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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도, 한류도 넘어선 방탄소년단

방탄소년단의 성공, 데뷔 1년 후 브이로그에서 시작됐다

ⓒTime

지난 2013년, 매거진 에디터로 일할 당시 매니지먼트사로부터 신인 아이돌 그룹의 화보 인터뷰 제안을 받았다. 이름을 듣고 무슨 의미냐고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생소한 이름이었다. 속되게 말해서 팔리는 아이템이 아니었다. 이를 성사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만한 동기부여를 찾기도 어려웠다.

소위 대형 기획사라고 말하는 SM, JYP, YG 엔터테인먼트에서 기획한 아이돌 그룹이 아닌 이상 처음부터 크게 주목하지 않는 업계의 관성이 작동한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당장 크게 눈에 들어오는 그룹이 아니었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화보 인터뷰 진행은 성사되지 않았다. 며칠 전, 문득 그날 생각이 났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음반차트 1위를 기록할 것이라는 뉴스를 보면서 말이다. 그렇다. 그 신인 아이돌 그룹은 요즘 BTS라 불리며 전 세계적인 열광을 부르고 있는 방탄소년단이었다.

사실 그 당시의 결정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신인에게 투자할 지면의 가치를 확신하기 어려웠고, 그 이후로도 몇 년간 방탄소년단의 입지가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인상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이 처음부터 대단히 각광받는 아이돌 그룹은 아니었고, 데뷔 이후에도 몇 년 동안은 고만고만한 인지도를 가진 아이돌 그룹 정도로 치부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합이 딱 떨어지는 칼군무 실력이 대단하다는 인정을 받기도 했고, 힙합 콘셉트의 남성 아이돌로서 박력 있는 무대를 선보이는 것이 인상적이기도 했지만 딱 그 정도였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라는 중소 기획사 출신의 아이돌 그룹이란 점 역시 특별한 관심을 끌지 못하는 요인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당시의 방탄소년단은 독보적인 스타성을 지닌 아이돌 그룹이라 판단할 만한 근거가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은 지금껏 한국에서 등장한 아이돌 그룹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경력을 갖게 됐다.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뜨겁게 주목을 받는, 캐스팅 1순위 팝 아티스트가 됐다. 그러니까 이건 굉장히 독특한 케이스라는 것이다. 지금 방탄소년단이 받고 있는 주목과 환호의 결과라는 것이 말이다. 물론 방탄소년단의 성공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방탄소년단의 성공은 상당히 인상적인 결과다. 

현재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에서 아이돌 그룹을 기획하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나 그 주변에 있는 산업의 관계자들 그리고 이를 논하는 대중음악 관련 언론 종사자들 입장에서도 방탄소년단의 성공을 끊임없이 분석하고 논하는 것 역시 그래서일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세계적인 성공은 K팝으로 수렴하는 아이돌 그룹을 배출하고 있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결코 예측할 수 없었던 새로운 전형이자 사례이기 때문이다. 

2013년에 데뷔한 방탄소년단이 팬덤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고 감지할 수 있었던 건 2014년 무렵이었다. 가수의 음원 차트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예상 밖의 반응이 감지됐다. 방탄소년단은 포털사이트 상의 공식 블로그와 SNS 공식 채널을 통해 멤버 개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중계했다. 특히 브이로그라는 형식을 통해 멤버 개인마다 사소한 일상과 생각을 전달하는 방식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이라는 미디어 디바이스를 소유하고 어디서든 영상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지금 이 세계의 트렌드에 어울리는 마케팅 전법이라 할 수 있었다. 

동시에 TV나 기성 미디어에 노출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신인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잠재적으로 팬이 될 수 있는 대중과의 접점을 더욱 친밀하게 형성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서 적절했다. 동시에 TV 프로그램의 기획된 방향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게 자신들의 개성을 어필할 수 있다는 면에서 보다 매력적인 지점이 있다. 흥미로운 건 이런 방식이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지금을 만드는 반석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SNS를 비롯해 온라인 상에 콘텐츠를 만들어 유통한다는 건 자연스럽게 국경의 한계를 뛰어넘는 가능성으로 작동했다. 

