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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3일 13시 58분 KST | 업데이트됨 2020년 12월 23일 14시 10분 KST

[팩트스토리] '케이팝의 아버지' 이수만이 없었다면 지금의 방탄소년단(BTS)도 없었다

SM에서 떨어진 박진영과 일한 방시혁, 그는 BTS를 탄생시켰다.

[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 시간의 극장
제25화 에스엠과 이수만|글 권석정 PD

이제 아무도 케이팝의 세계적인 영향력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케이팝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이수만 대표 프로듀서(이하 이수만)의 경영자로서의 삶은 수많은 의심, 그리고 편견과 싸운 투쟁의 역사였다. 케이팝 산업의 초석을 다진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이하 에스엠)의 이수만은 어떤 전략으로 음악을 제작했고, 또 그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어땠는지 한겨레 아카이브를 통해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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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2004년 10월21일 기사는 이수만에 대해 “이씨에 대한 평가도 ‘한류의 개척자’, ‘음악산업 황폐화의 주범’으로 엇갈린다”고 말한다. 그만큼 논란에 시달려온 제작자가 또 있을까? 케이팝 역시 마찬가지였다. 과거에는 케이팝이란 단어 자체가 대중의 반감을 샀다. 수많은 이들이 케이팝이 한국 가요계를 획일화시켰다고 손가락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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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에이치오티의 17년 만의 재결성 콘서트 현장. 당시 8만장의 티켓이 단숨에 매진되고 220만원 넘는 암표가 등장하는 등 기록적인 인기를 보여줬다. 누가 아이돌그룹은 수명이 짧다고 했는가? 김미나 기자가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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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에이치오티의 17년 만의 재결성 콘서트 현장. 김미나 기자 촬영. 당시 지면에 나가지 않은 사진을 처음 공개한다.

 

에스엠의 아티스트들은 그 인기만큼이나 비난에 시달렸다. 언론은 인정하기보다 의심했고, 기성세대는 그에 동조했다. <한겨레> 1999년 9월17일치 기사에서는 정규 4집 <아이야!>(I yah!)로 컴백한 에이치오티(H.O.T.)에 대해 “에쵸티는 늘 의도적이건, 아니면 우연이건 음반을 낼 때마다 표절 논란 등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일단, 이들이 이번에 불러일으킬 논쟁거리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명확해 보인다. 바로 일본 ‘비주얼 록’의 모방논쟁”이라고 언급했다.

당시 에이치오티의 콘셉트가 일본 비주얼 록과 닮았다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땐 그랬다. 에이치오티는 당시 발매하는 앨범마다 콘셉트 표절 논란, 립싱크 논란, 가창력 논란 등에 시달렸고 언론은 이를 늘 강조했다. 마치 언론의 표적이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에이치오티로 넘어간 것 같았다. 납득할 만한 비판도 있었지만 소모적인 논란거리도 많았다.

언론의 집중포화 대상이었던 에이치오티가 서태지와 아이들과 달랐던 점 중 하나는 ‘기획상품’ 논란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한겨레> 2000년 10월11일 기사에서는 “댄스그룹 에이치오티는 새 음반을 발표할 때마다 화제와 논란의 대상이었다. 분명 지금의 우리 가요계에서 높은 음반판매고를 기록하며 커다란 인기를 얻고 있지만 그동안 이들의 행보는 표절 논란과 철저한 기획상품이라는 비판으로 얼룩지곤 했다. 이것은 사실 여부를 떠나 에이치오티의 정체성에 의문부호를 던지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이 기획상품이라는 단어는 기획사가 연습생을 발굴해 트레이닝시키고 프로듀싱, 매니지먼트까지 총괄하는 시스템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을 이수만은 ‘시티’(CT, Culture Technology)라고 설명한다. 지금은 이것이 케이팝을 완성해낸 스타 시스템이라고 칭송을 받지만 당시에는 분위기가 달랐다. 그때는 이 시스템이 가요계, 그리고 더 나아가 청소년 문화를 획일화한다고 비판을 받았다.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2011년 파리에서 열린 에스엠(SM)타운 라이브를 보러 온 팬들. 이들은 공연 시작 5시간 전부터 공연장인 르 제니트 드 파리 앞에 모여 있었다고 한다. 소녀시대,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샤이니 등이 무대에 올랐다. 현지 언론은 ‘예매 시작 15분 만에 이틀치 1만4천여석의 입장권이 매진됐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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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만은 에스엠을 둘러싼 여러 논란을 뒤로하고 90년대 후반부터 중국 시장을 노렸다. 케이팝 한류의 초석이었다. 이수만은 2001년 10월2일 한겨레신문 경제주간지 <이코노미21>에 기고한 글에서 “2000년 2월에 처음으로 H.O.T가 중국 베이징의 공인체육관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었을 때, 이미 필자는 한류 열풍이 결코 거품만은 아님을 체감할 수 있었다. 당시 H.O.T의 베이징 콘서트를 보러 온 중국의 청소년들은 하나같이 한국어로 H.O.T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리고 그들은 가방에 태극기와 H.O.T 사진을 함께 달고 다녔다. 놀라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놀랍게도 이수만은 십수년 뒤 케이팝의 영향력이 지금처럼 아시아를 거쳐 세계로 확장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했다. 그는 2004년 10월21일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90년대 중반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내한 공연에 열광하는 청소년들을 보면서 우리 가수가 외국에 가서 인기를 얻을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미국은 시장이 크지만, 정서가 너무 다르고 인종적인 한계가 있다.

