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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28일 15시 44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6월 28일 15시 59분 KST

양심적 병역거부자, 그들이 80년 간 겪은 일들

뉴스1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 여부 선고를 하기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 조항에 대해 7년 만에 판결을 내렸다. 헌재는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법조항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면서도 대체복무제가 규정되지 않은 현행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론을 내렸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가 공론화된 건 2000년대부터였다. 그러나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처벌을 받게 된 역사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번 헌재 판결을 계기로 양심적 병역자들이 겪어온 80년 간의 일을 되짚어봤다. 

일제강점기에 여호와의 증인들이 일제의 전쟁 수행 협력을 거부해 옥고를 치른 등대사(燈臺社)사건은 독립운동사 서적에 ‘항일운동’으로 기록돼 있다. 이 사건을 기록한 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의 ‘사상휘보’ 자료.

병역 거부자는 80여년 전부터 처벌을 받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에 병역 거부자에게 첫 처벌이 내려진 이후 해마다 500명이 처벌을 받아왔다. 1939년 여호와의 증인 신도 38명이 병역과 신사참배를 거부해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광적인 평화론자‘라는 이유로 투옥된 뒤 이들 중 5명이 옥사했으며, 33명은 해방이 되어서야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른바 ‘등대사 사건‘이다. 이 사건은 정부가 편찬한 독립운동사 서적에 ‘항일운동’으로 기록됐다.

1976년 3월19일 39사단 헌병대 입창 중 구타로 인한 비장파열로 사망한 이춘길(위 가운데)씨. 군 당국의 조치는 그의 장례에 부대장 명의 부의로 1만원을 보낸 것이 전부였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처벌은 정부 수립 뒤 한국전쟁을 거치며 징병제가 도입되면서 급증했다. 특히 1972년 유신을 선포한 박정희 대통령이 ‘입영률 100%’를 지시하자 병무청 직원들은 병역거부자를 영장 없이 체포해 강제 입영시켰다. 병역기피자에게는 최대 징역 10년을 선고하도록 한 ‘병역법 위반 등의 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도 만들어졌다. 당시 특별조치법에 따라 7년10개월을 복역한 사례도 확인된다. 징역을 살고 나오는 사람들이 채 교도소 문을 나서기 전에 병무청 직원들은 이들을 입영통지서도 없이 다시 잡아가 총을 주고 다시 거부하면 재판에 회부하기도 했다. 집총을 거부하다 구타를 당해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2007년 2월 서울 종로 탑골공원 앞에서 열린 민가협 목요집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오태양(왼쪽)씨가 ‘부모님께 올리는 편지'를 읽는 동안 오씨의 어머니가 흐느끼고 있다. 

2000년대에 이르러서야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가 부각됐다. 2001년 집총을 거부해 감옥에 갇힌 여호와의증인 신도들을 인터뷰한 기사가 보도된 후 불교 신자이자 평화운동가인 오태양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천주교, 기독교, 불교 등 여러 종교를 가진 병역거부자들이 등장했다. 종교만이 아니라 평화주의, 생태주의, 성소수자 정체성 등의 이유로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청년들도 나타났다.

언론에 이어 법원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2002년 1월 29일, 서울남부지법 박시환 판사는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은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한 병역법 제88조 1항은 헌법 위반”이라며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2004년 5월 21일에는 사법 역사상 최초로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이 선고됐다. 서울남부지법 이정렬 판사는 “국가의 형벌권과 개인 양심의 자유권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형벌권을 한발 양보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이후 2018년까지 법원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이 잇따랐다.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인 지난해 5월1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제앰네스티가 연 기자회견에서 병역거부로 처벌을 받았거나 재판중인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 중단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촉구하는 거리행위극을 하고 있다. 

그러나 두 최고법원 헌재와 대법원의 입장은 완고했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8월 “국가안전보장상의 필요가 있다”며 재판관 7 대 2 의견으로 병역법 조항의 ‘합헌’을 선언했다. 그러면서도 대체복무 등 입법을 통한 해결 필요성을 합헌 결정에 담았다. 7년 뒤인 2011년 8월에도 재판관 7 대 2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2004년 7월 대법관 11 대 1 의견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자유가 국방의 의무보다 우월한 가치라고 할 수 없다”며 유죄를 확정했다. 

그 뒤로도 법원의 하급심 판사들은 6건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했다. 2004년 3건, 2007년 1건에 그쳤던 법원의 무죄판결도 2015년 이후 85건이나 쏟아졌다. 4건의 2심 무죄판결은 대법원의 판단을 앞두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7월을 마지막으로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의 유죄 확정판결을 선고하지 않고 있다. 

지난 수년간 침묵을 이어나가던 양대 사법 기관의 태도는 이달 들어 급격하게 바뀌었다. 지난 18일 대법원이 대법관 전원과 사건 당사자들이 참석하는 공개변론을 열겠다고 밝히자, 일주일 뒤 헌재는 7년을 끌어온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위헌 여부를 28일 선고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두 최고법원의 태도 변화를 두고 법조계 내부에서는 “대통령 탄핵과 촛불집회 이후 정권교체와 최고법관 구성 변화, 개선된 남북관계가 반영된 결과”라는 평가가 나왔다. “국민 기본권과 인권 보장을 확대하려는 하급심의 변화가 두 최고법원에 긍정적인 신호를 준 것 같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리고 2018년 6월 28일.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1950년 이후 지금까지 70년 가까이 1만9000여명이 병역법 위반 등으로 처벌된 끝의 결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