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20년 10월 14일 14시 04분 KST

방탄소년단 수상소감 사건으로 본 중국의 '애국보수' 청년들

벤츠, 나이키, NBA도 비난 세례를 피하지 못 했다.

NBC via Getty Images
10월 1일 지미 팰런의 투나잇쇼에 출연한 방탄소년단

“도발적인 언사보다 진정어린 포용적 태도로 잘 알려진 인기 그룹의 악의 없는 발언으로 보였다. … 하지만 방탄소년단이 한국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자, 중국의 일부 누리꾼들은 모욕감을 느꼈다.”

뉴욕 타임스는 12일(현지시각) 인터넷판에서 이렇게 전했다. 방탄소년단의 발언에 대한 중국 누리꾼들의 집단 반발과 중국에 진출한 일부 국내기업의 대응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면서 관련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논란에는 두 개의 축이 있다. 갈수록 거세지는 중국의 애국주의 열풍과 거대한 중국시장을 놓치지 않으려는 기업의 이해타산이다.

코리아소사이어티 온라인 갈라 생중계 캡처 제공
지난 7일 미국의 한미 친선 비영리재단인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온라인으로 진행한 밴 플리트 상 시상식에서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수상소감을 전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미국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주는 밴플리트상을 받게 된 방탄소년단의 리더 김남준(RM)이 지난 7일 열린 온라인 시상식에서 한 발언이다. 그는 한국전쟁을 언급하면서 “양국이 함께 나눈 고통의 역사, 수많은 희생을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전쟁을 멈춘 정전협정의 체결 당사자이기도 한 중국도 당시 많은 희생을 치렀다. 지난 주말 사이 일부 중국 누리꾼들이 중국판 트위터격인 웨이보 등을 통해 방탄소년단을 비난하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방탄소년단을 좋아하지만, 내가 중국인이란 점도 잊지 않고 있다”는 온건한 반응부터, “중국에서 돈을 벌면서 중국인의 감정을 건드렸다. 중국 시장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격앙된 반응까지 다양했다.

youtube/America's Got Talent
9월 16일 아메리카스 갓 탤런트 방송 중

민족주의 성향을 부추기는 환구시보까지 논란에 가세하면서 사태가 커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방탄소년단이 모델로 등장하는 한국기업에 대한 불매운동까지 거론되기에 이르렀다. 굳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논란의 쓴 교훈을 되새길 필요도 없다. 중국에 진출한 외국기업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애국주의 리스크’를 피해야 했다.

삼성 쪽은 공격의 표적이 된 스마트폰(갤럭시 S20 플러스)과 이어폰(갤럭시 버즈 플러스)의 방탄소년단 한정판 관련 게시물을 자사 누리집과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내렸다. 이들 제품은 이미 지난 7월초 출시돼, 판매가 거의 마무리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 소비자의 ‘정서’를 고려한 ‘선제적 대응’이었다. 현대차와 스포츠 의류 브랜드 필라 등도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

중국 누리꾼들의 느닷없는 방탄소년단 비난과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대응은 낯익은 풍경이다. 중국의 경제력이 커지는 것과 비례해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애국주의 열풍도 거세져 왔다. 특히 티베트·신장·대만·홍콩 문제 등 중국이 ‘주권’과 ‘내정’에 속한다고 주장하는 문제에 대해선 대응의 수위가 더욱 높아진다. 최근의 사례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벤츠, 나이키, NBA도 피하지 못한 비난 세례

[메르세데스 벤츠의 달라이 라마 발언 인용 광고]

“상황을 모든 각도에서 바라보세요. 좀 더 개방적으로 바뀔 겁니다.” 지난 2018년 2월초 독일 자동차업체 ‘메르세데스 벤츠’는 해변을 배경으로 서있는 흰색 승용차와 함께 이런 문구가 적힌 사진을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예상 밖의 지역에서, 예상 밖의 반응이 터져 나왔다. 인스타그램이 차단된 중국에서, 누리꾼을 중심으로 불매운동 조짐이 불기 시작했다. 인용한 문구가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끄는 달라이 라마가 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가능한 신속하게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지만, 중국인들의 감정에 상처를 줬다는 점을 안다. 진심으로 사과한다.” 벤츠는 곧바로 사과문을 중국의 트위터격인 웨이보에 올렸다. 모회사인 다임러의 전 세계 매출에서 중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이미 10%를 넘어선 시점이었다.

[다카하시 준이 제작한 ‘언더커버’ 운동화] 

홍콩에서 송환법 반대 시위가 격렬했던 지난해에도 비슷한 사건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는 지난해 6월 일본 디자이너 다카하시 준이 제작한 한정판 브랜드 ‘언더커버’의 판매를 전격 중단했다. 준이 ‘중국 송환 반대’ 구호가 적힌 홍콩 시위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뒤 중국 누리꾼들이 불매운동에 나서겠다고 압박했기 때문이다.

WEIBO
홍콩과 마카오를 별도 국가로 표기한 데 대해 불만을 제기한 웨이보 포스트

같은 해 7월엔 패션 브랜드 베르사체가 신제품 티셔츠 판매를 전격 중단하고 사과문을 게시했다. 홍콩과 마카오를 독립 국가처럼 표기한 티셔츠의 디자인이 문제였다. 돌체 앤 가바나를 비롯해 코치, 지방시 등도 비슷한 이유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과문을 냈다. 앞서 미국 의류업체 갭도 2018년 5월 티셔츠 디자인으로 사용한 중국 지도에 대만·티벳·남중국해 등이 제대로 표기되지 않았다는 항의를 받고 공개사과한 바 있다.

