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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가 당근을 좋아한다고?" 8년차 집사가 전하는 반려동물 토끼에 대한 오해와 매력 포인트 (인터뷰)

반려 다만세 | 토끼 집사에서 작가, 동물 운동가로 변신한 이순지씨.

  • 이인혜
  • 입력 2020.08.06 11:36
  • 수정 2020.08.06 13:46

세상의 유기된 동물 전부를 구할 수 없지만, 동물 한 마리를 구조하면 그 생명체는 물론 그 주변의 세상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유기동물과의 공존을 통해 변화된 삶을 사는 반려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토끼 집사 이순지씨와 햇살이, 랄라 
토끼 집사 이순지씨와 햇살이, 랄라  ⓒ이순지씨 제공
 
 

“애니메이션 속 토끼는 항상 당근을 들고 있지만 현실은 달라요. 토끼의 주식은 당근이 아닌 ‘건초’예요. 건초가 밥이라면 당근은 가끔 먹는 반찬이죠. 그리고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이 다른 것처럼 토끼도 그렇고요.”

 

8년차 토끼 집사 이순지(33)씨의 말이다. 그 역시 토끼 ‘랄라’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당연히 토끼는 당근만 먹고 살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 밖의 경험을 하게 된 건 2013년 랄라를 만나면서부터다. “당근과 알팔파(건초의 한 종류)를 내밀었는데 당근은 거들떠보지도 안 보더라고요. 랄라가 당근을 좋아하지 않는 건 저에게도 충격이었어요.”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게 많은데 왜 당근을 먹어야 해?!” 랄라는 당근보다는 알팔파를, 알팔파보다는 달콤한 딸기와 사과를 좋아한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게 많은데 왜 당근을 먹어야 해?!” 랄라는 당근보다는 알팔파를, 알팔파보다는 달콤한 딸기와 사과를 좋아한다.  ⓒ이순지씨 제공

 

순지씨는 랄라 이전에 다른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다. 그랬던 순지씨가 랄라를 데려오게 된 것은 ‘외로움’ 때문이었다. “친한 언니가 아기 토끼를 키우면서 얼마나 행복해졌는지 이야기하는데 귀가 솔깃하더라고요.” 

충동적으로 랄라를 데려왔지만, 여전히 토끼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준비 없이 달랑 토끼만 데려온 저는 최악의 보호자였어요. 랄라를 데려오고 나서야 제가 토끼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정도라니깐요. 약을 먹고 금방 좋아지긴 했지만요.”  

순지씨는 그때부터 랄라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자신을 믿고 따라온 한 생명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랄라가 좋아하는 음식, 랄라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부하고 또 공부했어요. 토끼가 알팔파나 티모시(주로 성장한 토끼가 먹는 건초)를 먹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저 역시 마찬가지였답니다. 국내 사이트는 물론 해외 토끼 관련 사이트와 서적도 많이 찾아봤어요.” 

랄라를 데려온 직후 모습. 빨래 바구니를 세워두고 수건을 깔아둔 뒤 랄라를 내려놨다. 이름은 부를 때마다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랄라'로 붙였다. 
랄라를 데려온 직후 모습. 빨래 바구니를 세워두고 수건을 깔아둔 뒤 랄라를 내려놨다. 이름은 부를 때마다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랄라'로 붙였다.  ⓒ이순지씨 제공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6년차 토끼집사가 된 2018년 어느날, 당시 기자로 일하던 순지씨는 새로운 도전을 했다. 바로 랄라와의 이야기를 기사로 쓰는 것이었다. 아직은 낯선 반려동물인 ‘토끼’에 대한 오해와 매력을 허심탄회하게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연재 기사 ‘토끼랑 산다’는 많은 토끼집사들의 호응을 얻었다. 총 23편의 기사가 나왔다. 기사를 쓰면서 랄라의 동생 ‘햇살이’도 생겼다. 바로 토끼들이 버려지는 ‘서초구 몽마르뜨공원’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다. “누군가 버린 토끼 한 쌍 때문에 고통 받는 토끼가 수십 마리라는 얘기였죠. 우리에게는 ‘산토끼’라는 말이 익숙하잖아요. 그래서 그냥 밖에 풀어두면 잘 살 거라고 생각하고 공원 같은 곳에 풀어주기도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토끼는 영역 동물인데다 특히 집에서만 자란 아기 토끼들에게 밖은 너무 무서운 곳이랍니다. 죽으라고 등을 떠미는 것과 같아요.” 

