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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9월 10일 17시 25분 KST | 업데이트됨 2020년 09월 10일 17시 25분 KST

폭력의 쳇바퀴 : 범죄심리학자 이수정이 '아동학대'를 가장 끔찍한 범죄로 꼽은 까닭

성적 학대마저도 집행이 유예되는 판결을 보면서 사람들은 깨닫는다. 한국에서 아동학대는 범죄가 아니란 걸.

뉴스1
이수정 교수

 

연쇄살인부터 디지털성범죄에 이르기까지 정말 운 좋게도 여러 가지 범죄사건들의 디테일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끔찍한 내용이었으나 사건의 의미를 새기고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기에 군말 없이 감당하였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범죄는 바로 아동학대치사라고 생각된다.

개인적 의견으로는 워낙 장기간에 걸쳐 죽음에 이르는 사건이다 보니 가해자가 아이의 죽음을 몰랐을 리 없는 사건임에도 우리나라의 경우 살인죄를 잘 적용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치사사건으로 분류되어 처벌 수위도 약할 수밖에 없다.

최근 5년 사이 아동학대로 숨진 아이는 총 132명이라고 한다. 2014년 14명이던 사망 아동 수는 2015년 16명, 2016년 36명, 2017년 38명으로 증가하였다. 아동학대사건 역시 꾸준히 증가 추세인데, 2012년에는 6400여건에서 2018년 2만4600여건으로 4배가량 늘었다. 아동학대로 신고되는 사건은 연평균 21%씩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언택트 사회가 된 뒤에는 가정폭력사건처럼 아동학대사건 역시 신고 건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집 안에 묶여 있는 피해자들을 발굴하기 힘든 우리 사회의 맹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전문심리위원으로서 참여하기에도 아동학대치사사건의 내용은 너무나 끔찍하다. 이런 사건들에서의 죽음은 갑작스럽게 당도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학대로 인하여 점진적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사건 기록을 들여다보는 일은 고문이다.

어떤 사건은 재혼한 뒤 3년여간 자식을 학대한 과정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는데, 처음에는 통상적인 훈육으로 시작되어 일정 기간 이후 도구를 사용하는 폭행으로, 폭력적인 습벽은 결국 먹이지도 입히지도 재우지도 않는 잔혹행위로 이어졌다. 나중에는 피해 아동의 의식이 혼미해져 혼절하기에 이르러도 부모란 자들은 피학대 아동의 모습을 자신들의 훈계에 고의적으로 저항하는 모습이라고 왜곡하여 지각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끔찍한 폭행을 행사하는 학대 가해자들도 역시 피해 아동과 똑같이 ‘지옥’을 경험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법정에서 처절하게 울며 호소한다. “그때는 저도 왜 그랬나 모르겠어요.” 어쩌면 한결같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이들, 가해자들이 바로 부모이다.

뉴스1
지난 2017년 아들 살해 후 시신 훼손한 혐의로 징역 30년 선고받은 최모씨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혹자는 빈부 격차를 이유로 들기도 하며 산업화와 가족의 해체가 이유라고도 한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아이들을 키워본 부모들은 다들 공감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즉 보채고 떼쓰는 아이가 원수같이 보였던 순간. 또한 우리 역시도 어릴 때 한두번 매 맞아보지 않고 자란 사람은 없다는 사실. 다만 폭력의 쳇바퀴가 시작되면 강력한 이성적 제어력을 발휘하지 않고서는 멈추기가 어렵다는 사실만이 진리인 것 같다.

이제는 민법에서 자녀에 대한 징계권을 삭제하고 대신 자녀는 비폭력적인 양육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자고 한다. 참으로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정치적 선언과도 같은 민법 조항만을 바꾸었다고 아동학대가 줄어들까?

성적인 학대마저도 집행이 유예되는 판결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다시금 깨닫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동학대가 범죄가 아니라는 것을. 아동학대를 복지지원의 방법만으로 과연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매년 아동학대로 신고되는 사건 중 단 1% 정도만이 형사법원으로 송치되는 현실에서 복지지원 제도만으로 문제의식이 생기기를 기대하는 일은 허망하기까지 하다.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예산과 조직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커졌다. 이제는 지자체에 전담공무원까지 배치되었다. 그러나 자식을 아동수당을 받는 조건으로 여기는 인식이 계속되는 한 아동학대가 줄어들 것인가? 형사개입 없는 복지시스템 속에서만의 아동학대 방지 시스템이 과연 실효성이 있을 것인가? 아동학대를 주요 강력범죄로까지 다루는 외국의 선례가 그저 생경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