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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4월 25일 14시 57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4월 25일 14시 57분 KST

'적폐 킬러'의 '쉴드 방송' -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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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적폐를 비판하던 자가 적폐를 닮아가다 스스로 적폐가 되는 예는 드물지 않다. <나는 꼼수다>(<나꼼수>)는 이명박 정권의 언론 장악으로 지상파 시사프로그램들이 고사됐을 때, 대안언론의 역할을 했다. 또한 ‘정치의 예능화’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며, 수많은 아류와 대항물을 낳았다. 팟케스트나 종편의 예능화된 시사프로그램들은 물론이고, 혹자는 ‘일베’ 역시 <나꼼수>의 거울상으로 출발한 것으로 꼽는다. ‘무학의 통찰’이니 ‘닥치고 정치’로 요약되는 반지성주의와 음모론적 시각, 팬덤 정치와 마초이즘 등이 궤를 같이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주류가 된 <나꼼수> 멤버들

<나꼼수> 멤버들은 이후 각자 팟케스트를 진행했고, 종편과 라디오를 거쳐 지상파 TV에 입성했다. 현재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SBS 라디오 <김용민의 정치쇼>, MBC TV <스트레이트>(주진우 출연), SBS TV <김어준의 블랙하우스>가 방송 중이다. <나꼼수> 행사를 기획하던 탁현민은 청와대에 입성했다. <나꼼수> 멤버들은 이제 주류가 되었으며, 아무도 김어준의 담론권력을 의심하지 않는다.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는 진행자 용모부터 파격적이다. 여성 아나운서의 안경 착용이 화제가 되는 세상에서 김어준의 수염과 폭탄머리는 개성으로 인정받는다. “나의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본질을 이야기하겠다”는 일성으로 출발한 프로그램은 석 달도 되지 못해 편파성 논란에 휩싸였다. 지상파 방송임에도 진영 논리에 갇힌 시각을 보여주거나, 심지어 친분에 의한 옹호로 공명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기 때문이다.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는 2월1일부터 여러 회에 걸쳐 매크로 프로그램 의혹을 다루었다. 1월17일 평창올림픽 관련 기사에 정부 비난 댓글이 달리고, 순식간에 추천수가 수만 개로 올라가는 사건이 일어났다. 네이버를 수사하라는 청와대 청원이 달리고, 더불어민주당과 네이버도 경찰 수사를 의뢰했다. 김어준은 방송에서 “정치적 목적을 갖거나 돈이 개입되거나 조직이 개입돼서, 뒤에서 누군가 시켜서, 혹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을 동원해서라도 이런 일을 한다면 중대한 범죄고, 반드시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옵션열기’를 언급하며, 전 정권의 댓글부대들이 아직 활동 중이라는 의혹을 제기한 김어준으로서 일관된 행보였다.

4월13일, 범인이 밝혀졌다. ‘안철수 MB아바타설’을 유포하는 등 오랫동안 온라인에서 ‘친문 활동’을 해온 ‘드루킹’이었다. 언론들은 드루킹이 7년간 유령출판사를 차려놓고 170대의 휴대전화와 30여 명의 인력을 활용해 밤낮으로 댓글작업을 해왔으며, 김경수 의원은 드루킹의 인사 청탁을 청와대에 전달했고, 청와대가 이를 거절하자 드루킹이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정부 비난 댓글의 추천수를 조작했다는 기사들을 쏟아냈다.

김어준의 반응은 수세적이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4월16일과 17일 드루킹의 ‘경공모’ 회원들을 인터뷰해, “‘경공모’가 사이비 혹은 다단계와 비슷했으며, 김경수 의원이 운 없게 연루된 것 같고, 대선 때는 글을 퍼날랐을 뿐, 매크로는 없었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사건이 선거법 위반과 부정선거로 확대되는 것을 막고, 드루킹의 망상적 면모를 부각하여 ‘개인적 일탈’로 봉합하려는 의도가 역력했다. 평소 김어준이라면, 3월21일 검거된 드루킹이 4월13일 언론에 공개되기까지 경찰은 왜 침묵했는지, 왜 김경수 의원과 관련된 내용은 제외한 채 검찰로 송치했는지, 지난 대선 직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드루킹 관련 제보를 받아 검찰에 수사 의뢰했으나 대선 후 무혐의 처리된 것과는 관련이 없는지에 ‘합리적 의심’을 품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어준은 송기헌 의원 인터뷰를 통해, 대선 직후 더불어민주당의 드루킹 고발 취하 요청을 둘러싼 의혹을 에둘러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바닥 드러낸 성의식