몽마르트공원의 토끼들
몽마르트공원의 토끼들 ⓒ이순지씨 제공

 

기사를 쓰면서 순지씨는 토끼집사로서의 책임감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찾다가 그곳에 살고 있던 햇살이를 데려와 돌보기로 마음먹었다. 봉사도 시작했다. 공원의 토끼들이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깨끗한 물과 신선한 건초 등을 챙기며 그들을 돌봐주는 일이다. “햇살이를 몽마르뜨 공원에서 데려오기 전까지는 봉사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막상 저질러보니 마음과 작은 용기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하지만 여전히 도움의 손길은 부족하다. 최근엔 폭우로 인해 배봉산 토끼 사육장의 상황도 심각해졌다고. “장마가 계속되면서 배봉산 아기 토끼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작디작은 생명들을 위해 다들 용기를 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랄라에게 생긴 동생 '햇살이'.  “합사는 쉽지 않아요. 처음에는 제대로 집을 마련하지 못해서 랄라 집을 햇살이에게 잠시 내어준 적도 있어요. 랄라는 그게 화가 났는지, 자기 집에 햇살이가 없을 때 들어가서 오줌을 싸기도 했답니다. 햇살이는 그래도 랄라 언니를 좋아했어요. 옆에 가서 곧잘 누워있었답니다.'
랄라에게 생긴 동생 '햇살이'.  “합사는 쉽지 않아요. 처음에는 제대로 집을 마련하지 못해서 랄라 집을 햇살이에게 잠시 내어준 적도 있어요. 랄라는 그게 화가 났는지, 자기 집에 햇살이가 없을 때 들어가서 오줌을 싸기도 했답니다. 햇살이는 그래도 랄라 언니를 좋아했어요. 옆에 가서 곧잘 누워있었답니다." ⓒ이순지씨 제공

 

기사를 쓰면서 에세이집 ‘토끼랑 산다’도 출간했다. 아직은 국내에서 반려동물로는 낯선 토끼의 매력은 물론, 국내 ‘토끼인’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책이 나온 건 지난 6월인데, 출간 제안을 받은 지 꼬박 3년 만이었다.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랄라가 아팠고, 2019년에는 토끼별로 먼 여행을 떠났다. 여전히 랄라 이야기를 할 때면 눈물이 난다는 순지씨는 “랄라를 키우면서 세상을 배웠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알았다”고 말한다. 

순지씨는 인세를 다른 토끼들을 위해 ‘토끼보호연대’에 기부할 계획이다. 랄라가 없었다면 나오지 못했을 책이기 때문이다. “토끼별로 떠난 랄라도 자신의 책으로 다른 토끼들이 행복한 걸 보면 분명히 엄마인 저를 자랑스러워할 거라고 생각해요.”  

토끼별로 떠난 랄라, 랄라와 햇살이와 함께한 이야기가 담긴 '토끼랑 산다'
토끼별로 떠난 랄라, 랄라와 햇살이와 함께한 이야기가 담긴 '토끼랑 산다' ⓒ이순지씨 제공

 

순지씨는 랄라, 햇살이를 만나면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나의 작은 손길이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살다 보니 제 일상도 조금씩 변하게 됐어요. 나 아닌 다른 생명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거죠.” 

앞으로도 토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 토끼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킬 글을 많이 쓸 생각이다. “개나 고양이와 마찬가지로 토끼도 그냥 한 생명일 뿐이에요. 누군가 제가 얘기하는 토끼 특성을 듣고 ‘초식 고양이 같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고양이의 특성을 토끼가 많이 닮았어요.” 

“토끼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해요. 그렇다고 사회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 오해랍니다. 외로움도 타고 사람도 좋아해요. 귀여운 귀로 여러 얘기들을 전하죠. 토끼는 소리를 거의 내지 못하기 때문에 온몸으로 자신의 언어를 말한답니다. ‘토끼 이빨’이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쌀알 같은 앞니도 참 귀여워요. 이렇게 말하다 보니 토끼만의 매력은 역시 귀여움인 것 같네요.”

 

여기서 잠깐.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단순히 귀엽다고 데려오는 건 금물이에요. 토끼는 생각보다 키우기 어렵고, 돈도 많이 들어요. 토끼를 반려하고 싶으시면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공부하시고 데려오세요. 토끼의 수명은 길면 15년을 넘기기도 합니다.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면 랜선 집사가 되는 정도로 만족하셨으면 좋겠어요.”

<움짤은 건초를 오물오물 야무지게 먹는 햇살이???? 귀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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