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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의 한 유치원은 성평등을 위해 “여아는 씩씩하게, 남아는 상냥하게" 교육한다

“여자아이들만 있으면, 여자다운 건 더 이상 없어요"

  • 이소윤
  • 입력 2021.07.11 08:55
  • 수정 2021.07.14 11:30
테이블에 올라가 뛸 준비를 마친 여자 어린이
테이블에 올라가 뛸 준비를 마친 여자 어린이 ⓒ햐틀리 모델 사이트

“나는 강해요!” 아이슬란드의 한 유치원생 엘리아는 반 친구들 앞에 있는 테이블 위로 올라가 외쳤다. 공중으로 주먹을 날리며 아래에 있는 파란 매트 위로 뛰어올랐다. 교실 안 세 살 베기 여자아이들의 눈빛에는 자부심과 기쁨이 가득했다. 

 

여아들이 테이블에서 뛰노는 동안 옆 반 남아들은 서로의 손에 로션을 발라주고 머리를 빗겨줬다. 친구와 눈을 맞추며 “너의 눈은 참 아름다워”라고 말한 후 서로를 끌어안았다. 인형 놀이도 했다. 한 남자 어린이는 성별이 구분되지 않은 성중립 인형을 탁자에 놓으면서 “아기야 엄마가 곧 오실거야”라고 말했다.

남아반 서로 머리를 빗겨주는 활동
남아반 서로 머리를 빗겨주는 활동 ⓒYOUTUBE
남아반에서 이뤄지는 강화교육 / 한 아이가 친구와 눈을 맞추며 '너는 눈이 참 아름다워'라고 칭찬하고 있다.
남아반에서 이뤄지는 강화교육 / 한 아이가 친구와 눈을 맞추며 "너는 눈이 참 아름다워"라고 칭찬하고 있다. ⓒYOUTUBE/The Christian Science Monitor

한국 유치원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이지만 아이슬란드 ‘햐틀리’ 유치원에서는 매일 이뤄지는 ‘강화 교육’ 수업이다. 햐틀리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이 성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도록 여자반, 남자반을 분리해 수업을 진행한다. ‘강화 교육’에서 남자아이들은 공감과 배려심 강화를 목표로 한다. 여자아이들은 용기와 자신감 강화에 중점을 둔다. 사회의 성별 고정관념에 따라 여아, 남아가 성장 과정에서 소홀하기 쉬운 덕목들을 이 수업을 통해 강화해준다는 취지다. 남녀 아이들은 수업 시간 대부분을 떨어져서 보내고, ‘상호 존중’을 배우는 수업에서 하루 한 번 만난다.

1989년 문을 연 ‘햐틀리’ 유치원은 마르그레트 파울라 올랍스도티르(Margrét Pála Ólafsdóttir)가 성 고정관념에 대항하기 위해 설립했다. 유치원은 현재 독립된 학술 모델로 자리 잡았다. 아이슬란드 전역에서 성별 분리 수업인 ‘햐틀리 모델’을 적용하는 유치원은 14곳, 초등학교는 3곳이다. 총학생 수는 2000명으로 인구수 약 35만명인 아이슬란드에서 미취학 아동 8%가량이 ‘햐틀리 모델’ 유치원에 다닌다. 

햐틀리 유치원 설립자 마르그레트 파울라 올랍스도티르
햐틀리 유치원 설립자 마르그레트 파울라 올랍스도티르 ⓒ햐틀리 모델 사이트
수업 중인 햐틀리 유치원. 모두 같은 유니폼을 입은게 특징이다.
수업 중인 햐틀리 유치원. 모두 같은 유니폼을 입은게 특징이다. ⓒ햐틀리 모델 사이트

 

‘남자반’ ‘여자반’ 성별 분리만으로 달라질까?

NBC 뉴스에 따르면 햐틀리 유치원에는 ‘여자답다’ ‘남자답다’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상냥한 행동을 하는 남학생을 보고 소녀 같다고 생각하거나 씩씩한 여학생을 보고 사내 같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성역할을 나눠, 비교하는 기준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설립자 올랍스도티르는 “삶의 첫 번째 변수는 성별”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종종 다른 성별의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할 일로 인식한다는 의미다. 그는 이 개념을 “역미러링”(reverse mirroring)이라고 표현했다. 

