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싹쓰리도 가세' 8090 전성기였던 카세트테이프가 다시 인기 끄는 이유

'번거로운 매체' 카세트테이프의 부활은 세계적인 추세다.
카세트테이프로도 발매된 이효리, 유재석, 비로 꾸려진 혼성그룹 ‘싹쓰리’ 데뷔 앨범.
카세트테이프로도 발매된 이효리, 유재석, 비로 꾸려진 혼성그룹 ‘싹쓰리’ 데뷔 앨범.

‘기념으로 하나쯤 갖고 있으면 좋겠다.’

티브이(TV)를 보면서,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문화방송(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혼성그룹 ‘싹쓰리’(이효리, 유재석, 비)가 자신들의 노래를 음원뿐 아니라 실물 앨범으로 낸다고 한 말을 듣고서였다. 앨범 판매 수익은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쓰인다고 하니, 더더욱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시디(CD)로 된 앨범과 기념사진, 스티커로만 이뤄진 ‘싹쓰리 굿즈 일반형’과 달리 주문한 ‘스페셜형’에는 일반형 상품에 더해 특별한 게 담겨 있었다. 바로 카세트테이프였다. ‘요즘도 이런 게 나오는구나.’ 초등학생 때 들은 뒤로는 잊고 지낸 물건이었다. 플레이어를 구해 카세트테이프를 넣고 조심스레 재생 버튼을 누르자, 노랫소리와 함께 카세트로 음악을 듣던 시절의 추억이 불현듯 되살아났다.

가요를 즐기시던 부모님과 오빠의 영향으로 귀에 익은 옛 노래도 하나둘 떠올랐다. 유년 시절 귀에 새겨진 카세트테이프의 감성은 잠시 잊혔을 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슬기(31)씨는 최근 그렇게 카세트테이프와 다시 만났다. 오랫동안 팬이었던 에이치오티(H.O.T)를 비롯해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즐겨 듣던 조성모, 터보, 조장혁 등의 옛 앨범도 중고거래를 통해 하나씩 사 모았다. “스트리밍으로 노래를 들을 때와 달리, 카세트테이프는 ‘그때 그 시절’의 음악을 온전히 추억하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음원과 다른 테이프 특유의 소리와 플레이어의 모습, 노래를 들으려면 테이프를 카세트에 넣고 버튼을 눌러야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그 시절’의 향수와 추억을 떠올리게 하거든요.”

카세트테이프로도 발매된 방탄소년단(BTS)의 싱글 <다이너마이트>. 방탄소년단이 카세트테이프를 발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카세트테이프로도 발매된 방탄소년단(BTS)의 싱글 <다이너마이트>. 방탄소년단이 카세트테이프를 발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카세트테이프는 1980년~1990년대 초반 음악을 듣는 매체로 전성기를 누렸다. 이동성이 떨어지는 엘피(LP)와 막 선을 보인 값비싼 시디보다 효용성이 큰 탓에 카세트테이프가 없는 집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시디가 대중화되면서 카세트테이프는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한때 사라졌던 카세트테이프가 부활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조금씩 주목받았지만, ‘레트로 열풍’으로 최근 카세트테이프를 찾는 이들이 늘면서다. 특히 대형 가수들이 잇따라 카세트테이프 음반을 내면서 카세트 열풍에 불을 지피는 분위기다.

지난 21일 신곡 ‘다이너마이트’를 발표한 방탄소년단(BTS)은 이번 싱글을 시디·엘피와 함께 카세트테이프로도 내놨다. 이들이 카세트테이프를 발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여름 가요계를 싹쓸이한 ‘싹쓰리’뿐만 아니라, 오는 9월7일 컴백하는 에이치오티 출신 장우혁 또한 카세트테이프로도 앨범을 발표한다.

카세트에 대한 관심은 인터넷 카페에서도 엿볼 수 있다. 국내 대표적인 카세트테이프 관련 네이버 카페 ‘카세트테이프를 듣는 사람들’의 28일 기준 회원 수는 1만2200여명이다. 이 카페를 만든 40대 송재훈씨는 “2016년 처음 카페를 열었을 때만 해도 같은 취미 활동을 하는 사람이 30명도 채 안 됐는데, 4년 만에 회원 수가 1만2천명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회원들은 카세트테이프와 플레이어의 구매, 수리 정보를 공유할 뿐만 아니라, 서로가 가진 기기나 테이프 등을 필요한 이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나눔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9월7일 발매되는 장우혁의 새 앨범 <히>(HE)의 카세트테이프 버전.
9월7일 발매되는 장우혁의 새 앨범 <히>(HE)의 카세트테이프 버전.

카세트테이프의 부활은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 빌보드와 함께 양대 팝 차트로 불리는 영국 오피셜 차트가 지난달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올해 상반기 영국의 카세트테이프 판매량은 6만5천개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103%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8년 한해 판매량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오피셜 차트는 올해 판매량이 지난해 8만개를 넘어 2003년 이후 처음으로 10만개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번거로운 매체의 매력 : 원하는 곡만 듣는 ‘편식’ 대신 전곡 오롯이 느낄수 있다

카세트테이프는 번거로운 매체다. 음원이나 스트리밍과 달리 음질이 변하고 테이프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듣고 싶은 노래를 찾아 들으려면 빨리감기와 되감기 버튼을 수차례 눌러가며 노래가 시작되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사실상 카세트는 창작자가 구성한 순서대로 음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야 하는 장치다.

