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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경제가 이끄는 '무질서의 효용'

ⓒhuffpost

1960~70년대 영국 역시 빈곤에서 벗어나 부가 쌓이던 시대였다. 영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1970년에 쓴 책 ‘무질서의 효용-개인의 정체성과 도시 생활’을 통해 이 시대가 빚어낸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여러 사람이 섞여 살며 다양한 삶을 영위하던 시대가 점차 개인화·파편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 스스로 적당한 부를 쌓은 도시인을 위한 대규모 지역이 등장함에 따라 일관성을 향한 욕망, 구조화된 배제와 내적 동일성을 향한 욕망이 생겨날 수 있다. 도시 지역 전체를 계급과 인종, 민족에 따라 지리적으로 나눌 수 있다. 상점이나 유흥 같은 ‘눈에 거슬리는’ 활동은 가정생활에서 보이지 않게 숨길 수 있다.”

1960~70년대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달동네 가옥의 평면도. 부엌은 세대 별로 구분돼 있지만, 화장실은 공동으로 이용해야만 했다.
1960~70년대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달동네 가옥의 평면도. 부엌은 세대 별로 구분돼 있지만, 화장실은 공동으로 이용해야만 했다.

한국은 개발시대를 거치면서 세넷이 언급한 ‘정체성’이 지역마다 강화되어 왔다. 아파트 단지는 그 삼엄하게 둘러쳐 있는 드넓은 담장 안에 갇힌 물리적 형태가 보여주는 것처럼 그대로 획일적 주거를 양산하였다. 또 서울 강남과 같은 지역은 ‘일관성을 향한 욕망’이 결집하는 공간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됐다. 이제 도시 지역은 경제수준에 따라 지리적으로 구분할 수 있게 됐다. 도시지형 구조 안에서 작은 집들이 물흐르듯 자리 잡아 주거와 상업(점포) 등이 결합한 채 하나의 생활권을 형성하였던 과거와 다르다.

그러나 이 같은 ‘구분 짓기’는 최근 들어 다시 허물어지고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조용히 찾아온 저성장시대에 의해서다. 부유한 도시는 다시 빈곤의 시대로 회귀한다. 자, 그럼 세넷이 말하는 이른바 ‘빈곤의 시대’에 대해 조금 더 조명해보자.

“미국 도시의 흑인 게토(빈민가)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종종 진공청소기 같은 부족한 기구나 심지어 식품 같은 생필품을 공유하는 일에 관해 언급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이와 같은 공동체의 공유는 많은 다양한 도시 구역의 특징이었으며, 사람들은 공유를 통해 하나로 결합하고 직접 사회적인 접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 공유하는 편의와 기술, 소유물 등은 구체적인 공동체 활동을 위한 구심점 역할을 했다.”

세넷은 이 공동체적 양태가 풍요의 시대에 접어들며 사라지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이런 공유의 필요성이 사라진 것이야말로 풍요의 증거이다. 이제 가정마다 진공청소기뿐만 아니라 냄비와 프라이팬 세트, 자동차, 수도, 전열기 등이 있다. 그리하여 이제 풍요의 공동체에서는 사회적인 상호작용의 필요성, 즉 공유의 필요성이 원동력이 되지 못한다. 사람들은 각자의 독립적이고 자급적인 가정으로 들어가 버린다. 결국 공동체의 감정, 즉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결합되어 있다는 감정이 과거에 공동체 경험을 줬던 지역으로부터 단절된다.”

이제 이 말을 뒤집어 보자. 바로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공유경제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세넷이 기술한 빈곤의 모습은 공유경제의 시대와 일맥상통한다. 당연히 프라이버시가 더 좋지만, 당장 집에 깔려 있는 돈을 생각하면 에어비앤비와 같은 숙박공유 서비스를 활용하려는 동기가 생길 수밖에 없다. 당연히 자동차를 혼자 깨끗하게 이용하고 싶겠지만 하루종일 주차장 안에서 쉬고 있는 차량을 떠올리면 본전 생각이 날수밖에 없다. 당연히 혼자 넓은 집에서 살면 더 편리할지 모르겠지만 주거비 지출을 줄여야 하겠기에 공유주택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확산되고 있다.

물론 과거 빈곤의 시대와는 다른 것이 있다. 바로 문화다. 이미 국민소득 3만달러 가까이에 있는 한국이나 다른 선진국의 국민은 개발시대 때 열심히 드높였던 문화적 자산을 토대로, 어찌 보면 안타까울 수도 있으나, 새로운 문화로 덮어씌우며 트렌드로 만들어냈다. 세넷이 책 제목에서 말했듯 ‘무질서’가 가진 효용을 극대화하는 문화다. 공동체가 부활하고, 자원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다른 사람과의 교류 등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단순한 당위론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상품으로 시장에서 소비된다. 현대인이 굳이 에어비앤비를 이용해 여행을 떠나려는 이유는 단지 가격이 싸기 때문이 아니라 숙소를 운영하는 에어비앤비 호스트와의 교류, 거기서 얻는 따뜻함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공유 오피스를 이용하려 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단지 값이 싸서라기보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다른 회사 직원들과 다양한 교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시야를 조금 더 확장해보자. 저성장으로 인해 도시 역시 혼재되고 있다. 주거와 상업 등으로 명쾌하게 구분되어 있던 도시는 이제 주택과 사무실, 카페, 음식점, 관광객을 위한 숙소 등이 한곳에 모이며 골목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원격근무(리모트 워크)를 하는 젊은이들은 집 근처를 걸어다니며 도시의 어바니티(Urbanity·다양성을 가진 도시적 매력)를 즐긴다. 전통적인 도시계획가 입장에서는 매우 혼란스럽고 ‘무질서’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개발시대 당시 과거를 회상하며 우리가 그토록 찾으려 했던 공동체가 부활하고, 이에 따른 자치가 확산되고 있으며, 작은 마을에 기반한 골목상권이 활성화되는 현상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과연 전통적 도시계획을 잣대로 이를 “무질서”라 규정하는 게 맞는지 되묻게 만든다.

공유경제가 촉발한 용도 혼합의 시대를 맞이해 새로운 도시계획의 철학을 세워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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