여자아이들만 있으면, 여자다운 건 더 이상 없어요”

아이들은 모두 같은 유니폼을 입는다. 색상은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아이가 입고싶은 색을 고른다. 유치원 장난감도 ‘여자 꺼’ ‘남자 꺼’ 성별 구분이 없다. 자동차, 로봇 등 기성 제품이 아닌 나무 블록, 물과 모래, 담요와 베개 등을 놀이 재료로 사용한다. 인형도 성별이 나뉘지 않은 성 중립 형태다. 

햐틀리 유치원/직접 공구를 사용하는 활동도 한다.
햐틀리 유치원/직접 공구를 사용하는 활동도 한다. ⓒYOUTUBE
햐틀리 유치원/신체 활동
햐틀리 유치원/신체 활동 ⓒYoutube
강화수업에서 친구를 안아주는 아이들
강화수업에서 친구를 안아주는 아이들 ⓒYoutube/The Christian Science Monitor
햐틀리 유치원/물감 등을 사용해 수업 중인 학생들
햐틀리 유치원/물감 등을 사용해 수업 중인 학생들 ⓒYoutube/The Christian Science Monitor

 

아이 엄마가 된 졸업생은 자신의 아이도 ‘햐틀리’에 보낸다

초대 햐틀리 유치원 졸업생인 바라 라그힐다르도티르는 N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탁자에서 뛰어내리고 맨발로 눈 위를 달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의 딸 사라도 햐틀리 학교에 다닌다.

라그힐다르도티르는 엄마로서 딸이 받은 영향을 확인하기가 더 쉬웠다고 했다. 어느 날 딸에게 잘 잠들 수 있게 오디오 테이프를 틀어주겠다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딸 사라가 “엄마, 저는 용기 있고 강해서 아무것도 들을 필요가 없어요”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올랍스도티르가 2014~2016년 레이캬비크대에 의뢰해 실시한 연구 결과, 햐틀리 학생들이 아이슬란드 공립학교 학생보다 성평등 의식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들은 높은 비율로 가정, 육아, 가사노동 등에 부모가 동등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화수업
강화수업 ⓒYoutube/The Christian Science Monitor

세계경제포럼(WEF)이 발간한 ‘글로벌 성 격차 보고서’(2021)에 따르면 아이슬란드는 성평등 수준을 보여주는 ‘성 격차 지수’에서 12년간 1위를 차지했다. 정치·경제·교육·건강 분야에서 성평등 최상위인 아이슬란드라서 햐틀리 모델이 가능한 건 아닐까?

사실 아이슬란드 내에서도 햐틀리 모델은 진보적인 방식이다. 남학생과 여학생을 강제적으로 분리한다는 비판과 남자아이에게 ‘여성적인 활동을 강요한다’는 부정적인 인식도 존재한다. NBC 뉴스는 설립자 올랍스도티르가 아이들 성을 바꾸려고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고 전했다. (현재 햐틀리 유치원 및 초등학교는 아이가 지정 성별이 다르거나 ‘논바이러리’인 경우 아이 스스로 반을 결정할 수 있다.) 유치원에서 하나의 학술 모델이 되기까지 교사와 보호자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성 격차 지수 상위 10개국(위). 한국의 성 격차 지수는 0.687(1에 갈수록 평등하다)로 156개국 중 102위로 나타났다.
성 격차 지수 상위 10개국(위). 한국의 성 격차 지수는 0.687(1에 갈수록 평등하다)로 156개국 중 102위로 나타났다. ⓒ세계경제포럼(WEF) 성 격차 보고서(2021)

한국의 성평등 수준은 156개국 중 102위로 여전히 하위권이다. 성평등에 더 가까워지기 위해 우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햐틀리 유치원의 성별 분리 수업은 우리에게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이소윤 에디터 : soyoon.lee@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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