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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8일 08시 54분 KST

쿠팡의 컨베이어 벨트 하청노동자는 주 81시간을 일하다 세상을 떠났다 (사진)

9월 15일 그는 새벽 5시40분에 출근했고, 퇴근은 다음 날 새벽 2시에 했다.

유족 제공
ㄱ씨가 자신의 휴대전화 달력 애플리케이션에 기록한 출퇴근 날짜. 

“새벽에 제가 차려준 뭇국을 먹고 나선 게 남편의 마지막 모습이었어요.”

지난 12일 남편 영정이 놓인 빈소에서 ㄱ(50)씨의 아내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특수학교에 다니는 12살 아들은 향에 불을 붙이다 손을 데었다. ㄱ씨의 장인은 “사위 가족 셋이 월세 35만원짜리 단칸방에서 어렵게 살았다. 긴 시간 일 안 하면 잘릴까 힘들어도 일한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코로나19로 폭증한 택배 물량이 또 한명의 가장을 쓰러뜨렸다. ㄱ씨는 컨베이어 벨트 정비일을 하는 하청 노동자였다.

장시간 노동에도 ㄱ씨는 좀처럼 가족에게 티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텔레비전을 보다 꾸벅꾸벅 조는 게 그가 보인 ‘징후’의 전부였다. ㄱ씨 처남은 “일용직을 하다 고물상이 망해 다시 일용직 일을 하는 등 워낙 힘들게 살았다. 누나나 조카가 장애가 있고 집도 어려우니 시키는 대로 장시간 일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ㄱ씨는 지난 10일 경기도 이천 쿠팡 마장물류센터에서 컨베이어 벨트 장비를 옮기다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유족들은 ‘과로사’를 의심한다. 코로나19로 택배 물량이 폭증하는 바람에 컨베이어 벨트 정비일 역시 노동 강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유족들은 ㄱ씨가 평소 지병이 없었다고 말한다. ㄱ씨의 형은 “아직 정식 부검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경찰로부터) 심근경색일 가능성이 크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심근경색은 과로사의 주요 원인 중에 하나로 꼽힌다. 유족은 산재 신청을 할 계획이다. 

유족 제공
ㄱ씨가 들어가 있던 단체 카카오톡방. 
유족 제공
ㄱ씨가 휴대전화 달력 애플리케이션에 기록한 출퇴근 시간. 9월15일 ㄱ씨는 새벽 5시40분 출근해 다음날 새벽 2시 퇴근했다고 기록해놓았다. 

최대 주81시간 근무 

유족들은 주야간 맞교대를 하던 ㄱ씨가 최대 주 81시간을 일했다고 주장했다. 쿠팡과 컨베이어 벨트 관련 위탁운영 계약을 맺은 화동하이테크에서 3년 전부터 일을 한 ㄱ씨는 매일 출퇴근 시간을 휴대전화 달력 애플리케이션에 남겨놓았다. 본격적으로 쿠팡 마장센터에서 일한 9월부터 11월10일 숨지기 전까지 ㄱ씨는 보통 새벽 5시30분께 출근해 저녁 8시가 넘어 퇴근했다. 10월 마지막 주에는 6일 동안 81시간20분, 11월 첫째 주에는 6일 동안 81시간을 일했다고 기록돼 있다. ㄱ씨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근무교대를 하더라도 바로 퇴근하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ㄱ씨의 동료 ㄴ씨는 “요새 택배 물량이 많아 컨베이어 벨트에 부하가 걸려 고장이 잘 났다. 라인이 잠깐 멈춰도 쿠팡 쪽 손실이 어마어마하게 크다고 들었다. 급하게 고쳐야 했다”고 설명했다.

ㄱ씨와 동료들이 가입한 모바일 메신저 단체 대화방을 보면 쿠팡 직원으로 추정되는 이가 하루에도 수차례 ‘레일 벨트가 끊어졌다’고 공지하고 ㄱ씨와 동료들은 ‘조치 완료했다’고 답하곤 했다. 해당 대화방은 16일 오후 ‘협력사 분들이 들어와 있어 카톡방은 금일까지만 운영하고 폐쇄한다(본사 지침)’ 등의 공지와 함께 폐쇄됐다. 남준규 노무사(노동건강연대)는 ”카톡방을 보면, 업무상 지시 및 운영에 쿠팡 관계자들이 개입을 한 것으로 보여 원청-하청 관계라고 볼 수 있다고 판단된다. 이 경우 불법파견으로 문제가 될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화동하이테크 쪽은 이날 “현재 사망 사실 외 특이사항이 없어 확인해드릴 것이 없다”는 입장만 밝혔다. 쿠팡 관계자는 “(카톡방에 있던) 직원들은 물류센터 인력을 관리하는 자회사 쿠팡풀필먼트 소속 직원이다. 다만 쿠팡은 단톡방을 통해 업무 지시를 한 적이 없으며 일부 인원이 자동화 설비의 발주자로서 공사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현장에서 필요한 사항을 조정하기 위해 단톡방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