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21년 05월 25일 16시 35분 KST

"정말 저 아이 엄마 맞아?" 흑인 여성인 나는 하얀 피부의 아기를 낳은 후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흑인 여성이 백인 남성과 결혼한 경우는 미국에서도 드문 편이다.

PHOTO COURTESY OF QUIANA GLIDE
저자와 딸 루나

흑인인 내가 하얀 피부를 가진 딸을 낳았다

나는 흑인이지만 남편은 백인이다. 우리가 딸을 임신했다는 걸 알았을 때 이런 목표를 세웠다. 우리 딸은 강하고 행복한 여성으로 키울 거다. 당연히 흑인과 백인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딸은 두 인종 모두를 닮았을 거라 믿었다. 또 흑인 머리카락을 갖고 태어나도 자신감 있길 바랐다. 나는 어릴 때 백인 기준의 미를 강요받았다. 흑인 머리카락에 콤플렉스가 있었지만 내 딸은 그렇지 않길 바라며, 흑인 아이가 주인공인 어린이 책을 미리 구입했다. 예전과 달리 흑인 전통 머리를 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책이 많은 게 흐뭇했다. 모두 내 딸이 자라면서 자신감 있는 여성으로 크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소셜미디어에서 흑인과 백인의 다인종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는 법을 검색했다. 인종 문제를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했다. 내 아이가 어떤 모습일지 너무 궁금했다. 아이가 나처럼 검은 피부를 갖고 태어날 거라고 확신했다. 물론 백인인 아빠 덕에 좀 더 밝은 색일 거라고는 생각했다. 보통 유전자상 아이가 검은 피부로 태어날 확률이 훨씬 높았다. 

하지만 딸을 처음 봤을 때 완전 백인 아이였다. 루나라고 이름 붙인 딸을 보며 자라면서 좀 더 피부가 검어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주위 흑인을 보면 피부톤이 조금씩 변화하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아이의 피부는 백인처럼 하얗기만 했다. 또 아이는 상상처럼 흑인 머리카락 대신 곱슬한 금발 빛이 섞인 갈색 머리였다. 루나는 임신 중 상상했던 귀여운 흑인 (좀 더 피부가 밝은) 아이가 아니라 그냥 백인 아이 같았다. 

우리 엄마는 ”흑인 아기를 낳길 원했다면 흑인 남자랑 결혼했어야지”라고 말했다. 나와 남편은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했다. 그럼에도 내가 낳은 딸을 보는 게 어색했다. 딸은 흑인인 나와 조금도 닮지 않았다. 집안에서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평생 소외된 감정과 싸워왔기에 이런 현실이 너무 힘들었다. 

 

조용한 성격으로 세일러문을 좋아했던 나는 흑인 사회에서도 소외감을 느꼈다

흑인으로 살면서 평생 인종차별은 물론이고 집안에서도 ‘흑인의 기준‘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우리 어머니는 강하고 자기주장 강한 흑인 여성이었다. 항상 조용하고 민감했던 나와는 정반대다. ‘일반 흑인’과 달리 어린 시절 세일러문을 즐겨보며 흑인인 게 싫었던 적이 있다. 흑인이 아니었다면 애니메이션을 즐겨도 놀림감이 되지 않고 락 음악도 마음껏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린 시절 나는 흑인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차라리 백인이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고 믿었다. 

대학생이 돼서야 흑인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됐다. 한 교수님이 ‘본인의 문화를 포용하라‘는 말을 했다. 그때까지 흑인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항상 흑인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꼈고 난 ‘이상하고 취향이 다른 사람‘으로 보였지만 그래도 흑인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흑인이라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 더는 그런 문제로 고민할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완벽한 백인’처럼 보이는 딸 루나를 낳기 전에 말이다. 

 

PHOTO COURTESY OF QUIANA GLIDE
"흑인 여성이 낳았다"라는 옷을 입고 있는 딸 루나

우리 가족이 사는 미시간주는 다인종 가족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백인 여성이 흑인 남성을 만나는 게 더 흔하고, 흑인 여성이 백인 남성을 만나는 건 드문 일이었다. 뒷말이 나오는 건 익숙했다. 그냥 무시하면 됐다. 남편도 이 사실을 알고 있고 그냥 우리끼리는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관련되면? 더 이상 무시하기 힘들었다. 

 

흑인이 피부가 하얀 아이를 안고 있으면 편견을 갖고 바라본다

흑인 여성이 백인(으로 보이는)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은 여전히 미국에서 논란이 된다. 아이를 데리고 나갈 때마다 불안하다. 이상하다는 듯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싫다. 전혀 닮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내가 낳은 아이였다. ”엄마는 널 사랑해.” 일부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딸에게 ‘엄마’를 강조하며 말하곤 한다. 다른 사람이 내가 이 아이의 엄마란 사실을 알아주길 바란다. 

남편에게 불안감을 말했고 그는 안심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남편과 함께 외출할 때는 그가 백인이기에 우리의 모습이 이상해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항상 남편이 곁에 있을 수는 없었다. 딸과 둘만 외출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 

한 번은 엄마와 루나 셋이서 장을 보러 갔다. 루나를 쇼핑카트에 앉히는 내내 한 나이 많은 백인 남성이 우리를 계속 바라봤다. 흑인 여성 두 명과 하얀 피부의 아이 한 명이 있는 모습은 그에게 매우 이질적으로 느껴졌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도가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쇼핑하는 내내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엄마는 그에게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겨우 말렸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었고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 

하지만 어린 루나는 이런 일에 당황하지 않는다. 인종과 상관없이 그저 아름답게 세상을 바라본다. 나와 남편의 눈에 딸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재밌고, 예쁜 아이다. 미래에 아이가 성장할수록 그와 피부색과 정체성에 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눠야 할 거란 걸 알고 있다. 우리는 현명하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루나는 겉모습과 상관없이 흑인이면서 백인이기도 하다.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PHOTO COURTESY OF QUIANA GLIDE
엄마의 어린시절과 딸 루나
 

우연히 어린 시절 내가 아기 때 사진을 찾았다. 그 순간 갑자기 눈물이 났다. 루나와 나는 피부색은 달랐지만 루나의 얼굴에서 어린 시절 내 모습이 보였다. 누가 봐도 내 딸이 맞았다.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며 사진을 보여줬다. 그는 웃으며 동의했다. 처음으로 딸에게서 내 모습을 본 순간이었다. 루나를 꽉 끌어안았다. 

 

*저자 퀴아나 글라이드는 미국 미시간주에서 가족과 살고 있다. 그는 사회적으로 어색한 흑인 소녀의 로맨스를 다룬 소설을 집필 중이다. 

*허프포스트 미국판에 실린 독자 기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