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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만 가족을 대신해 5천억원 넘는 의료비를 갚은 자선단체의 비법

의료비로 인한 채무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돕는 단체

  • 김태성
  • 입력 2018.12.26 15:28
  • 수정 2018.12.26 15:37
ⓒutah778 via Getty Images

필립 세서는 눈에 많이 익은 노란 봉투를 우편함에서 발견했다. 의료비 채무 독촉장일 거라는 걱정 때문에 가슴이 쓰려왔다. 그러나 그 반대의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플로리다에 사는 세서는 ”무거운 마음으로 봉투를 열었다. 그런데 그 안에는 모든 비용이 처리됐다는 사연이 적혀있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라고 그 순간을 설명했다.

세서에게 이 기쁜 편지를 보낸 곳은 뉴욕에 있는 ‘RIP 의료비 채무’라는 자선단체다. RIP가 하는 일은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악성 채무자로 전락한 미국인들을 돕는 것이다. 단체는 지난 4년 동안 25만 가족의 빚을 대신 갚아줬으며 그 금액은 현재까지 5천억원을 넘는다.

RIP 창립자이자 CEO인 크렉 안티코는 ”아무 조건 없는, 무작위로 실천하는 착한 일”이라고 채무 탕감 행위를 설명했다.

안티코와 RIP 공동 창립자 제리 애슈턴은 부채 청산 업체에서 수십 년 동안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이다. RIP에서는 채권 추심인들이 하는 업무와 비슷한 일을 한다. 즉, 악성 채무를 헐값에 사는 거다. 차이가 있다면 돌아서서 채무자들에게 독촉장을 보내는 대신 해당 채무가 탕감됐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거다. RIP가 대신 탕감하는 채무액은 100달러에서 25만 달러까지 다양하다.

RIP는 기부금 10달러로 1,000달러어치의 장기 악성채무를 청산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텍사스에 사는 리건 아데어가 'RIP 의료비 채무'가 보낸 편지를 들고 있다. 2018.12.20.
텍사스에 사는 리건 아데어가 'RIP 의료비 채무'가 보낸 편지를 들고 있다. 2018.12.20. ⓒAP Photo/Tony Gutierrez

뉴욕 이타카에 사는 주디스 존스와 캐럴린 케년은 보편적 의료보장을 지지하는 운동가들이다. 그녀들이 속한 단체는 모금액 12,500달러를 RIP에게 전달했고 RIP는 그 돈으로 1,284명의 악성 채무, 총 150만 달러를 탕감하는 데 성공했다. 존스는 ”모금된 돈으로 기하급수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비법”이라고 칭찬했다.

‘의료비 채무를 없애자’의 공동 저자 안티코, 애슈턴, 그리고 로버트 고프에 의하면 미국인 중에 약 4천3백만명이 의료비를 갚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악성 채무자들이 진 빚은 약 750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 전체 의료비 부채(드러나지 않은 악성 채무 포함)는 현재 1조 달러에 근접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RIP는 정부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때까지는 탕감이 어려움에 처한 채무자들을 돕는 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애슈턴의 말이다. ”우리가 하는 일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악성 채무라는 증상에 대응하는 일일 뿐이다.”

RIP의 다음 목표는 5만 달러를 모금하는 거다. 재향군인들이 진 5천만 달러 가량의 채무를 탕감하기 위해서다.

필립 세서(45)가 이번에 탕감받은 부채 금액은 1,200달러다. 그의 아내는 지난 6년간 아팠다. 보험금을 제외한 의료비 자기부담금이 그렇게 쌓인 것이었다. 그는 아내와 십대 아들 둘을 돌보느라 사업에 투자할 광고비까지 줄여야 했다.

세서의 말이다. ”이런 큰 부채를 해결할 방법이 없어 부담이 많이 됐다. 스트레스도 만만찮았다. (RIP가 보낸) 편지를 읽는 순간, 엄청난 짐을 벗은 기분이었다.”

텍사스에 사는 초등학교 선생 리건 아데어는 RIP 덕분에 3,100달러의 빚을 탕감받았다. 그녀는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도 RIP 사업에 기부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데어는 ”완전히 고장 난 시스템이다. 우리 의료체계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기존 체계는 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RIP의 역사는 월가시위와도 연관이 있다. 2011년 애슈턴은 불평등 및 이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시위하는 운동가들을 자기 사무실 앞에서 직접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월가시위 운동가들은 채무 탕감 문제를 애슈턴과 안티코에게 상담했고 그들은 결국 ‘RIP 의료비 채무’를 2014년에 설립하게 된다.

처음에는 별 성과가 없었다. 그러나 미국 케이블 방송 HBO의 ‘라스트 위크 투나이트’가 이 자선단체에 준 6만 달러로 1,500만 달러어치의 개인 의료비 채무를 탕감했다는 내용을 2016년에 방송하면서 RIP 사업은 널리 알려졌다.

‘라스트 위크 투나이트’의 진행자 존 올리버 덕분에 12,000달러도 되지 않던 기금 2015)이 2017년에는 240만 달러로 껑충 뛰었다.

개개인들의 기부금은 물론 의료 단체, 방송국 등 다양한 조직을 통해 RIP의 모금 사업이 더 활발해졌다.

지난 11월, RIP는 한 익명의 커플이 기부한 200만 달러를 약 2억5천만 달러에 달하는 채무 탕감에 썼다.

RIP는 악성 채무를 뭉치로 매입해 처리하기 때문에 개인 사정을 따로 참고해 일을 처리할 능력은 갖추지 않고 있다.

애슈턴은 ”개인들의 청탁 이메일을 자주 받는다. 돌심장도 녹일 정도로 슬픈 사연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RIP는 사업 영역이 넓어져 개인 사정을 고려할 수 있게 될 때를 대비해 신청자들에게 우선 이름과 연락처를 남기게 하고 있다. 이미 1만명 이상이 RIP 웹사이트에 이름을 남겼다고 한다.

안티코의 말이다. ”내 목표는 도움을 청하는 모든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거다.”

한국에도 채무자 부담을 덜어주는 사업을 하는 몇몇의 단체가 있다.  

김태성 에디터 : terence.kim@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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