ⓒMario Anzuoni / Reuters

방탄소년단은 2017년 5월 21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17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 참석했다.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까닭이었다. 이전까지 6년 동안 수상자로 호명됐던 저스틴 비버를 비롯해 셀레나 고메즈, 아리아니 그란데 등의 뮤지션들과 경쟁한 결과였다. 톱 소셜 아티스트 부분의 수상자가 되는 건 일종의 인기투표와 같다. 빌보드 차트에서 운영하는 ‘소셜 50’ 차트는 온라인 상의 SNS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를 선정하는 차트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의 SNS 상에서 얻는 ‘좋아요’나 팔로워 수, 조회수 등의 다양한 반응들을 집계해 산정하는 차트다. 이 차트의 수상자가 된다는 건 동시대에서 실시간으로 가장 많은 관심을 얻고 있는 아티스트로 인정받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는 방탄소년단이 꾸준히 온라인 상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 다채로운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주체가 돼서 팬들과 소통을 하고, 더 넓은 세상과 너른 접점을 만들어 나가고자 노력한 결실일 것이다. 심지어 세계 팝시장의 중심무대라 불리는 미국 시장에 진출하며 비틀스의 ‘브리티시 인베이전’에 비견되는 아이돌 그룹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현상은 일시적인 해프닝이라 간과할 만한 사건이 아닌 것 같다. 물론 방탄소년단이 비틀스에 견줄 만한 음악계의 성취라고 찬사를 바친다면 다소 지나친 일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방탄소년단이 현재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팝 차트에서 증명하고 있는 대단한 영향력은 기존의 K팝 시장조차도 상상하지 못했던 반향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는 K팝의 최전선에 놓인 아티스트의 범주에 놓고 방탄소년단을 규정하는 것이 그리 좋은 해석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존의 K팝 시장은 SM, YG, JYP 엔터테인먼트라는 3대 기획사에서 만들어낸 아이돌 그룹의 팬덤을 중심으로 형성된 시장에 가깝다. 국내에서 형성된 팬덤을 기반으로 해외 팬덤 개척에 나서는, 일종의 대기업식 제품 마케팅에 가깝게 진행됐다. 방탄소년단은 반대로 국내의 팬덤보다도 해외의 팬덤이 뚜렷하다고 느껴지는 것을 통해 역수입된 결과처럼 보인다. 비슷한 사례로는 2002년경 보아가 ‘No.1’을 통해 일본에서 얻게 된 대단한 인기를 바탕으로 국내에서 반향을 일으킨 것과 유사한 타입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은 이와 달리 국내와 해외 그 어디든 개방된 윈도를 통해 자신들을 어필할 수 있었다. 시대가 달라진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는 매니지먼트사에서도 자신들이 발굴해낸 아티스트의 미래를 견인해내고자 꾸준한 투자와 인내를 가져간 결괏값에 가깝다.

방탄소년단 역시 3대 대형 기획사를 비롯한 수많은 매니지먼트사들에서 기획된 아이돌 그룹들과 마찬가지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에서 기획된 아이돌 그룹이었다. 지금은 끝내 세계적으로 성공한 아티스트로 부상했지만 그들에게도 데뷔 초기 이후 몇 년 동안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닦아내야 했던 ‘피, 땀, 눈물’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방탄소년단의 성공을 통해 K팝의 비전을 논하거나 한류 시장의 성공을 지칭하는 이들을 보면 결국 이 시장이라는 것이 노력과 인내가 동원되는 과정이 아니라 반짝이는 결과로만 여겨지는 것인지 궁금하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이 과연 한국 대중음악계의 미래일까?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차트 석권이 K팝의 청사진일까? 방탄소년단의 성공은 성공적인 공식에 따라 산출된 결과가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방향을 좇아 이룬 성취에 가깝다. 물론 지금의 방탄소년단을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쏘아 올린 하나의 결실이라 여길 수는 있겠지만 방탄소년단의 성취는 오로지 그들만의 영광일 뿐이다. 그러니 방탄소년단이 그들 스스로 올라선 영광의 무대와 새로운 역사를 마음껏 만끽할 수 있길 바란다. K팝스타도, 한류스타도 아닌, 방탄소년단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매일신문>에 연재 중인 ‘민용준의 엔터인사이트’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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