서울 마포구 신수동에 위치한 도프레코드. 이곳에선 2만여개의 카세트테이프가 판매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신수동에 위치한 도프레코드. 이곳에선 2만여개의 카세트테이프가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점이 오히려 카세트테이프의 매력으로 꼽힌다. “요즘은 맘에 드는 곡을 쉽게 들을 수 있는 환경이다 보니, (좋아하는 노래만 듣는) 음악적 ‘편식’이 생기는 것 같아요. 하나의 앨범을 만들 때, 많은 분의 노력이 들어가잖아요. 곡 순서도 여러 생각과 시행착오 끝에 정해지는 거고. 저는 카세트의 작은 불편함이 앨범 전곡을 여유를 갖고 오롯이 느낄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해요.” 이슬기씨의 말이다.

최근 발매되는 카세트테이프 음반은 온·오프라인 음반매장에서 손쉽게 살 수 있지만, 더는 발매가 안 되는 옛 음반은 전문 매장이나 온·오프라인 중고거래 장터를 뒤져야 한다. 가격은 500원부터 수만원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희귀 앨범은 부르는 게 값이다.

오프라인 매장 가운데서는 서울 마포구의 도프레코드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2만여개의 카세트테이프 음반을 갖추고 있다. 중고거래 장터인 종로구 동묘시장에서도 오래된 카세트테이프 음반을 만날 수 있다. 지난 26일 동묘시장에서 만난 이상훈(44)씨는 “학창 시절 즐겨 듣던 그룹 푸른하늘의 3집 중고 앨범을 1천원에 샀다”고 말했다.

요즘엔 카세트 플레이어가 대량으로 생산되지 않는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2005년부터 국내 카세트 플레이어는 사실상 생산이 중단됐다.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의 대명사인 워크맨을 만든 소니도 2013년 초 생산을 멈췄다. 카세트 플레이어가 없는 이들이 대체로 중고거래 사이트나 국외 온라인 쇼핑몰, 동묘시장 등에서 중고 물품을 산 뒤, 고쳐서 사용하는 이유다.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의 ‘수리수리협동조합’ 사무실 내부. 이승근 이사장이 고장 난 물건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의 ‘수리수리협동조합’ 사무실 내부. 이승근 이사장이 고장 난 물건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고장 난 카세트 플레이어가 주로 모이는 곳은 종로구 세운상가다. 수리장인 8명으로 꾸려진 이곳 ‘수리수리협동조합’의 이승근(75) 이사장은 “복고가 유행이라서 그런지, ‘추억이 깃든 물건’이라며 카세트를 고쳐달라는 30~40대가 자주 찾아온다”며 “카세트테이프 소리는 시디나 엠피스리(MP3)와 확실히 다르다. 그 소리가 주는 느낌이 그리운지, ‘제발 고쳐달라’고 신신당부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카세트 수리비는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2만~3만원 수준이라고 그는 귀띔했다. 이 협동조합 사무실 바깥벽에는 “추억을 고쳐드립니다”라는 글이 붙어 있다.
마니아들은 스스로 카세트를 수리해서 쓰기도 한다. 송재훈씨는 “카세트테이프와 플레이어에 관심을 두다 보니, 수리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손에 넣은 고장 난 워크맨을 모두 분해하고, 부품을 직접 바꿔 끼워가며 방법을 깨쳤다. 워크맨 하나를 고치려면, 같은 모델의 기기가 하나 더 필요하다. 부품을 교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워크맨을 하나둘 사 모으고 고치다 보니, 이 일이 어느새 취미가 됐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과 외관 등이 온전한 워크맨만 300대가량 갖고 있어요. 부품을 충당하기 위해 사둔 워크맨도 수백대예요. 누군가에게는 쓰레기일지 모르겠지만, 제겐 보물이죠.”

서울 종로구 동묘시장에서 판매되는 중고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서울 종로구 동묘시장에서 판매되는 중고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10대들도 감성에 빠지다 ”이전처럼 완전히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

최근에는 카세트 열풍이 10대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엠피스리나 스트리밍, 유튜브 등으로 음악을 들은 세대지만, 카세트라는 매체가 오히려 ‘힙’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버지의 권유로 호기심에 들었다가 카세트의 감성에 빠지게 됐다는 김채원(16)양은 “카세트테이프는 옛날 물건, 가수들의 굿즈(기념품)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음악을 들어보니 스마트폰으로 들을 때와 음질도 다르고, 테이프가 돌아가며 소리를 내는 방식이나 카세트 모양도 신기했다”며 “이것으로 음악을 들으면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즐기는 것 같아서 좋다. 듣기 어렵고, 듣기 불편한 것이 오히려 매력”이라고 말했다.

카세트테이프 열풍은 계속될 수 있을까? 도프레코드의 김윤중 대표는 “스트리밍 시대에 카세트테이프가 음악을 듣는 주류 매체로 다시 올라설 수는 없겠지만, 독특한 괴짜들만 모으는 게 아니라, 이제는 음악을 즐기는 하나의 매체로 자리 잡은 것 같다”며 “최근 카세트테이프를 찾는 10대들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도 긍정적인 신호다. 카세트테이프가 이전처럼 시장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