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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부터 '알쓸범잡'까지, '범죄' 소재 다룬 방송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과 관련이 있다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으면 같은 사건은 또 벌어질 수도 있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SBS

 

“1986년 톱 모델이자 배우였던 윤영실이 실종됐어. 역시 배우였던 언니 오수미가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는데, 35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존 신호도 사망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어.” 영화감독 변영주의 말에 배우 봉태규, 가수 윤종신 등 출연자들이 놀란다. “그럼 어떻게 된 거죠?” “살아 있는 그를 봤다는 사람도 나타났어.” “뭐라고요?”

지난 2월, 2부작으로 방영한 <당신이 혹하는 사이>(에스비에스)는 잊힌 사건을 끄집어내어 흥미진진하게 풀어내 관심을 끌었다. 당시 거물급 인사들이 연루됐다거나, 누군가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도 일었다. 프로그램을 통해 이 사건이 다시 한번 각인되면서 시청자들은 소셜미디어나 개인 블로그에 기록하고 되새김질했다. <당신이 혹하는 사이>는 한국피디연합회가 선정한 ‘이달의 피디상’을 수상하는 등 좋은 평가를 받으며 정규 편성이 확정됐다. 오는 28일부터 매주 수요일 밤 9시에 찾아온다. 윤종신, 변영주, 봉태규, 개그우먼 송은이, 가수 유빈, 프로파일러 권일용 등이 고정 출연한다.

오는 28일부터 매주 수요일 밤 9시 정규편성된 <당신이 혹하는 사이></div>. 에스비에스 제공
오는 28일부터 매주 수요일 밤 9시 정규편성된 <당신이 혹하는 사이>. 에스비에스 제공 ⓒSBS

 

과거 일어난 범죄 이야기로 우리를 ‘혹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이 요즘 인기다. <에스비에스>는 <당신이 혹하는 사이> 외에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도 시즌2까지 내보내고 있다. <에스비에스 스페셜>에서 2020년 6월14일부터 3주간 맛보기(파일럿)로 선보였다가 반응이 좋아 지난해 9월17일부터 독립 프로그램으로 편성했다. <꼬꼬무>는 현대사 속 유명한 사건을 당시 사회문제와 연계해 들려준다. 영화감독 장항준, 개그우먼 장도연, 방송인 장성규가 스스로 공부한 뒤 친구를 만나 일대일로 수다 떨듯 편하게 들려주는 형식이 참신하다. 수지 김 간첩 조작사건, 지존파 사건 등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들이 상당수 소개됐다. 편집이 빠르고, 인물을 중심에 둔 스토리텔링 형식이 몰입도를 높인다. 시즌1은 유튜브 누적 조회수 8천만건, 평균 조회수 400만건으로 2049세대에서 인기가 많다.

장도연은 지난 3월 시작한 시즌2 제작발표회장에서 “무슨 사건이라고 알고 있던 이야기를 (범인 등) 개인의 시점에서 들려주는 것을 흥미로워하는 것 같다”고 인기 비결을 짚었다. 장성규는 “친구에게 말하듯 이야기하는 형식을 좋게 평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영상 시대지만 우리는 본원적으로 이야기에 끌리는 사람들이다. 이야기꾼들을 세워두고 그들의 이야기를 빠른 속도로 조각조각 편집해 넣어 다이내믹하게 구성해낸 <꼬꼬무>는 우리에게 그 이야기의 마력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티브이엔>의 <알쓸범잡>(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은 전문가들이 범죄를 분석해서 다양한 정보를 알려준다. 범죄심리학자 박지선, 법학박사 정재민 등 전문가들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31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엄궁동 사건, 한국판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형제복지원 사연 등을 소개하면서 범죄 관련 정보도 함께 제공하는 것이다. 박지선은 범죄자의 사과문 속 숨은 심리를 파헤친다. “‘무엇보다 제 잘못이 큽니다’라는 말은 ‘내 잘못이 아닌 부분도 있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며 진심으로 사과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알쓸범잡></div>. 방송화면 갈무리
<알쓸범잡>. 방송화면 갈무리 ⓒtvN

 

최근 들어 범죄가 대중매체의 주요 소재가 되는 데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인식이 작용했다. 2016년 한 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7명은 자신 또는 가족이 아무 이유 없이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그 두려움이 갈수록 증폭되는 현실에서 범죄에 대한 정보는 평소 나를 지킬 수 있는 보호막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알쓸범잡> 제작진은 “다양한 플랫폼에서 강력범죄들을 너무 쉽게 자주 접할 수 있다. 범죄와 관련된 일을 업으로 삼는 분들을 만나 의문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어떨까 했다. 범죄라는 소재가 무겁게 느껴질 수 있지만, 지금 정말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동시에 꼭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비슷한 프로그램이 넘치다 보니 재탕삼탕의 느낌도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실화탐사대> <당신이 궁금한 이야기 와이(Y)> 같은 영상 중심 고발 프로들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알쓸범잡>에서 다룬 고문으로 살인죄를 뒤집어썼다가 재심으로 무죄가 입증된 낙동강변 살인사건은 최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자세하게 다뤄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같은 사건을 여러 프로에서 반복해서 보여줌으로써 형제복지원 같은 중요한 사건이 잊히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정덕현 평론가는 “<알쓸범잡>에서 박지선 범죄심리학자가 ‘왜 당시 아무도 (누명쓴)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는가’를 가슴 아파한 것처럼,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으면 같은 사건은 또 벌어질 수도 있다”며 “범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다는 생각이 이런 프로그램을 지켜보게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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