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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에 나중은 없다 : 한국사회 '성소수자 혐오' 손 놓고 있는 사이 벌써 2명의 성소수자가 세상을 떠났다

“기갑의 돌파력으로 그런 차별을 없애버리고 살 수 있다” - 생전 변희수가 했던 말

변희수 전 하사는 성별정정 수술을 했다는 이유로 육군에서 강제전역을 당했다. 지난해 3월11일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군인권센터에서 만난 그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고 말했었다.
변희수 전 하사는 성별정정 수술을 했다는 이유로 육군에서 강제전역을 당했다. 지난해 3월11일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군인권센터에서 만난 그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고 말했었다. ⓒ한겨레

 

지난 열흘 새 2명의 성소수자가 세상을 떠났다. 성전환수술을 이유로 군을 떠나야 했던 변희수(23) 전 하사에게 “우리는 함께 살아갈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의 존재만으로 희망”이라고 연대의 편지를 썼던 김기홍(38)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이 지난달 24일 숨진 채 발견됐다. 그리고 열흘만인 3일 변 전 하사가 충북 청주시 집에서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고 한국사회의 차별적 시선에 맞섰던 성소수자의 잇따른 죽음을 ‘연이은 우연’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성소수자를 향해 배제와 혐오를 멈추지 않았던 한국사회 전체가 연쇄적으로 이어진 ‘사회적 타살’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유다.


‘강제전역’ 뒤 1년…인사소청·행정소송으로 이어진 지난한 싸움

자신의 소명이라 여겼던 군에 남기 위한, 또 군에 다시 돌아가기 위한 변 전 하사의 지난 1년여 싸움은 지난했다. 육군은 2019년 11월 타이에서 성전환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변 전 하사에게 심신장애 3급 판정을 내린 뒤 전역심사위원회에 회부했다. 변 전 하사는 법원에 낸 성별정정 허가 신청을 이유로 전역심사 연기를 요청했고, 변 전 하사의 긴급 구제신청을 받아들인 국가인권위원회도 심사를 3개월 연기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군은 지난해 1월22일 전역심사위를 열어 변 전 하사의 강제 전역을 결정했다. 변 전 하사는 전역 결정이 부당하다며 곧바로 육군본부에 인사소청을 제기했다. 그러나 군은 전역 결정 6개월만인 지난해 7월 군인사소청심사위를 열어 “전역처분의 위법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강제전역 취소 요청을 기각했다.

한 달 뒤인 8월, 변 전 하사는 대전지법에 강제전역 처분 취소를 위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행정소송을 알리는 기자회견장에서 변 전 하사는 “촛불혁명으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이 먼저다 슬로건을 걸었지만 성소수자 인권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때와 다르지 않다. 성소수자는 사람에 포함되는 게 아닌지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고 했다.

지난달 24일 숨진 채 발견된 김기홍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의 추모 그림.
지난달 24일 숨진 채 발견된 김기홍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의 추모 그림. ⓒ한겨레/김홍모 만화가 제공

유엔·인권위 “강제전역 부당” 권고에도 정부·국방부는 “적법한 행정처분”

정부는 국가인권위원회와 국제사회의 권고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지난해 7월29일 “변 하사의 전역은 일할 권리와 성 정체성에 기초한 차별을 금지하는 국제인권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정부는 답변서에서 ‘북한과 휴전 중인 상황’을 언급했다. “성전환수술을 받은 이들의 군 복무를 허용하는 결정은 북한과 휴전 중인 한국의 특수한 안보 환경에서 비롯된 전투준비태세 요건에 대한 영향, 사회적 합의 등 폭넓은 검토가 필요한 정책적 문제”라는 것이다.

전역심사 연기를 권고했던 인권위도 다시 움직였다. 인권위는 지난해 12월 전원위원회를 열어 성전환수술을 한 군인에게 남성의 심신장애 기준을 적용해 전역처분을 결정한 것은 인권침해라고 의결했다. 육군참모총장에게 전역처분 취소를 권고했고, 국방부 장관에게는 제도 정비를 촉구했다.

육군은 “인권위 판단은 존중하지만 전역 처분은 법규에 의거한 적법한 행정처분이었다. 행정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정작 행정소송은 피고인 육군참모총장이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으면서 소송 제기 반년이 지나도록 재판이 미뤄졌다. 인권위 권고가 알려진 2월이 되어서야 오는 4월로 첫 변론기일이 잡혔다. 그 사이 변 전 하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문홍식 국방부 부대변인은 4일 언론 브리핑에서 변 전 하사의 죽음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고 변희수 전 하사의 안타까운 사망에 대해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성전환자의 군복무 관련 제도 개선을 검토하느냐는 질문에는 “구체적으로 논의한 바는 없다”고 답했다.


정치권의 침묵, 배제와 혐오에 무방비로 노출된 트랜스젠더

변 전 하사가 지난한 싸움을 이어갈 때 정치권은 침묵했다. 오히려 최근 서울시장 선거 국면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예비후보가 “(퀴어 퍼레이드를) 보지 않을 권리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하면서 반동적 흐름이 다시 노골화했다. 다른 유력 후보들도 ‘사회적 합의가 우선’이라는 취지로 언급 자체를 꺼렸다. 김기홍 활동가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마지막 글에서 퀴어 퍼레이드를 둘러싼 논란을 두고 “우리는 시민이다. 보이지 않는 시민, 보고 싶지 않은 시민을 분리하는 것 자체가 주권자에 대한 모욕이다”라고 썼다.

정치권이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에 대한 만연한 혐오에 손 놓고 있는 사이, 이들은 학교·가족·직장을 가리지 않는 모든 영역에서 혐오, 차별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인권위가 지난달 9일 발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를 보면, 조사에 참여한 591명의 트랜스젠더 가운데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 또는 본인의 성별표현 때문에 차별을 겪었다고 답변한 이는 65.3%에 이른다. 학교수업 중 교사가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발언을 들었다는 응답자가 67%에 달했고, 구직활동 경험이 있는 469명의 응답자 중 성별 정체성 때문에 구직 포기 경험이 있다고 한 응답자는 57.1%(268명)였다. 숙명여대 법학부에 합격했으나 일부 재학생의 반발로 입학을 포기한 트랜스젠더 합격생 사례는, 한국사회에 ‘평범하게’ 자리잡은 성소수자 혐오가 분출된 하나의 사례로 볼 수 있다.

트랜스젠더 인권과 평등을 상징하는 깃발.
트랜스젠더 인권과 평등을 상징하는 깃발. ⓒ게티이미지뱅크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차별금지법 입법 논의는 한없이 더디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부터 20대 국회까지 7번 발의됐지만 모두 철회되거나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지난해 6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은 법안 소위에도 상정되지 못한 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묶여있다.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안을 준비 중인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종교계 등 반발로 법안 발의에 어려움을 겪다 최근에야 20여명 공동발의자를 모았다.

변 전 하사의 죽음은 벼랑 끝에 몰린 성소수자 인권에 ‘나중에’는 없다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환기한다. 그는 지난해 3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선두에서 혼자 싸우느라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기갑의 돌파력으로 그런 차별을 없애버리고 살 수 있다”고 씩씩하게 답했다. 그의 외로운 싸움에 한국사회가 마땅한 응답을 내놓지 않은 채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겨레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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