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21년 04월 05일 11시 24분 KST

엄마가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 후 받은 동성애 혐오와 차별은 인생을 무너뜨릴 만큼 강력했다

미국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동성애는 공식 정신질환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다.

COURTESY OF MELISSA HART
저자의 어머니와 반려 고양이

엄마는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양육권을 완전히 잃고 비난받았다

엄마가 아빠와 이혼하고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했다. 난 9살이었고 내 형제들은 각각 7살과 5살이었다. 이혼 전까지 꽤 잘 살던 엄마는 이혼 후 무직이었고 가난했고 우리 형제를 혼자 맡았다. 엄마는 내 유치원생 동생의 버스 기사인 재니스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졌고, 우리는 재니스가 소유한 낡은 복층 집에 머물렀다.

이후 아빠와 엄마는 누가 아이의 양육권을 가질 건지 법적 다툼을 벌였다. 당시 1979년이었다. 미국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동성애는 공식 정신질환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엄마가 커밍아웃하기 직전에 공식적으로 동성애는 그 목록에서 빠졌다. 하지만 일부 정신과 의사나 상담사는 여전히 동성애가 정신 질환이라고 믿었다. 우리 가족의 정신 상태를 분석한 그 정신과 의사도 우리 엄마를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정신 이상자’로 불렀다. 그리고 우리 형제와 엄마가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판정을 내렸다. 아빠는 직장이 있었고 매주 교회를 다녔다. 판사는 우리 형제의 양육권 전부를 아빠에게 위임했다. 아빠는 엄마에게 때리기도 했는데 말이다. 아직도 그 판결을 내리던 판사가 엄마에게 ‘불효자’ 또는 ‘죄악’이라는 단어를 말한 게 생생히 떠오른다. 

우리는 한 달에 딱 두 번 주말에만 엄마를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가정이 많았다. 엄마 외에도 1970년대와 80년 대에 수천 명의 게이와 레즈비언 부모가 단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아이의 양육권을 잃었다. 

COURTESY OF MELISSA HART
저자의 어린시절과 어머니

엄마는 커밍아웃 후 아빠가 양육권 소송을 걸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엄마는 9년간 최고의 엄마였는데 단지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모든 걸 잃었다. 나중에 할머니께 들었는데 비난에 시달리던 엄마는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선택을 할 뻔했다. 어린 자녀를 보고 싶어도 한 달에 짧은 시간밖에 볼 수 없었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그런 엄마에게 돈을 빌려줘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난 엄마와 떨어져 살며 항상 엄마가 그리웠다. 어쩌면 다시는 못 볼까 봐 항상 두려웠다. 그때 생긴 우울증과 불안감을 아직도 겪고 있다.   

아마 많은 부모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았을 거다. 커밍아웃하고 싶어도 자신과 아이들에게 일어날 일이 무서웠을 거다. 그리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기며 살고 있다. 커밍아웃을 하는 건 인생을 바꾸는 일이며, 감당하기 힘들 수 있다. 

COURTESY OF MELISSA HART
저자와 그의 어머니

커밍아웃 후 엄마는 트라우마로 우울증과 불안감에 시달렸다

올해 초, 내 14살 딸이 자신이 ‘팬섹슈얼’ (젠더적 이분법을 따르지 않고 성별에 관계없이 ‘사람’을 사랑하는 성적 지향)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에 딸의 일부 친구들도 양성애자 또는 게이나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했다. 확실히 70년대 보다 요즘 커밍아웃하는 게 훨씬 더 쉬워졌지만 여전히 반응은 제각각이다. 이렇게 커밍아웃한 자녀를 지지하는 부모도 있지만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예전과 다른 건 온라인으로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찾는 게 더 쉬워졌고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거다. 

엄마는 가족과 친한 지인들에게만 커밍아웃했다. 오랜 시간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여자친구를 항상 ‘룸메이트’로 소개하곤 했다. 그리고 마침내 동성 결혼이 법제화되자 그 둘은 조용히 결혼했다. 우리 형제들에게조차 결혼 후 1년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알려줬다. 그리고 나는 엄마와 엄마의 여자친구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기 위해 파티를 열었다. 그리고 슬프지만 결혼 후, 엄마는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엄마는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 후 많은 사람의 비난을 받고 만성 불면증과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섭식 장애로 고생했고, 결국 비만을 초래했다. 그 와중에도 계속 일하며 대학교에 진학해 임상심리학 박사학위를 획득했다. 그는 프리랜서 잡지기자로 일하며 추리소설을 쓰기도 했다. 엄마는 열심히 인생을 살았지만 커밍아웃 후 받은 트라우마에 평생 시달려야 했다.  

COURTESY OF MELISSA HART
저자와 고양이
 
 

엄마는 그런 비난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그냥 여성을 사랑했을 뿐이다. 최근 팝가수 데미 로바토가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하고 배우 엘리엇 페이지가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하는 등 미디어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성소수자를 볼 수 있다. 이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일단 성소수자를 대표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아직도 사회에 차별과 편견이 존재한다. 우리는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성소수자 아이들에게 ”네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상관없다. 단지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성별에 관계없이 좋은 사람이길 바란다”고 진심으로 말해줘야 한다. 

엄마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나는 엄마가 받은 차별을 기억한다. 앞으로도 엄마 같은 사람을 위해서 계속 성소수자 권리를 위해 싸울 거다. 우리는 성소수자들이 진심으로 행복한 모습으로 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저자 멜리사 하트는 미국 오리건주에 살며 작가다. 

*허프포스트 미국판에 실린 독자 기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