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20년 03월 31일 17시 24분 KST

코로나19 확산된 스페인에서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가해자와 자가격리' 고통을 호소했다

젠더 폭력 피해자들에게 코로나 사태는 이중고가 되고 있다

Samuel de Roman via Getty Images
자료사진: 스페인 부르고스의 한 시민이 격리 생활 중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통화는 못 해요, 옆에 있거든요”

데보라는 한참 후에야 답을 보냈다. 대신 ”통화는 못 해요, 옆에 있거든요”라는 메시지가 왔다. 본명을 밝히기 꺼린 그는 기자와 첫 메시지를 주고 받은 당시 매우 겁 먹은 상태였다. 데보라는 가정폭력 학대 피해자였고, 바로 그 폭력의 가해자와 같은 집에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자가격리 중이었다. 전화나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게 보였다가는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데보라는 자신이 안전한 상황인 게 확실할 때, 즉 가해자의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을 때에만 메시지를 보냈다.

가해자와 한 공간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수많은 피해자들이 데보라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데보라가 가해자를 떠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경제적으로 배우자에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로 하여금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 하게 만들어 자기로부터 도망칠 수 없게 만드는 것도 가정폭력 가해자들의 행동 중 하나다. 어린 딸이 있고, 자신도 고혈압과 척추 관련 지병으로 계속 약을 먹어야 하는 데보라는 살아남기 위해 집을 뛰쳐나오는 것을 포기했다.

공무원인 배우자 역시 데보라가 그런 이유로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나에게 (약과 돈으로) 벌을 준다”고 데보라는 말했다. 한번은 말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먹을 것을 주지 않아 급식소에 가야했던 적도 있었다. 데보라와 어린 딸의 의식주를 틀어쥔 배우자는 언제든 원할 때마다 학대를 할 수 있다. 데보라는 ”매우 모욕적”이라며 ”화가 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다른 여자들이 많이 그러는 것처럼 조용히 참았다”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코로나19로 외출 제한이 시작됐다. 경제권을 갖고 있는 배우자는 자신이 먹을 것만 사고 집에서는 음식을 숨겨뒀다. 데보라는 마침내 참을 수 없어졌고, 배우자의 눈을 피해 친구들에게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친구 중 한 명이 경찰에 신고했다. 

데보라는 지금과 같은 ‘코로나’ 상황이 끝나면 변호사를 찾아 상담을 받고, 직장을 구할 계획이다.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있고, 필요한 약을 살 수 있는” 삶을 위해서다.

Sergio Perez / Reuters
자료사진31일 마드리드 시내 도로가 한산하다. 전광판에는 "정당하지 않은(불필요한) 이동 금지"라는 문장이 띄워져 있다.

“우리집이 감옥이 되었어요”

19세 클라우디아는 48세 어머니 로자, 언니,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산다. 클라우디아는 기자에게 ”이 모든 게 끝나면 신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클라우디아와 로자 둘 다 아버지의 가정폭력 피해자다. 격리생활은 악몽과도 같다. ”집에서 못 나가게 된 다음부터 언성을 높이고, 협박을 하고, (때리려고) 손을 드는 일이 많아졌어요.”

″우리집은 항상 감옥 같아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에는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최소한 밖으로 뛰쳐나가 한숨 돌릴 수라도 있었다. 이제 그들은 모두 한 집에 있고, 누구도 달리 갈 곳이 없다. 지금과 같이 다들 자기 집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가장 큰 문제는 집에서 이런 폭력적인 상황이 벌어져도 다른 사람들이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폭력의 흔적이 밖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나보일 일이 없기 때문이다.

Sergio Perez / Reuters
자료사진: 30일 마드리드의 한 주거 건물에서 자가격리 생활을 하고 있는 주민들이 지나가는 의료 관계자들을 응원하고 있다. 베란다에 내건 현수막에는 "여러분의 헌신이 우리에게 믿음을 갖게 합니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또다른 피해자 루시아의 생활은 공포, 긴장, 순종의 세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루시아는 격리 중인 지금의 생활을 ”이중으로 벌 받는 중”이라고 표현했다. 그 역시 데보라와 마찬가지로 기자와 메시지로 대화를 나눴다.

루시아는 가정폭력 가해자인 배우자가 ‘나를 학대하기 위해 7살 아들을 이용한다’고 말한다. 배우자는 루시아를 방에서 못 나오게 하면서 아들을 하루에 5초만 볼 수 있는 규칙을 만들었다. 아들은 이 규칙이 왜 생겼는지는 이해하지 못 하지만, 어느새 엄마인 루시아를 하루에 5초만 보는 것이 보통이라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데보라, 클라우디아, 루시아의 사연은 모두 스페인의 가정폭력 상담 기관인 아나벨라재단에 제보된 것들이다. 재단 측은 코로나 상황 이후 피해 상담 전화가 늘었다고 말한다.

*가정폭력 피해 관련 상담을 받고 싶다면 아래 기관들에 연락할 수 있다.

- 한국 여성의 전화 (성폭력: 02-2263-6465, 가정폭력: 02-2263-6464, 이메일 상담: counsel@hotline.or.kr)

- 한국성폭력상담소 (전화: 02-338-5801, 평일 10시~17시)

-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전화 상담 혹은 전화로 직접 상담 예약: 02-335-1858, 평일 10시~17시)

상담 시간 외에 긴급 상담이 필요한 경우 국번 없이 1366(여성긴급전화), 117(청소년 학교 폭력 및 성폭력)로 전화할 수 있다. 장애인과 아동의 경우 지역에 따라 장애인성폭력상담소, 아동성폭력상담소인 해바라기센터가 운영돼 더 전문적인 상담을 받을 수도 있다. 처음 상담 의뢰한 곳에서 심리 지원, 법적 지원, 의료 지원, 쉼터 연계 등 모든 절차를 돕는다.

*기사 속 이름은 모두 피해자의 안전을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허프포스트 스페인판 기사를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