 것이 마지막이었다. 명절 때도 4·3평화공원을 찾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4월만 되면 너무 아프다. 지긋지긋한 대한민국이었다”며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와서 이렇게 유족들을 위로해주니 더 없이 감사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영자(73·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씨가 부친의 영정사진을 들고 행방불명인 표석을 찾아 오열하고 있다.
김영자(73·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씨가 부친의 영정사진을 들고 행방불명인 표석을 찾아 오열하고 있다. ⓒ한겨레

인천형무소에 갔다가 행방불명된 오빠의 표석 앞에 앉아 있던 강미옥(77·제주시 봉개동)·강순옥(82) 자매는 “오지 않으면 너무 섭섭하다” “와서 보면 오지 않아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정흥기(76·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김영자(78)씨 부부도 해마다 4월3일에는 4·3평화공원을 찾는다. 정씨는 “내 앞에서 할머니, 어머니, 동생이 총에 맞아 죽는 것을 봤다. 할아버지는 왼쪽 팔에 총상을 입었는데 나와 동생을 안고 대밭에 숨어 살아났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치료를 받지 못해 이듬해 돌아가셨다”고 회고했다.

정씨는 “이번에 대통령이 오니까 너무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4·3을 던져버리려고 해서 너무 억울했는데, 이렇게 방문하고, 4·3을 완전 해결하겠다고 말씀하니 유족으로서 큰 기쁨이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이날 오전 ’행방불명희생자 표석’으로 들어서자 잠시 술렁거리기도 했지만, 지난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의 방문 이후 12년 만에 이뤄진 대통령의 방문에 유족들은 크게 환영했다.

조부모와 백부가 토벌대에 총살돼 아버지와 함께 산으로 피신갔던 고처옥(86·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씨는 “경찰이 들이닥치자 다른 방향으로 도망가던 아버지는 붙잡혀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다가 행방불명됐다”고 말했다. 오빠 둘을 4·3 때 잃은 강계화(84)씨는 “4·3으로 집안 대가 끊겨버렸다”며 “그동안 대통령이 몇번 오겠다고 하다가 오지 않았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을 보러 대통령이 오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 문재인 대통령이 오신 것을 보고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4·3 때 아버지를 잃고 9남매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김인근(80)씨도 “대통령이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말씀해주셨다. 아무런 죄도 없이 죽어간 부모 형제 생각에 눈물이 난다”고 했다.

진영자(81)·진춘자(84)씨가 4·3 때 희생된 아버지의 위패를 찾아 제를 지낸 다음 행방불명된 오빠의 표석을 찾아 제를 지내며 오열하고 있다.
진영자(81)·진춘자(84)씨가 4·3 때 희생된 아버지의 위패를 찾아 제를 지낸 다음 행방불명된 오빠의 표석을 찾아 제를 지내며 오열하고 있다. ⓒ한겨레

4·3 당시 아버지가 희생되고, 오빠는 형무소에 갔다가 행방불명된 진춘자(84)·진영자(81) 자매는 한참을 오빠의 표석 앞에서 흐느끼다가 문 대통령이 방문한 모습을 경호원들의 틈새로 보다가 “저분이 대통령이냐? 대통령이 오니까 너무 기쁘다”고 웃었다. 부연자(88)씨도 “대통령의 사과가 얼마나 큰 일인가. 우리가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배·보상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다른 유족은 “어느 한 문장도 버릴 게 없는 명연설이었다. 특히 이념이 그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학살터에만 있지 않았다는 말을 할 때는 울컥했다”고 감격해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행방불명인 유족인 양상우(65·제주시 화북동)씨 가족을 위로하고, 양씨의 부친(양두봉)의 표석에 동백꽃을 헌화했다. 일부 유족들은 문 대통령의 추념사를 낭독하는 동안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날 4·3유족으로 구성된 4·3평화합창단은 그동안 사실상 4·3 추념식의 금지곡이었던 4·3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를 불렀다. 지난 2014년 추념식에는 4·3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성악곡 ‘아름다운 나라’를 합창곡으로 채택해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추념식이 끝나고 퇴장하는 모습도 여느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문 대통령은 오전 11시25분 추념식이 끝난 뒤 주행사장 중앙통로를 통해 빠져나가는 동안 환호와 악수를 하려는 유족과 도민 등 참가자들이 몰려들었지만 경호는 유연했다. 문 대통령은 직접 유족들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이날 문 대통령이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을 언급한 데 대해 제주지역 4·3 관련 단체들은 한결 같이 적극 환영했다. 이규배 제주4·3연구소 이사장은 “현재 시점에서 국가 지도자로서 남길 수 있는 최고의 발언이라고 평가한다. 이 나라의 대통령이 만들어낸 문제를 이 나라의 대통령이 심정적으로 해원시켜주는 명연설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이사장은 “4·3에 대한 온당한 평가를 염두에 뒀고, 4·3에 대해 올바른 인식과 평가를 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좋았다”고 말했다.

양조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4·3 유족이나 제주도민들이 바라는 현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약속을 해줘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오늘의 약속이 문재인 정부 기간에 반드시 실현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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