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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4월 24일 16시 22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4월 24일 16시 22분 KST

'팝업 시티' 시대의 도래

huffpost

지난 1월14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한 주택 2층에 올라가 보니 거실에 신발이 거의 50켤레 쯤 놓여 있었다. 거실 왼쪽의 큰 방에 고개를 들여다 보니 생경한 풍경이 펼쳐졌다. 커다란 ‘방‘에 젊은이들이 빽빽히 모여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밴드 ‘위아영’의 공연장이었다. 집이 한 순간에 공연장으로 변한 것이다.

세계는 지금 ‘팝업’(갑자기 툭 튀어나옴)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일상 속 스마트폰이 디지털과 물리적 실재 사이의 벽을 조금씩 허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예전에는 실제 세상에서 변화가 이뤄진 뒤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수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라는 수단으로 디지털로 완전히 연결되어 있는 세상에서는 단지 사진과 한 문장 만으로 충분하다. 팝업 콘서트 역시 인터넷이 없다면 생각하기 어렵다. SNS를 통해 행사 소식을 알리고, 다양한 티켓 플랫폼을 이용해 티켓을 판매하면 순식간에 매진된다.

남성 듀오 위아영은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한 대형주택 2층의 방에서 ‘하우스 콘서트: 집 가고 싶다’를 열었다.

유튜버 poulzzak 영상 캡처

저성장 시대가 접어들면서 소득이 줄어들자 사람들은 자신의 남는 자원을 다시 한 번 살펴보기 시작했다. 집의 남는 방 또는 내가 가지고 있는 남는 공간을 플랫폼에 올려 대여하는 식으로 순식간에 용도를 전환하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에어비앤비가 대표적인 사례다. 도시가 변해가는 새로운 트렌드를 담아낸 책 <도시의 재구성>을 보면, 점심시간에는 식당으로 쓰던 공간이 오후부터는 코워킹 용도로 바뀌고, 가정집 역시 낮 시간에 코워킹 장소로 쓰는 사례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이 같은 유연함이 저성장 시대에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된 대중은 서서히 ‘고정된 용도‘보다는 ‘유연한 용도’로 쓸 수 있는 자원을 찾으려 한다. 예컨대 집도 그냥 집이 아니라 한 쪽의 남는 공간을 숙박공유로 편리하게 쓸 수 있게끔 구성된 집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난다거나, 다가구주택 소유자가 임차인이 들어오지 않는 공실 기간 동안 숙박공유를 활용해 공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없는지 타진하는 등 창의적인 자원 활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주차장 빌딩을 지으면서도 주차용으로만 쓰는 게 아니라 파티 무대나 결혼식장, 대규모 요가 실습장, 레스토랑 등으로도 활용하는 복합 빌딩(1111링컨로드)이 등장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 따른 것이다.

동네에 상권이 유입되자 원래는 주택, 한 용도로만 쓰던 ‘꼬마 빌딩‘이 저층에는 상가를 두고 위쪽에는 주거를 넣어 용도를 뒤섞는다. 이것은 최근 핫플레이스가 등장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익히 보고 있는 광경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 같은 수준의 혼합을 넘어, 순간적으로 없던 용도가 ‘팝업’ 하고 등장해 용도의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조금 더 덧붙인다면, 이른바 복합용도(mixed use) 방식이 과거에는 한 건물에 명백히 구분된 용도의 공간 여럿이 함께 놓여 있는 것을 의미했다면, 이제는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 용도의 한 공간에서 무수히 많은 용도가 순간적으로 등장했다가 사라질 수도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야말로 ‘팝업 시티’의 시대다.

문제는 이 같은 트렌드를 기존의 도시계획 수법이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기존의 도시계획은 ‘부‘가 쌓이던 시대에 확립되었던 태생 탓에 서로를 나누고, 용도를 구분하여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데 명백히 방점을 찍고 있었다. 주거와 상업 등을 철저히 구분하려는 시도가 바로 이런 것이지만, 시대는 어느샌가 훌쩍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 이미 핫플레이스 같은 곳에서는 주거와 상업이 뒤섞여 건물 1층의 식당에서 브런치를 즐기고,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며, 주택에서 음악 공연을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저성장과 스마트폰이 만들어 놓은 세상은 뒤섞이고, 혼합되며, 교류가 일어나는 ‘팝업 시티’의 생태계를 만들고 있으나,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인구는 점점 줄어들지만, 더욱 모여 살며 인프라 투자를 아끼는 ‘컴팩트 시티‘의 경향이 강해질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도시화 현상, 젊은 사람들의 도시 쏠림 현상 등이 바로 이 경향의 반증이다. 또한 컴팩트 시티 안에서도 자원을 최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용도가 팝업처럼 툭 등장하는 ‘팝업 시티’의 시대는 점점 더 빨리 다가올 것이다. 우리 도시계획은 재정비 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