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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 취소, 냉정한 자세로 위기를 극복하자

ⓒhuffpost

간밤에 큰 일이 일어났다. 트럼프가 전격적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했다. 지난 며칠간 이 역사적 회담이 취소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마조마했는데 올 게 온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으로 살아가는 게 쉽지 않음을 느낀다. 세계 어느 나라 사람도 경험하지 못하는 특이한 경험이다. 물론 지금 이 순간도 살육이 자행되는 중동이나 몇 몇 분쟁지역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선진국의 평화와 번영을 아는 우리로선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제 오후 일이 있어 삼성동 무역센터 부근에 갔다. 눈을 크게 뜨고 거리를 돌아보니 새삼 대한민국이 많이 발전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푸른 하늘 아래 쭉쭉 빵빵 올라간 고층빌딩 숲은 뉴욕 맨하탄도 부럽지 않은 현대적 도시 그 자체다. 그 속에서 한가롭게 놀고 있는 어린 아이들, 바삐 걸음을 옮기는 직장인들의 얼굴에서 성장하는 대한민국의 내일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그곳 빌딩 숲에서 전쟁을 생각했다. 만일 전쟁이 일어나면? 개전 10분 내에 이 빌딩 숲과 저들은 모두 재가 될지 모른다...

ⓒKim Hong-Ji / Reuters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을 막아 이 땅에 평화와 번영을 이루어내야 한다. 이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견줄 수 없는 우리 세대의 임무다. 그 결심 아래 이번 사태도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 한다.

엄중한 현실이다. 문 대통령이 성공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1박 4일의 워싱턴 방문을 하고 돌아오자마자 북한 외무성 부상 최선희는 펜스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풍계리 핵 실험장 폐기는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예상을 뒤엎고) 몇 시간 만에 트럼프의 정상회담 취소 공개서한이 발표되었다.

지난 몇 주간 미국은 북한에 완전한 항복을 요구했고 얼마간 그것을 인내하던 북한이 본격적으로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런 갈등이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외교적 제스추어 정도로 생각했지만 결과는 그것을 뛰어 넘어 (일단)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 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북한이 이런 갈등과 불신 속에서도 풍계리 핵 실험장을 외신기자를 초청한 가운데 폭파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미국을 향해 쏜 말 폭탄과 관계없이 이번 기회에 북미관계를 완전히 개선해 정상국가로 변신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북도 이번 판이 완전히 깨진다면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트럼프 입장에서도 이번 사태를 이 정도에서 끝내기엔 너무나 아깝다. 미국 내에서의 취약한 입지(러시아 스캔들, 중간선거 등등)를 생각하면 북한 문제를 적절한 선에서 해결하는 것은 그의 정치적 장래에 중대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이 판을 깨지 않고 싶어 하는 심정은 서한에서도 분명하게 묻어나 있다. 국무장관 폼페이오를 두 번씩이나 평양에 보내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고 한 것은 트럼프로서도 큰 도박이었다. 장사꾼인 그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판이다.

트럼프는 매사를 순간적인 감으로 판단해 결정한다고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 취소는 다소 결이 다르다. 이미 그는 문 대통령 방문 시 기자들에게 정상회담 취소가능성의 운을 띄웠다. 그리고 이번 취소는 트위터가 아닌 공개서한의 형식이다. 참모들과 상당한 토론을 거친 결과라는 뜻이다. 즉, 그는 이미 며칠 전부터 일단 이번 판을 깨고 새로운 판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 공은 김정은에게 돌아왔고 문 대통령이 어떤 중재노력을 보일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제까지 북미정상 회담을 방해해온 정치세력이나 극우 보수언론은 속으로 쾌재를 부를 게 분명한 상황이다. 이것은 지방선거에도 영향을 줄지 모른다.

심호흡을 하고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자극적인 언어를 삼가고 오히려 이 기회에 북미 간 중재자의 확고한 입지를 다져야 한다. 위기는 기회다. 핫라인을 이용해 북과 진지한 대화를 나눠야 한다. 김정은이 문 대통령의 중재에 힘을 실어주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트럼프가 문 대통령의 말에 무게가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한다. 트럼프도 대화를 원하고 있고, 조만간 다른 형태의 정상회담을 바라고 있기 때문에, 문 대통령의 중재는 분명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제 북미 정상간 회담의 쟁점도 거의 드러났다. 완전한 핵 포기 후 보상은 북이 받아들일 수 없다. 이것은 트럼프도 잘 안다. 답은 짧은 시간 내에, 북은 핵 포기를 하고, 동시에 미국은 북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해제하고 북미 간 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중국 등 관계국이 지지토록 해야 한다. 북미 정상회담, 남북미중(러시아도 포함하면 좋음) 정상회담을 속도감 있게 전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은 지금보다 더 과감한 중재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 국민은 문 대통령의 노력을 전폭적으로 지지할 것이다.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는 새로운 역사는 어느 날 갑자기 운명의 신으로부터 선물로 받는 게 아니다. 90%의 몫은 인간의 비르투스에서 오는 것이고, 10%의 몫만이 운명의 신 포르투나에게서 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신은 노력하는 자를 돕는 법이다.

*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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