‘상품’만 표적이 되는 건 아니다. 제이와이피(JYP) 인기 걸그룹 트와이스의 대만인 멤버 쯔위는 2016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태극기와 대만 국기를 함께 흔들었다. 그 직후 중국인들에게 특히 민감한 ‘하나의 중국’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쯔위 출연 광고 불매운동 등 거센 후폭풍에 시달렸다. 결국 JYP를 이끄는 박진영 대표 프로듀서가 사과문을 발표하고, 쯔위가 유튜브에 “중국인임을 언제나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사죄 영상을 올려야 했다. 얼마 전 가수 이효리도 예능에서 마오쩌둥을 떠올리게 하는 ‘마오’를 언급했다가 중국인들의 집요한 악플 세례를 받았다.

SOPA Images via Getty Images
2019년 10월 홍콩 완차이에서 홍콩 지지 발언한 휴스턴 로키츠 단장에 연대를 표하는 집회가 열린 모습.

대중문화뿐 아니라, 스포츠도 중국팬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농구팬이 6억명을 훌쩍 넘는 중국에서 미국프로농구(NBA)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프로농구 경기복을 입은 청년들을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중국중앙방송>(CCTV)은 지난해 10월 미국 프로농구 개막경기 생중계를 하지 않았다. 대릴 모리 휴스턴로키츠 단장이 같은 달 초 ‘홍콩 시위를 지지한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린 게 말썽이었다. 휴스턴로키츠와 미국프로농구협회는 중국 쪽에 공개 사과를 했다가, 되레 미국 국내의 비난여론에 시달려야 했다.

 

중국 청년들은 왜 ‘애국보수’가 되었나

뉴스1
김도형 동북아역사문화재단 이사장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의 국가평생교육진흥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이 제기한 BTS의 수상소감에 대한 중국 네티즌의 비난을 다룬 기사를 바라보고 있다. 2020.10.13/

전문가들은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중국 애국주의 열풍의 기원으로 1989년을 꼽는다. 그해 6월 천안문 민주화 시위가 유혈 진압됐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냉전도 막을 내렸다. 개혁·개방 10년차를 맞은 중국 지도부로선 역사와 사상에 기반한 ‘애국교육’을 강조해야 할 시점이었다. 지금 중국의 20~30대는 강화된 애국교육의 수혜자들이다.

성장 배경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애국주의 열풍의 주역인 중국의 10대와 20대는 각각 1990년대와 2000년대 태어나 성장했다. 경제적 어려움 없이 비교적 풍족한 환경에서 성장한 이들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국가에 대한 자부심과 배타적 민족주의 성향이 더욱 강하다. 특히 이들이 학교에 다닌 시기는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애국교육이 한층 강화된 시점과 맞물린다.

이른바 ‘만리방화벽’을 통해 외부세계와 단절된 ‘인터넷 생태계’도 상황에 기름을 붓고 있다. 왕야치우 휴먼라이츠워치 중국 담당 연구원은 지난달 1일 <폴리티코>에 기고한 글에서 “인터넷 환경에는 익숙하지만, 가상사설망(VPN) 없이는 주요 외국 사이트 접근이 차단된 현실이 중국 청년층의 극단적 애국주의 성향을 부추기고 있다”고 짚었다.

글 |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방탄의 6·25 발언, 중 외교부가 ‘확산 차단’ 나섰나

중국 관영언론이 방탄소년단(BTS)의 ‘한국전쟁’ 발언 논란과 관련한 기사를 삭제했다. 중국 누리꾼들의 분노로 시작된 이번 사태의 파장을 더는 확대시키지 않으려는 중국 당국의 분위기가 엿보인다.

지난 11일 ‘방탄소년단의 수상 소감이 중국 누리꾼의 분노를 일으켰다’는 제목의 중국 <환구시보>의 중국어 기사는 13일 현재 이 매체 누리집에서 삭제된 상태다.

기사는 “방탄소년단의 발언은 6·25 당시 침략자였던 미국의 입장에만 맞춘 것”이라며 “한국인은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중국인인 나는 팬클럽을 관두려 한다”는 익명 팬의 반응을 전하는 등 논란을 확산하는 태도를 보였다.

다만, 이 매체의 영문판 격인 <글로벌 타임스>는 ‘방탄소년단의 수상소감이 중국 누리꾼과 팬들을 상심시키다’는 제목의 영문 기사로, 팬들의 반응까지 그대로 남겨뒀다.

기사가 삭제된 시점은 지난 12일 중국 외교부의 브리핑 이후인, 당일 밤이나 13일 새벽으로 추정된다. 자오리젠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방탄소년단 발언에 대해 논평해 달라는 질문에 “관련 보도와 이번 일에 대한 중국 누리꾼의 반응에 주목하고 있다”며 “역사를 거울로 삼아 미래로 나아가며 평화를 아끼고 우호를 촉진하는 건 우리가 공동으로 추구하고 공동으로 노력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는 ‘위챗이 금지되면 아이폰을 쓸 이유가 없다’는 식의 직설화법을 서슴지 않는데, 이번 논란에서는 “역사를 거울로 삼자”는 표현을 내놨다. 중국 외교부의 두루뭉술한 반응과 곧이은 기사 삭제에, 중국 당국이 이번 논란의 확산을 원치 않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애초 방탄소년단의 한국전쟁 관련 발언 자체가 논란으로 삼기 힘들고, <뉴욕 타임스> 등 서구 언론도 중국의 편협한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기사를 내놓고 있어 사태 관리에 나섰다는 것이다.

중국 내 방탄소년단 팬들의 분위기도 엇갈린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중국 방탄소년단 팬층의 반발 규모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며 “일부는 웨이보에서 이목을 끌지 않게 조용히 있자고 서로 요청하고 있고, 또 다른 일부는 아르엠(RM)의 발언이 중국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며 트위터에서 방탄소년단을 옹호했다”고 소개했다.

글 |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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