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제주 여행기] MBTI 궁합 최악 ENFP와 ISTJ자매는 코로나로 비로소 하나가 되었다

먹고 (소독하고) 마시고 (소독하고) 수영하고 (손 씻어라)

언제부터 여행이 이토록 조심스러운 일이 되었던가.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낮아졌지만 여행은커녕 집 앞 외출마저 두렵다. 지난 여름 다녀온 제주도만 머릿속을 맴돈다. 또 가고 싶은데 가도 될까? 지금처럼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이던 7월, 나는 제주도를 무사히 다녀왔다. 비록 코로나 시대이지만 우리는 안전하게 여행할 권리가 있다. 모두가 안전한 제주 여행을 위해 몇 가지 팁을 나눈다.

제주시 한림읍 협재해수욕장에서 피서객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2020.8.3
제주시 한림읍 협재해수욕장에서 피서객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2020.8.3

2020년 7월의 제주는 분명 달랐다.

올해 휴가는 제주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들뜬 마음은 잠시, 걱정이 밀려들었다. 제주시가 코로나19 증상에도 약을 먹어가며 제주를 여행한 관광객에게 억대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는 기사를 쓴 사람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갑자기 열이 나거나 기침을 하면 바로 돌아와야 하나?’ 제발 아무 일도 없길 빌고 또 비는 수밖에 없었다.

걱정은 또 있었다. 과연 1살 어린 동생과 3박4일 동안 한 번도 싸우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MBTI 검사를 하면 나는 ENFP, 동생은 ISTJ였다. ‘재기발랄한 활동가(ENFP)‘인 나는 현실보다 이상을 추구하며,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즉흥적인 편이다. 반면 동생은 ‘청렴결백한 논리주의자(ISTJ)’로 객관적 사실과 이성에 집중해 일을 처리하고,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편이다. 첨언하자면 ENFP와 ISTJ는 MBTI 궁합차트에서 가히 최악으로 치는 사이다.

그래서일까? 우리 자매는 작년 가을에도 제주를 함께 여행한 적이 있었으나, 트러블이 잦았다. 나는 여유를 부리다 제주로 가는 비행기를 놓쳐 동생에게 욕이란 욕은 다 먹었으며, 여행을 마칠 때까지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코로나시대 비행기를 탄 여행자의 모습. 2020.7
코로나시대 비행기를 탄 여행자의 모습. 2020.7

# 기내 안 마스크 필수: 출발부터 쉽지 않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엔 비행기를 놓치지 않았다. 1시간 일찍 도착한 김포공항은 정말정말 한산했다. 바야흐로 코로나 시대. 비행기는 말 그대로 ‘극한 체험’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다닥다닥 붙어 앉으니 숨 쉬기가 힘들었다. 머리만 갖다 대면 잠들어버리는 나조차 답답한 나머지 뒤척이기만 했다. 평소 꾸준히 운동을 하는 내가 이 정도인데, 어린 아이나 노인들은 버티기 힘들 수 있겠다 싶었다.

제주국제공항 앞 돌하르방도 마스크를 썼다. 전국 어디든 마스크는 필수다. 2020.7
제주국제공항 앞 돌하르방도 마스크를 썼다. 전국 어디든 마스크는 필수다. 2020.7

# 돌하르방도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고작 8개월 만이었는데도 제주는 왠지 낯설었다. 가을과 여름의 차이는 아니었다. 제주공항에 우뚝 솟은 돌하르방도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 2020년 7월의 제주는 코로나가 ‘디폴트 값’인 만큼 마스크와 손 소독제가 필수였다. 일주일도 안 되는 일정인데 불안한 마음에 괜히 마스크를 한 통이나 챙겨갔다.

# 렌터카는 곧 안전한 ‘벙커’다

공항에 도착한 직후 렌터카가 있는 곳까지 공항버스로 이동했다. 서울에선 코로나19 때문에 공항버스 대부분이 운행을 멈췄지만, 다행히 제주는 모든 공항버스가 정상 운행한다. 렌터카에 짐을 싣고 앉으니 비로소 평안이 찾아왔다. 벙커에 들어온 기분이랄까. 우리만 그런 건 아니었다.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다른 렌터카들의 들썩임을 목격했다. 저마다 작은 차 안에서 흥을 분출하고 있었다. 마스크를 쓴 얼굴로 말이다.

자료사진.
자료사진.

# 화장실이 보이면 그냥 손을 씻자

꼬르륵. 오후 4시가 조금 지난 시간. 붐비는 시간을 피해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줄이 긴 맛집은 제외했다. 그래도 제주에 왔으니 제주 음식은 먹고 싶었다. 그렇게 고른 메뉴가 고기 국수와 돔베 고기. 식사 시간을 피하니 식당에는 확실히 사람이 적었다. 자리마다 손 소독제가 있었지만, 화장실로 가 비누칠을 하고 뽀득뽀득 손을 씻었다.

# 인스타그램 맛집은 포기한다

코로나는 제주에서 ‘먹고 마시는 방식’을 바꾸었다. 작년에는 인스타그램 맛집만 주구장창 찾아다녔다. 갈치 조림 맛집은 1시간이나 기다렸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쩐지 제주도를 여행한 것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올해는 인파를 피해 식사 시간 전후로 식당을 방문하거나, 음식을 포장해 숙소에서 먹었다. 포장할 수 있는 음식이 제한적이었지만, 안심하고 먹을 수 있어 좋았다.

