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프 인터뷰] 외국인 며느리들의 추석이 생각보다 평화로운 데는 이유가 있다

보통의 한국 시가에서는 보기 힘든 '관대함' 같은 게 있다.

추석은 며느리들의 무덤이라고 하던가. 가을이 되면 한국 며느리들은 두려움에 떤다. 밀려드는 손님들, 뒤돌면 찾아오는 식사 시간,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는 차례상 등 대부분 추석 노동은 며느리들의 몫이다.

외국인 며느리들의 사정은 좀 나을까? 지난해에만 1만7687명의 여성이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 정착했다. 베트남(6712명), 중국(3649명), 태국(2050명) 등 아시아 국가 비중이 압도적이다. 민족 대명절 한가위를 앞두고 이 외국인 며느리들의 ‘안위’가 걱정됐다. 아시아 국가에서 온 세 며느리들을 만나봤다.

“시어머니 아닌 작은어머니로 입문한 ‘시월드’ (대만, 결혼 8년차, 83년생 첸추링)”

웨딩드레스를 입은 추링씨와 친구들. 모두가 환하게 웃고 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추링씨와 친구들. 모두가 환하게 웃고 있다.

대만 타이베이 출신 첸추링 씨는 올해도 시가에 못 간다. 추석에도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계 기업이다 보니 한국 명절은 휴일이 아니다. 그는 외국계 통신회사에서 회계 업무를 한다. 결혼은 2013년 6월에 했다.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그때부터 한국에 살았다. 남편 태호씨와는 일본 유학 중에 만났다.

시어머니는 일하는 며느리가 명절에 못 오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눈치다. 펄쩍 뛰는 사람은 따로 있다. 작은어머니다. 한 번은 추링씨가 회사 일로 급하게 가봐야 한다고 하자, 작은어머니가 ”여기 일 안 하는 사림이 어디있냐?”라고 핀잔을 주었다. 다행히 시어머니가 ‘방패막‘이 되어 추링씨를 보내주었지만, 말로만 듣던 ‘시월드’를 체감한 순간이었다.

남편 태호씨가 추링씨를 바라보고 있다. 꿀이 뚝뚝.
남편 태호씨가 추링씨를 바라보고 있다. 꿀이 뚝뚝.

추석 음식을 한 번도 안 한 건 아니다. 결혼하고 첫 추석에는 ‘각 잡고’ 전을 부쳤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1시간 넘게 전을 부치는데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남편 태호씨가 한 마디 거들었다. ”어머니도 비슷한 생각을 하셨나봐요. 요즘 손이 많이 가는 전은 시장에서 사시더라고요”

자료사진. 피자.
자료사진. 피자.

대만의 추석은 어떨까. 대만도 차례상을 차린다. 주로 여자들이 일을 한다는 점은 한국과 닮았지만, 음식을 직접 만들기보다 산다는 게 다르다. ”대만에서는 먹고 싶은 음식을 사서 차례상에 올려요. 피자나 햄버거를 올리기도 하고요. 어차피 우리가 먹을 음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분명 다르다.

″문화가 다르니까 어머니가 이해해주는 게 있을 거예요. 한국 며느리였다면 다르실지도 모르죠. 당장 저부터 아내에게 ‘어머니를 도와드리라’고 했을 것 같아요”

-남편 태호씨

추링씨도 어머니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많이 고생하시고 이해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어머니도 고생하지 않도록 앞으로 차례를 안 지내는 건 어떨까요?”

“‘시’자 붙어서 싫다고? 시가는 한국에서 유일한 내 가족 (말레이시아, 예비 며느리, 92년생 임미정”

미정씨와 종호씨의 커플링.
미정씨와 종호씨의 커플링.

말레이시아에서 온 임미정 씨는 아직 ‘진짜 며느리‘가 아니다. ‘예비 며느리’다. 그래도 올 추석 시가에 간다. 자발적으로 결정한 일이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종호씨와 결혼식은 1년 뒤로 미뤘다. 남들은 ‘결혼도 하기 전에 도대체 왜 그러냐?’고 하지만 미정씨는 한국의 유일한 가족인 시가가 마냥 좋다.

미정씨는 대기업에서 외국인 인사 관리를 담당한다. 5년 전만 하더라도 말레이시아 지사에서 일했지만, 좋은 기회가 생겨 한국 본사로 옮겼다. 갑작스럽게 한국에 온 미정씨에게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엄마이고 아빠다.

”사업을 크게 하시는 아버지는 항상 바쁘셔서 얼굴 보기가 힘들었어요. 가정부가 차린 식탁에서 아빠를 마주할 일이 적었죠. 반면, 시가에 가면 시아버지가 늘 웃으며 맞아주시니까 아빠보다 더 가깝게 느껴져요. 시어머니도 항상 저를 먼저 생각해주세요.”

자료사진. 제사상.
자료사진. 제사상.