김어준이 진영 논리에 따라 ‘쉴드 방송’을 한다는 논란은 이뿐이 아니다. 사퇴 압력을 받던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을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시켜 삼성증권 사태에 대해 인터뷰한 것도 도마 위에 올랐다. 김기식에게 해명 기회를 주고 김기식과 삼성의 대결 구도를 부각하여, ‘재벌 개혁을 위해 김기식을 지키자’는 프레임을 만들려는 의도가 확연했기 때문이다. 김기식은 선관위의 ‘위법’ 판정으로 결국 낙마했다.

최악의 편파성은 정봉주 ‘쉴드’ 방송에 있었다. 3월22일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 김어준은 “정봉주와 특수관계인이라 발언이 조심스럽지만, 사실관계만 확인하겠다”며 특정 시간대 정봉주의 사진 780장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정봉주 주장과도 충돌하는 점이 있었지만, 마치 정봉주의 결백을 입증하는 증거인 양 제시되었다. 하지만 성추행은 그보다 늦은 시간에 일어났고, 결정적 증거가 발견되어 진실공방은 끝났다. 제작진은 사과했고, SBS 노사는 공정성에 문제가 있었음에 합의했다. 김어준이 친분 있는 정봉주를 옹호하기 위해 지상파 방송을 이용해 피해자를 ‘꽃뱀’으로 모는 2차 가해를 저질렀다는 비판이 일었지만, 김어준은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얼마 전 ‘미투 공작 발언’과 함께, 성폭력에 대한 김어준의 사고를 드러낸다.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의 성추행을 폭로했을 때 김어준은 응원했다. 하지만 이윤택 등으로 불이 옮겨붙자 ‘미투 운동’이 진보 진영을 공격하는 공작에 활용될 거라는 예언을 내놓았다. 피해자들을 위축시키고 2차 가해를 불러올 수 있는 몹쓸 발언이었지만, 김용민·손혜원 등은 이를 두둔했다. 그러곤 곧 예언이 실현되었다. 안희정·정봉주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면서 진영과 공작의 관점으로 성폭행을 보는 것이 어떤 해악을 초래하는지, 김어준과 지지자들은 몸소 입증해 보였다.

‘비키니-코피 사건’부터 <나꼼수> 멤버들의 성의식은 바닥을 보였다. 여성을 정치적 동지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 삼는다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김어준은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들도 성에 대해 주체적이어야 한다느니, 엄숙주의를 깨야 한다느니 하는 ‘맨스플레인’을 펼쳤다. 성평등의 관점을 결여한 채 성적 자유만 진보로 여기는 남성 리버럴리스트의 한계를 드러낸 반응이었다. 사건이 있기 전 김용민은 “여성들이 <나꼼수>를 통해 정치에 눈뜨기 시작했다”고 발언했다. 여성을 정치적 각성의 주체가 아니라,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는 도구나 계몽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고는 여전하다. ‘미투 공작 발언’이나 강유미의 포지션이 이를 말해준다.

불평등한 젠더 구도

강유미는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 ‘정알못’(정치를 알지 못하는 이)으로 설정됐다. 김어준과 SBS 기자의 설명을 들으며 초보적인 리액션을 하는 강유미는 일반 시청자의 눈높이를 대변하지만, 여기엔 젠더 구도가 깔려 있다. 강유미가 ‘무식하니까 용감한’ 포지션을 활용해 무모한 인터뷰를 감행하는 것은 때로 통쾌하지만, 그의 활약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는 김어준의 표정에 의해 불평등한 젠더 구도로 수렴된다. 2006년 <개그콘서트>의 ‘고고 예술 속으로’에서 황우석 사태를 기막히게 풍자했던 강유미가 당시 <딴지일보> 발행인으로 황우석을 옹호했던 김어준에게 ‘정알못’ 취급을 받는 젠더 구도야말로 아이러니의 극치가 아닐까. 김어준은 정치적으로나 성정치적으로나 점점 반동이 되어가지만, 이를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팬덤에 둘러싸인 채, 여전히 거악과 싸운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시대의 근심이다.

* 한겨레21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