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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만년 전 인류에 침입한 겨드랑이 냄새의 주범을 찾았다

액취증 유발의 필요충분조건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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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사진 ⓒDeagreez via Getty Images

 

더운 여름철이나 격렬한 운동을 하고 나서 땀이 몸에 배일 때면 유난히 겨드랑이에서 거북한 냄새가 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드물지만 서구에서는 아주 흔하게 접할 수 있다고 한다. 불쾌감을 주는 이 냄새는 어떻게 호모 사피엔스 종의 특성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게 됐을까? 영장류 동물의 6천만년 진화사 속에서 그 비밀을 들여다본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액취증(osmidrosis axillae) 또는 ‘암내’, ‘겨드랑내’(Body odour)라고 불리는 이 증상은 땀 자체에서 나는 게 아니다. 인체에는 두 종류의 땀샘이 있다. 하나는 전신 피부에 분포돼 체온을 식혀주는 기능을 하는 에크린 샘, 다른 하나는 모낭과 겨드랑이, 젖꼭지, 사타구니 등 특별한 부위에 있는 아포크린 샘이다.

이 가운데 아포크린 샘에서 분비되는 땀이 피부 표면의 세균에 분해되면서 나는 냄새가 바로 겨드랑내다. 이 세균의 이름은 포도상구균의 일종인 스타파일로코쿠스 호미니스(Staphylococcus hominis)다. 이 세균이 분비하는 티오알코올(thioalcohols)이 바로 휘발성 지방산과 함께 겨드랑이 악취를 내는 핵심 물질이다.

겨드랑이 냄새의 화학적 형성 과정
겨드랑이 냄새의 화학적 형성 과정 ⓒ한겨레

 
범인 수색해 범인이 쓴 도구까지 찾아낸 성과

과학자들은 그러나 지금까지 이 세균이 티오알코올을 만들어내는 메카니즘은 확인하지 못했었다. 범인은 알아냈으나 범인이 쓴 도구는 찾지 못한 격이다. 영국 요크대 연구진이 마침내 꽁꽁 숨겨져 있던 그 도구를 찾아냈다. 그 도구는 바로 ‘시스테인-티올 리아제‘(C-T lyase)라는 효소다. 요크대는 보도자료를 통해 과거 이 세균을 범인으로 지목했던 바로 그 연구진이 도구까지 찾아냈다고 밝혔다. 생활용품 대기업 유니레버의 과학자들과 협력해 범인을 샅샅이 수색한 결과다. 연구진은 이 ‘비오 효소(BO enzyme)’로 명명했다.

연구진은 겨드랑이의 아포크린 샘에서 분비돼 나오는 ‘Cys-Gly-3M3SH’이란 화합물을 이 효소가 티오알코올류인 ‘3M3SH’로 바꿔주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를 이끈 개빈 토머스(Gavin Thomas) 교수는 “이 세균이 ‘Cys-Gly-3M3SH’ 분자를 입에 넣은 뒤 앞부분만 삼켜버리고 나머지는 뱉어버리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겨드랑이 냄새의 핵심 분자”라고 말했다.

세균 안에서 이 임무를 수행하는 물질이 바로 비오 효소다. 연구팀은 액취증을 유발하는 이 효소를 겨드랑이에 서식하는 미생물 군집의 다른 세균들에 주입한 결과, 이 세균들에서도 예외없이 악취가 나는 것도 확인했다. 이 효소가 바로 겨드랑이 냄새의 필요충분 조건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곡비원류와 같은 모양의 개 코(왼쪽)와 직비원류에서 진화해온 사람의 코
곡비원류와 같은 모양의 개 코(왼쪽)와 직비원류에서 진화해온 사람의 코 ⓒ한겨레


사회적 소통 도구의 하나로 활용했던 듯

연구진은 이어 계통발생학, 생화학, 구조생물학 기법을 활용해 50여종에 이르는 포도상 구균들의 유전적 관계도 분석했다. 그 결과 잠정적으로 이 효소가 약 6천만년 전 일부 포도상구균에 최소한 세 번에 걸쳐 수평 유전자 이동을 한 뒤, 이 가운데 하나가 인간의 조상 집단한테서 티오알코올을 만들어내는 효소 작용을 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 시기는 영장목에서 여우원숭이 등이 포함된 그룹(Strepsirrhini, 곡비원류 아목=코가 둥그렇게 말림)과 안경원숭이, 유인원류(인간)가 포함된 그룹(Haplorhini, 직비원류 아목=코가 쭉 뻗은 형태)으로 갈라지던 때다.오늘날에도 사람과 유인원의 겨드랑이엔 비슷한 미생물들이 많다.

그렇다면 겨드랑이 냄새는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어떤 이점 때문에 자연선택의 압박을 이겨내고 오늘에 이른 것일까? 확실한 근거는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연구진은 이는 이 겨드랑이 냄새가 인간의 조상들의 사회적 소통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아포크린 샘이 사춘기 무렵부터 비오효소가 작용하는 화합물을 분비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2014년 발표된 한 연구는 고릴라 집단에서 동료들에게 ‘물러나라’ 같은 신호를 보내는 수단으로 역한 냄새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토마스 교수는 영국 일간 ‘가디언’ 인터뷰에서 ”이 효소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진화와 함께 했다. 따라서 이것이 인간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상상해도 터무니없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이후 등장한 겨드랑이 냄새 탈취제는 수천만년을 버텨온 물질이 이제는 쓸모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는 걸 말해준다.


액취증 유발 효소 겨냥한 표적 치료제 개발 기대

논문 공동저자인 유니레버의 고든 제임스 박사는 이번 연구에 대해 ”진짜로 눈이 번쩍 뜨이는 연구 결과”라며 ”액취증 유발 효소가 수천만년 전부터 겨드랑이 세균에 존재해 왔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발견”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액취증 치료제나 땀 배출 억제제 등의 개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액취증 유발 세균 속의 효소만을 표적으로 한 새로운 약물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는 공개 과학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 7월27일치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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