그래서 아시아, 특히 동북아시아로 눈을 돌리게 됐다. 한·중·일을 합치면 15억이 넘는 시장 규모다. 미래는 역시 중국 시장이 아닐까 생각했다. 동북아 시장만 합쳐도 15억 인구가 있다. 아시아에서 1등이 세계에서 1등이 될 날이 올 것”이라고 장담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수만이 그린 케이팝의 장밋빛 미래에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현실은 어떤가?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듯이 케이팝 아티스트가 월드투어를 돌고 빌보드차트에 오르는 세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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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만 성공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이수만은 그 경쟁력의 요체가 시티라고 정의했다. 시티는 캐스팅, 트레이닝, 프로듀싱, 마케팅 등을 하나의 기획사가 총괄하는 에스엠의 시스템으로 이수만은 에이치오티를 제작할 때부터 시티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시티와 같은 스타 시스템이 기존에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찍이 60년대에 미국 디트로이트의 ‘모타운레코드’는 포디즘의 영향을 받아 기획사 자체 프로덕션팀, 세션팀, 뮤지션 관리체계를 수립하고 ‘모타운 사운드’라 불리는 음악들을 제작해 차트를 휩쓸었다. 지금 아이돌 그룹의 원조로 여겨지는 슈프림스, 잭슨 파이브 등이 모타운을 통해 데뷔했다. 한국에서도 김완선이 매니저 한백희에 의해 어렸을 때부터 훈육을 받고 화려한 퍼포먼스로 데뷔해 가요계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전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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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으로 컴백해 인터뷰 중인 ‘아시아의 별’ 보아.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아 새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보아는 일본에서 대성공을 거뒀으며 이때 쌓인 노하우는 훗날 에스엠에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정용일 기자가 찍었다.

 

이수만과 에스엠이 대단한 것은 그 스타 시스템을 체계화해 1996년부터 현재까지 사반세기 동안 가요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하나의 기획사가 이렇게 오랫동안 엔터테인먼트를 좌지우지한 적은 없었다. <한겨레21> 2000년 9월7일 기사에서는 “70년대 지구레코드, 80년대 동아기획, 90년대 SM 이런 회사들이 나름대로 가수 발굴하고, 관리까지 하는 데는 잘한 케이스인데 SM의 문제는 잘한 게 문제가 된다는 점”이라고 언급했다. 에스엠은 자사의 스타 시스템을 통해 에이치오티, 에스이에스를 시작으로 신화, 보아,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에프엑스, 엑소, 레드벨벳, 엔시티(NCT)에 이르기까지 매머드급 아이돌 그룹을 꾸준히 배출해 가요 시장을 독점하고 해외로 나가 성공을 거뒀다. 마치 ‘월트디즈니컴퍼니’가 자신들만의 아이피(IP, 지식재산권)를 창조해 거대한 왕국을 건설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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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 멤버들이 2018년 강원도 평창 메인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폐막식 관련 기자회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엑소의 멤버 카이는 평창 올림픽 폐막식에서 독무를 펼쳐 주목받기도 했다. 박종식 기자가 찍었다.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평양의 냉면 전문점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고 있는 레드벨벳. 당시 레드벨벳은 조용필, 이선희 등과 함께 남북평화 협력 기원 남측예술단으로 평양에 건너가 공연을 했다.

 

이수만. 그는 현재 전세계 대중음악계에서 강력한 팬덤을 거느리고 있는 케이팝 산업의 정점에 서 있는 경영자이자 케이팝 제작 시스템의 기틀을 세운 프로듀서다. 현재 케이팝 아티스트들은 아시아를 넘어 전세계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중 최선두에 위치한 방탄소년단(BTS·비티에스)은 최근 세계 대중음악의 정상을 상징하는 빌보드차트 1위를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이를 바라보는 이수만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과거 에스엠 오디션에서 떨어진 박진영을 통해 가요계로 입성한 방시혁이 키운 아이들이 자신의 꿈이었던 세계 시장 정상에 오른 것을 보고 이수만은 대견스러웠을까? 아니면 선수를 빼앗긴 기분이었을까? 한가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이수만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비티에스의 성공도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 25화 해설자인 권석정 PD는 카카오M의 케이팝채널 원더케이(1theK)에서 음악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본인등판>, <차트 밖 1위>, <좌표인터뷰> 등의 콘텐츠를 제작했습니다. <텐아시아>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전문기자로 활약한 바 있습니다.

▶ 팩트스토리는 전문직·실화 소재 웹소설·웹툰 및 르포 논픽션 기획사입니다. 저널리즘 바깥으로 확장하는 실화를 추구합니다.


<한겨레>가 지령 1만호를 맞아 ‘시간의 극장-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선보입니다. 33년 사진, 기사, 지면 이미지 등의 아카이브를 활용하여, 중요 사건과 인물을 현대사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입니다. 해당 주제를 잘 아는 해설자가 관련 한겨레 사진과 기사를 선정하고 독자에게 해설합니다. 소개된 적 없는 비컷(B-cut) 사진도 발굴하여 공개합니다. 르포, 전문직 소재 웹소설 기획사 팩트스토리가 기획하고 한겨레와 공동으로 제작합니다. 시즌3인 25~36화는 주로 기업·기업인 이야기로 꾸몄습니다. 주간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