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의 역설 : 대도시에선 비닐봉지가 에코백보다 환경을 덜 오염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싱가포르 등 대도시에 초점을 맞춘 연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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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많은 사람들은 일회용 비닐봉지를 사용할 때 ‘죄의식’을 느낀다. 상점에서 사용이 법적으로 금지돼서이기도 하지만 환경을 오염시키는 ‘주범’으로 지목받아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대도시에서는 종이봉투나 천가방(에코백)보다 환경을 덜 오염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생분해 플라스틱’이라는 별명이 붙어 마치 뒤엄밭에 던져 놓기만 해도 저절로 썩을 것 같은 친환경 합성수지(PLA)도 사실 전문퇴비시설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싱가포르 난양대 연구팀은 19일 여러 종류의 쇼핑 가방들이 수명을 다할 때까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싱가포르처럼 대도시에서는 고밀도 합성수지로 만든 일회용 비닐봉지가 일회용 종이봉투나 재사용 천가방보다 환경을 덜 오염시킬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밝혔다. 연구팀 논문은 학술지 <청정생산>에 실렸다. 부직포 합성수지로 만들어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재사용 비닐봉지는 일회용 비닐봉지보다 더 친환경적이었다.

이는 천가방이나 표백하지 않은 크래프트지로 만든 황색종이봉투가 생산 과정에 지구온난화에 끼치는 영향이나 잠재적 생태독성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환경 오염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생산과 유통, 이동, 폐기물 수거, 취급과 종말처리 등에 대한 환경영향을 평가하기 위해 다섯가지 유형의 봉지에 대한 생애 전주기 분석을 했다. 연구 결과 일회용 황색종이봉투가 지구온난화 잠재력이 가장 커, 재사용 비닐봉지에 비해 80배나 됐다. 일회용 비닐봉지나 재사용 면가방(50회 사용)은 재사용 비닐봉지(50회 사용)에 비해 지구온난화 잠재력이 10배가 넘었다. 재사용 비닐봉지를 5번 이상 사용하면 한번 사용할 때 발생하는 오염물질 양이 일회용 비닐봉지보다 적었다.

연구팀은 면가방과 황색종이봉투의 환경영향 평가가 부정적으로 나온 것은 생산 과정에 막대한 양의 물과 천연자원이 투입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생산 방법을 개선하고, 자원 활용을 최적화하며, 지속가능한 사용법 등을 찾아내야 미래에 면과 종이로 만든 가방의 사용이 유리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연구팀은 자신들의 분석이 싱가포르라는 특정 지역에 국한된 것이고, 확대 적용해도 도쿄나 홍콩, 두바이처럼 인구 고밀도 도시 정도가 될 것이라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의 연구는 종말소각시설과 같은 쓰레기처리 체계가 갖춰진 인구고밀도 대도시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재사용 또는 일회용 비닐봉지는 이들 도시에서만 상대적으로 친환경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싱가포르 난양공대 그레고르츠 리사크 교수(가운데) 등 연구팀은 폐기물처리시설이 잘 갖춰진 대도시에서는 일회용 비닐봉지가 일회용 종이봉투나 천가방보다 더 친환경적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싱가포르 난양공대 그레고르츠 리사크 교수(가운데) 등 연구팀은 폐기물처리시설이 잘 갖춰진 대도시에서는 일회용 비닐봉지가 일회용 종이봉투나 천가방보다 더 친환경적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논문 주저자인 그레고르츠 리사크 난양대 교수는 “50번 넘게 재사용할 수 있는 비닐봉지가 가장 효과적이지만, 놀라운 것은 일회용 비닐봉지라도 사후에 적절하게 처리를 한다면 다른 종류의 제품들에 견줘 환경적으로 해롭지 않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플라스틱 폐기물을 처리하는 문제에서 사례별로 의미를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종말소각시설이 잘 갖춰진 대도시의 폐기물 관리 체계 아래서는 자연환경에 폐기물을 유출하지 않는 한 비닐봉지 사용이 현재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싱가포르의 경우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을 억제하기 위해 재사용 비닐봉지 사용을 권장하는 것이 좋다고 제안했다. 일회용 비닐봉지의 재처리 또한 환경영향을 줄이기 위한 좋은 정책이다. 싱가포르에서는 2018년 상점의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을 절반까지 줄여 연간 1천만CO₂㎏을 감소시켰다.

한편 화석연료 유래의 플라스틱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생분해 플라스틱’이나 종이그릇도 처리 시설이나 재활용 체계가 갖춰지지 않으면 오히려 환경 부담이 커진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미국 조지아대 신소재연구소 제이슨 로클린 소장은 “‘생분해’나 ‘퇴비화가 가능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제품들은 오직 특정 조건 아래서만 분해가 되는 것이어서 이들을 포장재로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재활용 사업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며 “소비자뿐만 아니라 많은 과학자들도 헷갈리고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생분해 플라스틱으로 만든 수저들
생분해 플라스틱으로 만든 수저들

흔히 옥수수의 전분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든 친환경 수지인 폴리젖산(PLA)으로 만드는 이른바 ‘옥수수 플라스틱’은 병이나 일회용 수저, 포장용 랩, 그릇 등 제조에 두로 쓰인다. 생김새는 석유제품 플라스틱과 유사하지만 폴리젖산은 주로 옥수수에서 추출하며, 사탕무나 카사바, 사탕수수 등 다른 작물들로 만들기도 한다.

제품에 붙어 있는 ‘PLA’라는 표시는 종종 “퇴비화가 가능하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뒤뜰에 있는 두엄밭에 그냥 던져 두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들 제품을 제대로 분해시키기 위해서는 전문퇴비시설이 필요하다.

퇴비시설에서는 높은 열을 가해야 하고 정밀하게 수분 조절을 해야 한다. 이런 시설이 있는 나라들은 많지 않다. 더욱 나쁜 상황은 PLA 제품들이 다른 재활용 플라스틱 용기들과 똑같이 생겼다는 것이다. 페트병이 PLA 재활용 공정에 섞여들어와 시스템을 망쳐놓을 수 있고, 반대로 PLA 제품이 퇴비처리되지 않은 채 쓰레기매립지에 버려지면 아주 오랜 기간 썩지 않은 상태로 있게 된다.

코카콜라, 칼스버그, 앱솔루트 등은 플라스틱병을 대체하기 위해 종이용기 사용을 검토하고 있다. 이 대체 용기가 종이로 남아 있는 한 재활용이 가능하겠지만 문제는 용기 틀을 만들기 위해 플라스틱이나 포일 등이 포함된 여러 소재 층을 만든다는 데 있다. 이론적으로는 각 층을 분리해 종이만 재활용할 수는 있겠지만 ‘누가 소를 키울지’는 모른다.

박테리아가 생산하는 ‘폴리히드록시알카노에이트’(PHA)는 생분해성 측면에서 요즘 각광을 받고 있다. 피에이치에이는 바닷물 속에서 몇 년 안에 분해되는데, 일반 플라스틱이 450년 걸리는 것에 비하면 극히 짧은 기간이다. 일부 연구자들은 피에이치에이 덕에 쓰레기매립장이 사라질 수 있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피에이치에이를 경제적으로 양산하는 데는 뛰어넘어야 할 기술적 장벽들이 있다.

미국 조지아대 환경공학과 교수인 제너 제임벡은 ”세계가 처리해야 할, 급증하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수단으로서 생분해성 소재들은 충분히 여지가 있다”며 “일회용과 재활용에 대한 계획 없이 단지 친환경적으로 보이는 제품들을 생산하려 해서는 안되고 어떤 제품이나 소재를 설계할 때 종국에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