이제는 내 집 같은 시가지만, 생전 처음 본 ‘제사상’은 미정씨에게 다소 충격적이었다. ”어후~ 이렇게 많이 준비해야 하는구나 싶었어요. 상 위에 음식을 놓는 순서도 정해져 있더라고요?” 중국계 혈통인 미정씨는 말레이시아에서는 설이나 추석에 차례를 지내지 않았다. 가족들이 모여 소소하게 음식을 만들어 먹는 정도였다. 추석은 휴일이 아니라는 점도 한국과 다르다.

작년 추석에는 중국으로 출장 간 남편 없이 혼자 시가에 갔다. 시어머니가 ‘늦은 오후에 오라’고 당부해 명절노동은 안했지만, 앞으로는 며느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에요. 평소에 잘 해먹는 음식들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조금씩 배우려고 해요. 어머니께서 차근차근 도와주실 것이 분명하거든요!”

“결혼 3년차, 밥 푸는 일도 쉽지 않다 (중국, 결혼 3년차, 93년생 손소함)”

소함씨와 남편 기영씨. 아들 이준이와 함께한 지 260일이 지났다.
소함씨와 남편 기영씨. 아들 이준이와 함께한 지 260일이 지났다.

중국 유학생이던 손소함 씨는 이제 3년차 주부다. 돌도 지나지 않은 아들 이준이를 업고 집안 일을 척척 해내지만, 올 추석 시가에 가는 일은 벌써부터 걱정이다.

자료사진. 밥. 우리가 매일 먹는 밥. 
자료사진. 밥. 우리가 매일 먹는 밥. 

소함씨에게는 밥을 그릇에 담는 일부터가 난관이다. ”어머니가 ‘소함아, 밥은 이렇게 푸는 거야’하고 매번 보여주시는데 저와 뭐가 다른지 솔직히 모르겠어요” 남편 기영씨의 보충 설명에 따르면, 소함씨는 주걱으로 한 번에 밥을 푸고 시어머니는 그런 다음 숟가락으로 밥알이 눌리지 않게 찰기를 살려준다고 한다.

소함씨가 적응하기 어려운 모습은 또 있다. 가사일을 하느라 바쁜 시어머니와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는 시아버지다. 소함씨가 나고 자란 중국에서는 남자들이 요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불앞에 오래 서있어야 하는 명절 음식은 남자들이 한다. 아버지를 대신해 남편이 어머니와 아내를 돕긴 해도 중국과는 여전히 많이 다르다.

기영씨(윗줄 제일 왼쪽)와 소함씨(아랫줄 제일 왼쪽), 그리고 시가 식구들
기영씨(윗줄 제일 왼쪽)와 소함씨(아랫줄 제일 왼쪽), 그리고 시가 식구들

소함씨의 시가는 기독교 집안이다. 그렇다고 해서 차례를 지내지 않는 건 아니다. 절을 하지 않을 뿐 다른 집처럼 차례상을 차린다. 차례를 지낸 뒤에는 덕담을 주고 받는다. 이때 남자들은 양복을, 여자들은 한복을 입는다. 예절을 중시하는 시어머니가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간이다.

″평소엔 한복을 입을 일이 잘 없잖아요. 한국의 예절과 전통을 익힐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는데 시어머니께서 바로 옆에서 알려주시니 전 좋아요. 추석 내내 한복을 입으라고 하시는 것도 아니고요.”

시가에서 먹고 자는 일이 불편하지 않을 며느리는 세상에 없다. 아침 잠이 많은 소함씨는 새벽 기도를 드리는 시어머니의 기상 시간 맞추기가 특히 힘들다. 시어머니는 더 자라고 말씀하시지만, 시어머니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소리에 일어나지 않을 며느리가 과연 몇이나 될까?

올해는 아들 이준이와 함께 하는 첫 번째 추석이다. ‘갓난아이를 데리고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지만 믿는 구석은 있다. 남편 기영씨다.

자료사진. 이렇게 모두가 웃는 추석이 되길.
자료사진. 이렇게 모두가 웃는 추석이 되길.

세 외국인 며느리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추석을 지내고 있었다. 사랑하는 남편을 따라 한국에 정착한 이들은 적응하려고 온 힘을 다한다. 생전 처음 해보는 명절 음식은 어렵기만 하고, 밥 푸는 일조차 쉽지 않다.

그래도 포기란 없다. 이들 곁에는 새로운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며느리를 맞이한 집 특유의 ‘관대함’ 같은 게 있다. 시어머니는 먼 친척이 며느리에게 하는 날선 잔소리를 막아주고, 가사일을 안 하는 시아버지를 대신해 남편이 어머니, 아내와 함께 음식을 만든다. 일반적인 한국 시가에서는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올 추석, 이 세 외국인 며느리를 포함해 한국의 모든 며느리들의 안위를 기원한다.

도혜민 에디터: hyemin.do@huff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