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현금 없는 사회(캐시리스 사회)'가 이상적이지 않은 이유 4가지

디지털 결제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일까?

ⓒSOPA Images via Getty Images

‘현금 없는 사회’라는 개념은 오래 전에 나왔다. 직불카드도 신용카드처럼 사용처가 늘고 있고, 디지털 결제 옵션은 어느 때보다 다양해졌다. 이제 평범한 사람들이 현금을 만질 이유는 거의 없어졌다. 아마존고(Amazon Go:계산대와 계산원이 없는 세계 최초 무인 슈퍼마켓)가 현금 결제를 없앤 방식은 너무 혁신적이어서 ‘현금 없는 사회’가 머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현금 아닌 지불수단은 더욱 필요해졌다. “코로나19 시대에는 현금이 아닌 방식으로 결제하는 게 보다 안전하고 위생적이다. 직원과 고객간 접촉을 최소화하기 때문이다”라고 탈리(Tally)의 공인 재무 기획자 겸 전문가인 바비 리벨은 말했다.

이론적으로, ‘현금 결제 없는 사회’는 더 빠르고, 더 편리하고, 더 청결할 것만 같다. 과연 그럴까?

간편 결제 서비스도 점점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간편 결제 서비스도 점점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d3sign via Getty Images

현금 없는 사회의 좋은 점

현금 아닌 방식으로 결제하면 몇 가지 장점이 있다. 하나씩 짚어보자.

1. 디지털 결제는 보안을 강화한다

해킹이나 정보 노출의 위험이 있더라도, 현금을 소지할 때보다는 덜 위험하다. 

다음은 글로벌 금융 기술기업 볼란테 테크놀로지스의 비나이 프라브하카르 제품 마케팅 부사장의 말이다.

″보안에 대한 큰 우려에도 디지털 결제는 본질적으로 현금보다 안전하다. 현금은 분실하기 쉽고, 어디에 뒀는지 잊어버릴 수 있으며, 위조될 수 있다. 현금으로 이런 손실을 보면 사실상 회복이 어렵다. 디지털 거래는 다르다. 문제가 생기면, 신용카드 수수료를 돌려달라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보안도 여러 단계에 걸쳐 제공되며, 환불 받기도 현금보다 쉽다.”

2. 범죄 예방 효과가 있다

현금 아닌 결제는 대부분 결제한 사람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디지털 결제를 하면 돈세탁과 조세 회피가 훨씬 어렵다. 

비나이 프라브하카르 부사장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가장화폐는 예외다. 현금처럼 익명성은 보장하면서도 디지털 결제의 혜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가상화폐는 일상 거래에 사용되기보단 대부분 투자대상이다.”

”지출 명세를 추적하면 돈의 흐름이 명확히 보이므로 예산 편성이 수월해진다. 구매 증명서나 상품교환이 필요할 때 전자영수증을 사용하면 일 처리가 간편하다.”

3. 디지털 거래는 현금 거래와 달리 항상 정확하게 계산이 맞아 떨어진다

현금 거래는 계산이 비거나 잘못될 가능성이 높다. 작은 실수에도 매년 6200만 달러(739억7220만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

다시 프라브하카르 부사장의 말이다. 

″환경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지폐와 금속 동전은 종이나 구리, 아연, 니켈 같은 귀중한 천연자원으로 만들어진다. 그중 일부는 재생이 불가능하고 재활용 횟수도 정해져 있다. 디지털 거래는 환경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현금 거래를 위해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설치하거나, 은행을 만들 때 부동산을 확보해야 하는 문제도 현금 결제를 없애자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Westend61 via Getty Images

현금 없는 사회의 나쁜 점

‘현금 없는 삶’이 좋아 보일지 모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경제적으로 안정적일 때만 그렇다. ‘현금 없는 사회’가 오면 특정 계층은 큰 위험 부담을 떠안게 된다. 프라브하카르는 ”현금을 쓰지 않고 결제하는 방식의 장단점은 동전의 앞뒷면 같다”며 ”한 계층에게 유리한 방식이 다른 계층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1. 프라이버시 상실

금융 거래 내역을 숨기고 싶어하는 건 범죄자나 탈세자만이 아니다. 횡령이나 세금 사기를 저지르지 않더라도, 금융 거래를 비밀리에 해야 할 때가 있다. 

프로프라이버시의 레이 월시 데이터 프라이버시 전문가는 설명했다.

”현금 아닌 결제를 할 경우 잠재적 법적 혜택이 있는 건 분명하다. 동시에 금융기관과 은행이 개인 거래를 지속적으로 추적하거나 감시할 수 있게 한다. 이런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본의 흐름과 유동성은 물론 사람들의 구매 방식이 기록되어, 기관들이 이 정보를 개인을 파악하는 데 이용할 수 있다.”

기관들이 개인을 파악하는 것이 프라이버시를 보호하지 못하는 수준을 넘어 위험하기까지 한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에서는 특정 인물, 특정 그룹, 특정 인종에 대한 차별과 혐오에 이 정보가 잘못 사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궁극적으로 이런 정보를 통해 기관이 개인에 관해 편견을 갖고 차별하게 될 수 있다”고 월시는 설명한다. 

″중국에서는 정부가 금융거래내역을 감시하며 국가에 반대의견을 표명하는 사람들의 자유를 검열하고 제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구를 포함한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과 유사한 감시가 이뤄질 수 있다. 국가의 권위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는 거래는 단속의 대상이 될 것이다.”

