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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가 '설국열차' 25분 잘라내려던 하비 웨인스타인에게 한 말

영어로 읽으면 더 즐겁다

  • 박수진
  • 입력 2019.10.11 11:38
  • 수정 2019.10.11 13:05
ⓒChung Sung-Jun via Getty Images

영화 ‘기생충’이 오늘 11일 미국에서 개봉한다.

관련 행사를 위해 방미한 봉준호 감독을 하루 동안 동행한 벌쳐가 긴 인터뷰 기사를 냈다.

봉 감독은 인터뷰에서 ‘영향력이 큰 한국영화가 왜 지금까지 오스카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 같냐’는 질문에 ”생각해보면 별 일 아니다. 오스카는 로컬 영화제.”(“The Oscars are not 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They’re very local.”)라고 간단한 사실로 대답하며 미국인들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성범죄가 폭로돼 영화계에서 퇴출된 전 ‘거물’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과 일한 경험담도 여럿 공개했다.

봉 감독에 따르면 2013년 당시 ‘설국열차’의 미국 배급을 맡은 웨인스타인은 배급 전 영화 편집을 요구했다. 최종본에서 25분을 잘라내고 크리스 에반스(전 캡틴 아메리카)가 등장하는 액션 장면을 더 넣자고 주장한 것이다.

잘라내자는 부분에는 진압군이 도끼로 생선의 배를 가르는 장면도 포함돼 있었다. 그때까지 항상 본인이 만든 ‘디렉터스 컷’(감독 버전)만 개봉해왔던 봉 감독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웬 생선? 액션이 더 필요해!”

”하비, 이 장면은 나한테 너무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무슨 의미?”

”개인적인 거예요. 제 아버지가 어부였거든요. 이 장면은 아버지에게 바치는 거예요.”

”아. 봉, 미리 말하지. 가족이 가장 중요하지. 이 장면 놔둬도 돼요.”

고맙다고 했지만 그것은 XX 거짓말이었다. 아버지는 어부가 아니었다. (“I said, ‘Thank you,’” Bong says, laughing. “It was a fucking lie. My father was not a fisherman.”)

- 벌처(2019년 10월 7일)

이때의 경험 때문인지 봉 감독은 한국 개봉 당시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진압군 등장이) 감독의 개인사를 녹인 장면이냐”는 질문에 ”생선 말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여러 인터뷰에서 이 장면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봉 감독은 ‘곧 피의 축제가 시작된다고 쇼잉하는 것’, ‘종교 의식과도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웨인스타인: “Why fish???”]

웨인스타인과 실랑이를 벌인 에피소드는 더 있다. 웨인스타인이 편집한 버전의 시사회 평가가 좋지 않아 내심 기뻤다는(“On the inside, I was happy that the scores were bad”) 봉 감독은 곧 좌절해야 했다. 웨인스타인이 평가가 좋지 않으니 그럴수록 더 많은 대화 장면을 잘라내야한다고 결론을 내렸다는 것.

이 과정에서 개봉이 1년 가량 늦춰지면서 당시 미국 내 봉 감독의 팬들은 “Free Snowpiercer”(설국열차를 해방하라)는 온라인 운동을 하기도 했다. ”미국인으로서, 미국 관객들은 아시아 감독의 드라마틱한 걸작을 이해하지 못 할 거라는 웨인스타인의 모욕을 참지 않겠다”는 내용의 청원 글도 등장했다.

봉 감독은 그 과정을 ”블랙코미디 같았다”고 회상했다.

이게 다른 사람의 영화여서 이 상황을 다큐멘터리로 찍으면 정말 웃기겠다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내 영화였다. (“If this was someone else’s movie and you were making a documentary of the situation, it would be really funny. Unfortunately, it was my movie.”) 

- 벌쳐

봉 감독이 편집한 버전의 시사회 평가가 더 좋자 결국 미국에서도 최종적으로 봉 감독 버전 개봉이 결정됐다. 미국 전역 개봉 대신, 소규모 개봉이었다.

어쩌면 웨인스타인에게는 자기가 원하는대로 따르지 않는 영화인에 대한 벌 주기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우리는 모두 기뻤다. 예! 디렉터스 컷! (“Maybe for [Weinstein], it was some kind of punishment to a filmmaker who doesn’t do what he wants,” says Bong. “But for me, we were all very happy. Yeah! Director’s cut!”)  

- 벌쳐

봉 감독은 이후 차기작인 ‘옥자’를 ’100% 디렉터스 컷’을 보장한 넷플릭스와 손잡고 만든 바 있다.

 

박수진 에디터 sujean.park@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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