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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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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수현
  • 입력 2018.02.05 16:40
  • 수정 2018.02.05 16:41
ⓒhuffpost

동료가 퇴사했다. 3개월 인턴까지 합쳐도 1년이 채 안 되는 짧은 근무 기간이었다. 같은 해에 입사를 했다는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경력도 꽤 차이가 날뿐더러 부서 간의 거리도 있어 거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그런 그와 유일하게 마주치는 순간은 출근길,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였다. 단 둘이 타게 되는 날엔 ‘언제 밥 한 번 먹어야죠’ 입버릇처럼 기약 없는 약속을 했다. 그 말은 그에게도, 나에게도 조금이나마 거리감을 좁히기 위한 살가운 인사에 불과했다. 입사한지 이제 겨우 1년, 함께 할 시간이 많이 남아있을 줄 알았다.

″실은 저 1주일 뒤에 그만두게 됐어요.”

회사 생활 잘한다는 말을 자주 듣던 사람이라 그만두는 이유가 무엇인지 쉽사리 떠올리지 못했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나. 누구보다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게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아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아쉽다, 결국 밥 한 번 먹지도 못하고 헤어지네요’ 라고만 대답했다. 그것까지 묻기엔 여전히 먼 사이 같았다. 결국 나는 구체적인 이유를 전해 듣지 못했고, 그렇게 1주일 만에 그의 자리가 말끔히 정리됐다. 몇 개월밖에 함께하지 않은 나조차도 섭섭함이 느껴질 만큼. 

″사수가 김 차장이었잖아. 그 사람 모습이 자신의 10년 뒤라고 생각하니까 미련 없이 그만두고 싶어졌대. 그게 가장 큰 이유였다더라.”

보름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듣게 된 이유였다. 그의 사수였던 김 차장님은 이름만 들어도 분주한 발걸음, 한쪽 손에 서류를 잔뜩 든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었다. 첫 출근 날, 간단한 오티 조차 줄 시간이 없어 페이퍼로 대신했던 기억이 났다. 몇몇 사람들에 의하면 가장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사람이지만 그게 부지런해 보인다기보단 안쓰러워 보이는, 그런 사람이라고 했다.

″너희도 가끔 그런 생각 하지 않니. 나는 사수든 팀장님이든 그 사람의 삶이 내 미래가 된다면 어떨까 자주 상상해 보거든. 지금껏 세 군데에서 일해봤는데 아, 나도 10년 뒤엔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저렇게 산다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드는 사람은 딱 한 명 밖에 못 만났어. 그게 쉬운 일이 아니야. 단지 그의 삶이 부럽다, 그런 게 아니라 뭐라고 해야 하지. 꿈이나 동경 같은 거라고 해야 맞을 거 같아.”

꿈. 동경. 다행히 나도 경험해본 적이 있는 감정이라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조금 생소했다. 만약 내가 그 대상이 된다면 어떨까. 나는 그 말에 꽤 크게 상처받을 것 같았다. 동료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는 김 차장님은 그저 씁쓸한 미소만 지었다고 했다. 실제 그의 삶이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쓰디쓴 감정일 것 같았다. 그땐 알아차리지 못했던 동료의 미세한 표정, 무슨 의미인지 잘 알지 못했던 단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일이 재미없는 건 아니지만 후회는 안 해요. 조금도 미련 없어요.”

그의 말 뒤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강력한 무언가가 숨겨져 있었던 것 같았다. 더 이상 가까워질 기회가 주어지기 어려울 사이지만,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는 사람이지만, 종일 그의 지난날을 떠올려보게 됐다. 팔을 걷어붙인 채 서류를 들여다보던 모습, 사무실에 들어서기 전, 다시 한 번 옷매무새를 고치던 모습. 그날,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들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모습들이 잔상처럼 남아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가 꿈꾸는 대상이 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함께 일하는 누군가의 모습이 회사를 떠나는 이유가 되기보단, 더 오래오래 머물고 싶은 이유가 되어준다면 좋겠다. 행여나 그만두고 싶어 지더라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이유.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 그런 이유가 되어주고 있을까.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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