200통 가까이 전화한 끝에 주문한 애증의 김밥. 숙소에 드러누워 유튜브를 보면서 싹쓸이했다. 2020.7
200통 가까이 전화한 끝에 주문한 애증의 김밥. 숙소에 드러누워 유튜브를 보면서 싹쓸이했다. 2020.7

# 소규모 카페가 답이다

카페를 선택하는 기준도 달라졌다. ‘인스타그램 1일 3업로드‘를 몸소 실천하는 사람으로서 카페는 무엇보다 사진이 잘 나와야 했다. 널찍하고 빛이 잘 들어오는 곳이어야 했다. 그러나 올해는 수용 인원 자체가 적은 소형 카페만 찾아다녔다. 우리가 방문한 모든 카페는 손 소독제가 구비돼 있었고, 손님들은 화장실에 가는 잠깐 동안에도 마스크를 꼭꼭 썼다. 원희룡 지사가 강조한 (방역) ‘개념’을 장착한 모습이었다. 제주에 머문 4일 동안 나는 마스크를 하지 않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자료사진.
자료사진.

# 제주 바다는 늘 사람이 많다

명색이 여름휴가이므로 물놀이는 꼭 하고 싶었다. 방역이 잘 될 것 같은 호텔 수영장을 원했지만, 호텔은 예산 문제로 1박만 예약한 터였다. 호캉스를 계획한 마지막 날까지 기다리기엔 자꾸만 몸이 근질거렸다. 차창 너머로 바다가 보일 때마다 헤엄치고 싶은 욕구가 차올랐다.

″조금 덜 유명한 해수욕장을 가면 되지 않을까?″
″일단 검색 ㄱㄱ”

그렇게 황우지해안으로 향했다. 다행히 숙소와도 멀지 않았다. 세상에나! 사람이 적은 해수욕장을 찾았는데, 그곳엔 지금까지 제주에서 본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있었다. 예쁘긴 참 예뻤다.

황우지해안을 찾은 관광객들. 2020.7
황우지해안을 찾은 관광객들. 2020.7

알고 보니 황우지해안은 몇 년 전부터 ‘자연이 만든 천연 풀장‘으로 유명세를 탄 곳이었다. 물이 맑아 ‘스노클링 성지’라고 불리기도 한다. 바로 옆에는 구명 조끼와 스노클링 마스크를 1만원 내에서 빌릴 수 있다. 가격은 비교적 저렴하지만, 철저한 위생 관리를 기대하긴 어려워보였다.

# 해변에는 손 소독제가 없을 수 있다

제주 여행지 중 손소독제가 구비되지 않은 곳은 황우지해안이 유일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스노클링을 하고 싶다면 개인 장비와 함께 손 소독제를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는 스노클링 마스크를 챙겨 갔기 때문에 구명조끼만 빌렸다. 대여 시간은 따로 없다. 사장님은 ”다 놀고 갖다만 달라”고 당부했다.

과연 ‘스노클링 맛집’다웠다. 에메랄드 빛 맑은 바닷속에서 제주 물고기들을 원없이 눈에 담았다. 다만 물이 좀 차다. 두꺼운 타월과 따뜻한 음료를 챙겨가는 것을 추천한다.

황우지해안의 밤은 낮과 또 다르다. 해질녘 황우지해안은 평화로움이 가득했다. 2020.7
황우지해안의 밤은 낮과 또 다르다. 해질녘 황우지해안은 평화로움이 가득했다. 2020.7

이번엔 사람을 피해 숲으로 갔다. 제주도 서귀포시 미악산 솔오름. 높지 않아 등산 입문자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흡~하~흡~하~ 2020.7
흡~하~흡~하~ 2020.7

비가 온 다음 날이라 숲은 촉촉했고, 나무 냄새는 더욱 진했다. 오가는 사람이 드물어 마스크를 살짝 내리고 온 힘을 줘 공기를 깊이 빨아들였다. ’아, 제주다! 자연이다!′

솔오름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제주의 모습. 2020.7
솔오름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제주의 모습. 2020.7

솔오름 입구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솔오름전망대가 따로 있다. ‘또 올라가야하나?’ 싶지만, 건물 1층 정도 높이의 계단만 오르면 제주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 호캉스는 안전하다

마지막 날 콘셉트는 ‘호캉스(호텔에서 즐기는 바캉스)’였다. 코로나로 해외 여행은 고사하고 국내 여행도 마음놓고 할 수 없으니 제주에서의 마지막은 플렉스(돈 자랑을 한다는 의미)하기로 했다. 금액을 따지지 않고 마음에 드는 호텔을 예약했다.

초록초록한 호텔 수영장 뷰. 2020.7
초록초록한 호텔 수영장 뷰. 2020.7

우리가 찾은 곳은 서귀포시에 위치한 5성급 호텔. 헬스장 이용 인원을 1시간당 6명으로 제한하는 등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모습이었다. 넓어서인지 다른 투숙객을 마주할 일도 많지 않았다. 기대했던 수영장도 꽉 막힌 실내가 아니라 탁 트인 인피니트 풀이었기 때문에 걱정을 덜었다.

ENFP 언니와 ISTJ 동생의 3박4일 제주도 여행은 다툼 없이 끝났다. 정말이지 단 한 번도 다투지 않았다. ‘코로나19’라는 공공의 적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건지 모른다. 다행히 우리 자매는 여행 중 발열과 기침 같은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없었다. 틈틈이 손을 씻었고, 외출을 할 때는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했다. 혹시나 제주를 여행하는 동안 코로나19가 의심된다면? 즉시 여행을 접고, 제주시보건소질병관리본부로 문의해야 한다. 나 하나 좋자고 공동체를 위협할 순 없으니 말이다.

도혜민 에디터: hyemin.do@huff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