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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03일 16시 40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5월 03일 16시 40분 KST

내가 한국의 통일을 바라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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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눈 멀쩡한 사람들에게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으면 어떨까에 대해 물어본다면 온갖 끔찍한 상상을 다 할 것이다.

칠흑처럼 어두운 공간에 옴짝달싹 하지 못하고 갇혀있는 스스로를 그려보기도 하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보지 못하는 괴로운 감정들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무엇보다 어제까지 혹은 몇 시간 몇 분 몇 초 전 까지만 해도 할 수 있었던 것들 중 대부분 어쩌면 전부 다를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감정은 실명이라는 작은 변화를 괴기영화보다 더한 공포의 감정으로 몰아가는 극적 효과를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상을 강요받은 그 어떤 누구도 실제로 시력의 상실하게 되었을 때는 본인의 무서운 예상들보다는 적어도 훨씬 나은 상태임을 알아차리는 데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남쪽 절반쯤에 살고 있는 사람의 경우는 분명히 그럴 것이다.

나의 글을 수년간 읽어온 분들이라면 알고 있다시피 내 삶에서 시력이 없는 상태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은 내 삶의 시간들을 빽빽이 채우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많다.

abalcazar via Getty Images

혼자 밥을 먹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는 기본적인 생활에서부터 책을 읽고 공연을 보는 나름 교양 있는 활동들에 이르기까지 난 남한인구의 평균수준을 넘어서는 질 높은 삶을 누리고 있다고 자부한다.

혼자 길을 찾고 여행을 다니고 교사라는 번듯한 직장생활까지 하면서 내게 시각장애는 불편함이긴 하지만 불가능의 영역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시력의 상실이라는 사건이 그다지 반가운 이벤트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적어도 삶의 대부분을 절망으로 채워 가야 할 만큼의 최후심판이 아니라는 것은 나의 온 몸에서 뿜어 나오는 에너지들로 증명할 수 있다.

사실 내 감정들과 사는 모양이 이렇게 평안하고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이 아무런 과정 없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처음 시각장애라는 확정선고를 받았을 때 그리고 꽤나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의 내 감정 그리고 내 삶의 모양은 보통 사람들의 상상 속 시각장애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작은 집안에서 화장실을 찾아 가는 것도 용기가 나지 않았고 책을 읽거나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은 상상으로도 그려지지 않는 우주 밖 이야기였다.

재활기관에서 교육을 마친 선배 시각장애인들의 당당한 삶을 직접 목격하고 나서도 저 분들은 조금이라도 보이는 게 분명하다고 의심하기도 했고 점자를 배우고 독립보행을 훈련받으면서도 확신 있는 도전 이라기보다는 눈을 치료하는 동안의 잠깐의 경험이라 여기고 스스로를 위로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컴퓨터를 배우고 점자가 익숙해지고 다양한 교육들을 접하면서 난 좌절이라는 단어를 서서히 지워가기 시작했다.

의지를 가지고 잊었다기보다는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설렘과 도전이 그런 부정적 감정들로부터 자연스레 나를 건져내었던 것 같다.

카세트테이프로 녹음된 수만권의 책들은 실명 이전보다 오히려 내게 더 많은 양의 독서시간을 선물해 주었고 점자가 익숙해지는 어느 순간부터는 불이 꺼진 곳에서도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별것 아닌 것처럼 생긴 하얀 지팡이는 마법이라도 부리는 듯 나를 세계 방방곡곡으로 이끌어주었고 점자 정보단말기라는 작은 컴퓨터는 그런 시간들을 소리로 녹음하고 점자로 기록해 주었다.

화면을 읽어주는 컴퓨터 프로그램도 많은 정보들을 소리로 변환해서 보내주는 광학기구들도 눈 안 보이는 나의 삶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큰 차이 나지 않게 해주는 감사한 도구들이다.

기능을 상실한 두 눈과 20년 넘게 살면서 나를 도와주는 기구들은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발전해서 요즘은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다녀도 세상 정보를 환하게 들여다보는 것처럼 알 수 있게 되었다.

내 앞에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지금 영화관의 스크린에서 나오는 자막은 무엇인지까지 작은 전화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여전히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나의 삶은 하루가 다르게 나아지고 있고 그것은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의 진보만큼이나 무서운 속도로 나를 무장애의 길로 안내하고 있다.

요즘 tv를 보다보면 온통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한 이야기로 도배가 되고 있는 것 같다.

당장 휴전이 종전으로 바뀌고 철조망은 역사 저편으로 뜯겨져 나갈 것만 같다.

이유 없는 자존심으로 쓸데없이 존재하던 시차도 무너지고 무시무시한 핵미사일도 어쩌면 고철덩어리가 될지도 모르겠다.

뉴스의 앵커나 청와대의 높은 분들 말만 믿는다면 내일 아침 갑자기 통일이 되었다고 해도 크게 놀라지 않을 정도로 한반도는 급격히 평화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나를 비롯한 젊은 세대들은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도 아니어서 통일의 당위성에 공감하는 비율이 점차 줄어가고 있다고 들었다.

이산가족의 상봉문제도 북한의 자원과 남한의 기술력이 어쩌고 하는 문제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 공감하는 것은 점점 어려운 일이 되어가는 것 같다.

주변의 정세와 맞물려 우리의 통일은 그렇게 늘 될 듯 될 듯 안 되는 그런 것으로 여겨져 왔던 것 같다.

세 번째의 정상회담이 발표되었을 때 내가 느낀 솔직한 감정도 ‘통일까지야 가겠어’ 하는 의심의 감정이었다.

근간의 소식들을 보면 이번엔 뭔가 좀 다른 것 같기는 하다.

그렇지만 확신을 가지기에 우리는 너무도 많이 실망하고 또 속았다.

그런데 전쟁세대도 아닌 그렇다고 통일에 대한 확신도 강하지 않은 내가 그것을 바라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다르다.

북한에도 나처럼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어떤 도구의 도움 없이는 몇 발자국 걷기도 힘들 것 이고 우리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도 잘 알지 못할 것이다.

휴전선 너머의 그들의 모습은 보통 사람들이 스스로의 눈이 보이지 않았을 때를 상상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내게서 보조기기를 모두 빼앗아 갔을 때의 진짜 장애의 모습. 그들은 그렇게 힘든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른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북한 주민들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부분 왜곡되어 전해진다고 알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북한의 시각장애인들의 모습이 허구의 상상이고 왜곡이라면 너무나도 좋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너무나도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하루빨리 평범한 삶을 선물해 주고 싶다.

책을 읽는 방법도 뉴스를 보는 방법도 지루한 시간들을 설레는 기쁨으로 채우는 방법도 더 늦기 전에 전해주고 싶다.

통일! 그것은 이제 우리의 소원이라고 강요하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렇지만 불편한 삶을 사는 동포들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조금더 서둘러야 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완전한 통일이 아직 성급하다면 작은 왕래 만이라도 허락되었으면 좋겠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 좌절의 삶을 사는 북녘의 친구들에게 평범한 미소를 선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