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배달노동, 저녁엔 맥줏집 운영, 주말엔 행사 사회.
‘N잡러’인 윤대균(36)씨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이다. N잡러란 여러 수를 뜻하는 N(엔)과 직업을 뜻하는 Job(잡), ~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영어 ‘er’을 붙여 만든 신조어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노동시간 감소, 플랫폼 노동 확대, 고용 여건 악화 등의 이유로 윤씨 같은 N잡러가 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9년 부업을 선택한 취업자와 가구주 수는 47만3천명으로,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한 취업 사이트가 직장인 1600명에게 한 설문조사에서도 약 30%가 “현재 2개 이상의 직업을 갖고 있는 N잡러”라고 답하며, “앞으로 N잡러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부산에서 결혼식·돌잔치 사회 등을 보는 조그만 이벤트 회사를 운영하던 윤씨는 청년 인구 감소로 행사가 줄자, 지난해 생활 터전을 서울로 옮기면서 성동구 뚝도시장에 수제맥줏집을 차렸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윤씨가 사회자로 마이크를 잡을 수 있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가 되었고, 텅 빈 맥줏집을 지키는 일은 일상이 됐다. 결국 윤씨는 배달 플랫폼 노동으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행사 사회 의뢰도 거의 없고, 수제맥줏집은 개점휴업 상태입니다. 배달 알바를 뛰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어떤 이들은 자기 계발과 좀 더 나은 미래 설계를 위해 N잡러가 되기도 한다지만, 윤씨는 ‘비자발적 N잡러’인 셈이다.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늘자, 정부는 실직 및 휴폐업한 사람, 특수고용직 종사자와 프리랜서 등을 대상으로 804억원을 투입해 지역일자리사업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코로나19로 인한 고용충격의 양상과 정책점 시사점’ 보고서는 2020년 108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향후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충격이 더해질 것이라는 암울한 예상을 내놨다.
“코로나 19도 마무리되고 손님으로 가게가 가득 차는 날도 오겠죠. 그때는 기자님도 저희 가게에 와서 맥주 한잔하세요.” 저녁 9시, 평소 같으면 사람들로 붐볐을 뚝도시장의 텅 빈 가게 문을 닫으며 윤씨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