2. 디지털 결제가 불가능한 사람들도 있다

″미래사회는 ‘현금 결제 없는 사회‘가 될 지 모르지만, 지금도 은행계좌나 신용카드, 직불카드, 스마트폰이 없어 디지털 결제를 못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은행 없는 사람들’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적절한 은행상품에 접근할 수 없는 대신, 수표의 현금화, 지급일 대출과 같은 부가 서비스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리벨은 설명했다.

FDIC는 2017년 현재 미국 전역에서 은행 계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가구가 약 840만 가구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들 중 은행을 신뢰하지 않아 일부러 계좌를 만들지 않은 가구도 있다. 하지만 은행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수료 없는 은행 계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수입과 자산이 없는 사람도,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은행이 폐점된 지역에 사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 흑인과 히스패닉계 가정이다. 

은행 산업은 이미 오랜 차별의 역사를 갖고 있다. ‘현금 결제 없는 사회’로 바뀌는 과정에서 다른 기업도 은행과 비슷한 차별을 할 수 있다.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방식은 소매업자와 식당들이 저소득 가정과 유색인종을 차별하고, 서비스를 더 비싸게 책정하거나 판매 또는 서비스를 거부할 우려가 있다”라고 리벨은 말했다.

3. 전반적인 소득 불평등 증가

불법체류자, 노숙자,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현금 결제 없는 사회’에 필요한 은행시스템이나 기술적 도구를 이용할 수 없다.

프라브하카르는 ”이런 분야에서 사회적, 문화적 진전 없이 돈만 사라져 버린다면, ‘현금 사용하지 않는 사회’로 바뀌는 것은 이들 중 다수가 처한 상황을 개선하기보다는 악화시킬 것”이라며 ″이러한 고려사항은 코로나바이러스 시대에 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디지털 결제 사용률이 높고 현금 사용이 적은 국가 중 상당수가 자본화된 사회복지체계를 갖고 있고, 소득 불평등이 낮다. 대표적인 예가 이미 ‘현금 없는 사회’가 현실화된 스웨덴이다.

4. 디지털 결제 회사에 지불할 수수료가 많아진다 

디지털 결제를 하면, 그 과정에서 금전적 이익을 얻을 당사자가 항상 한 명씩은 있다. 프라브하카르는 ”디지털 거래를 할 때 송신자에게 직접적인 비용 부담은 거의 없지만 수신자에게 비용을 부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비용에는 신용카드 수수료가 포함되며, 기업이 페이팔, 스퀘어3과 같은 디지털 결제 회사에 지불하는 수수료도 포함된다. 

″마진이 매우 낮고 거래량이 적은 업종의 소기업이 가맹점 카드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 수수료의 2~3%를 월세로 낼 수 있는지 없는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프라브하카르는 말했다. 하지만 그 수수료를 떠맡는 것이 사업주만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더 높은 비용이 고객에게 전가된다.

개인의 소비 규모가 더 커질 수도 있다. 연구에 따르면 신용카드로 돈을 지불하면 더 많이 소비하게 된다. ”현금을 사용하면 의도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을 막을 수 있지만, 신용카드는 종종 과소비할 가능성이 있다”고 리볼드는 말했다. 어떤 사람들에게 현금은 빚을 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보호막 역할을 한다.

ⓒWitthaya Prasongsin via Getty Images

 

현금 결제 없는 사회는 정말 가능할까?

미국은 아직 현금에 ‘사망 선고’를 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크레딧카드닷컴의 분석가 테드 로스만은 말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 따르면 지난해 10달러 미만 거래 중 절반은 현금이 차지했으며, 전체 거래의 약 4분의 1도 현금이 차지했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에도 ‘현금 결제 없는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은 역효과를 낳았다. 일부 소상공인들은 결제 속도를 높이려고 현금을 취급하지 않는 방식을 시도했다. 하지만 뉴욕시, 샌프란시스코, 필라델피아, 뉴저지 등 주요 도시와 주에서는 현금 사용권을 보호하기 위해 최근 몇 년간 현금 결제가 불가능한 점포를 금지했다. 매사추세츠 주에도 1978년 이후 이와 유사한 법이 있었다.

로스만은 팁을 주는 문화 때문에 미국인은 어느 정도 현금을 소지하는 습관이 있다고 말했다. 로스만의 말을 들어보자. ”신용카드, 직불카드, 모바일 결제 같은 새로운 방식은 현금결제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조적으로 사용될 때가 많다.”

”뉴욕시 같은 곳에서 주요 대중교통이 비접촉식 카드와 모바일 결제를 수용하는 건 사람들이 카드나 스마트폰으로 결제할 수 없거나 하지 않을 경우 현금 결제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유지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로스먼은 ”미국의 결제수단은 다른 나라보다 뒤처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우리의 시장은 복잡하고 규제가 심하다.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라고 로스만은 말했다.

‘현금 결제 없는 사회‘는 미국을 더 효율적이고, 편리하고, 심지어 위생적인 사회로까지 변화시킬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의 희생이 필요하다. 12살짜리 이웃이 잔디를 깎고 나면 20달러를 팁으로 건네는 행동, 길거리의 굶주린 사람에게 잔돈을 주는 행동 등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은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 것이다. 무엇보다 디지털 결제에 기록된 우리의 정보를 감시하는 ‘빅브라더’ 로부터 자치권을 유지하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허프포스트 미국판 기사를 번역, 편집했습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은행 #인종차별 #국제 #디지털 #코로나19 #금융 #경제 #비트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